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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146건vs靑87만건···'조은산'도 외면한 국회 국민청원, 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를 비롯한 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6월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반동성애기독시민연대를 비롯한 단체 관계자들이 지난 6월 국회의사당 정문에서 차별금지법 반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뉴스1]


“동성애를 법적으로 보호하고 조장하려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한다.” (7월 8일)
“하는 일은 없고 세금만 낭비하기로 유명했던 여성가족부의 폐지를 청원한다.” (7월 17일)

21대 국회에서 국민동의 청원으로 제안된 안건이다. 여성가족부 폐지 청원은 단 나흘 만에,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청원은 14일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받아 해당 상임위로 넘어갔다.

최근에는 지역의 사제 등 정부 의료정책에 반대하는 청원이 닷새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인은 “‘의대 정원 확충’이라는 공약에 얽매여 정책을 세운다면 국민건강에 얼마나 위해가 될지, 다시 한번 생각해주시기 바란다”고 했다. 최근 파업을 벌인 의료계 주장과 유사한 내용이었다.

국회 청원 146건 vs 청와대 청원 87만건

1월 10일부터 운영되고 있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 [국회 홈페이지 캡처]

1월 10일부터 운영되고 있는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 [국회 홈페이지 캡처]

국회 국민동의 청원은 지난 1월 시작됐다. 규칙은 간단하다. 법률 제·개정, 공공제도·시설운영 등의 내용이 담긴 청원서를 등록하고, 100명 이상의 사전 동의를 받는다. 이후 심사를 거쳐 공식 등록되면 30일 안에 10만명의 동의를 받으면 된다. 그러면 법률안처럼 국회 상임위에 안건으로 넘어간다. 제도 자체로는 단순 답변만 제공하는 청와대 국민청원보다 실효성이 높다는 평가다.

하지만 국민의 시선은 여전히 냉담하다. 현재까지 올라온 청원은 모두 146건, 청와대의 3년간 청원 숫자 87만8690건의 1.7%에 불과하다. 누적 동의 숫자도 197만 건으로 청와대 누적 동의 숫자(1억5900만 건)의 1.2% 수준이다. 최근 ‘조은산 시무 7조 상소문’ 등 다양한 글이 올라오며 화제의 중심에 선 청와대 청원과 달리 지난 8개월 동안 별 이목도 끌지 못했다. “국회 국민동의 청원이 의미 없는 제도가 돼 간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본회의 통과 1건도 없어

국회 청원의 매력이 떨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대 국회의 처리 결과를 보면 그 해답을 얻을 수 있다.

20대 후반기 정기국회 개회식. [연합뉴스]

20대 후반기 정기국회 개회식. [연합뉴스]

20대 국회에서 10만명 동의를 받은 청원 7건 가운데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한 건도 없다. ‘부양의무를 게을리한 부모의 상속을 제한하자’는 청원 등 5건은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한 채 20대 국회 ‘임기만료’를 이유로 폐기됐다. ‘N번방’ 범죄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청원 2건은 상임위에서 논의돼 ‘입법조치·취지달성’이라는 통지가 이뤄졌으나, 이마저도 일부 내용만이 법에 반영됐을 뿐이다.

반면, 국회의원 1명의 소개만 받으면 제출할 수 있는 의원소개 청원의 경우, 20대 국회에서 4건이나 원안 그대로 본회의를 통과됐다. 특히 지난 2016년 9월 민주당 심재권 전 의원의 소개로 이뤄진 ‘바르셀로나 영사관 재개설 청원’은 불과 1년 4개월여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주바르셀로나 대한민국 총영사관이 16년 만에 다시 문을 열었다.

다른 한편에선 “일부 이익 집단을 위한 놀이터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온다. 청와대 국민 청원의 답변 요건(20만명 동의)보다 문턱이 낮은 점이 우려스럽다는 지적이다.

실제 지난 7월 여성가족부 폐지 청원은 ‘반(反) 페미니스트’ 커뮤니티에서 공유되면서 동의 인원이 급격히 늘어났다. 최근 지역의 사제 반대 청원 역시 대한의원협회, 지역의사회 등에서 주로 동의를 모은 것으로 전해진다. 익명을 원한 한 시사 평론가는 “플랫폼 자체 오가는 사람이 많지 않은데 10만명 동의를 하는 건 결국 조직화할 수 있는 단체나 집단에 유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해외 사례를 다양하게 참조했다. 미국 백악관 청원시스템인 ‘위더피플(We the People)’ 청원 요건도 30일에 10만명”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청와대 청원과 달리 국회는 인증절차를 밟도록 했다”고 했다. 청와대와 달리 동일인의 중복 동의를 불가능하게 했다는 설명이다.

박해리 기자 park.hae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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