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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존 1위 뚫은 유기농 생리대, 한국 여성 3명이 만들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한국 여성들이 유기농(친환경) 생리대를 찾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다. 당시 국산 생리대 '릴리안'의 발암물질 논란이 불거지면서 해외 브랜드인 '나트라케어'는 매장마다 동이 났다. 때문에 해외에 나갔을 때 마트에 들러 여행가방 한가득 생리대를 사오는 사람도 생겼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생리대가 바로 ‘라엘’이다.

생리대 브랜드 '라엘'의 공동창업자들을 줌에서 만났다. 맨 위는 백양희 대표(CEO), 아래 왼쪽은 원빈나 제품 총괄 책임자(CPO), 오른쪽은 아네스 안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CCO)다. 사진 라엘

생리대 브랜드 '라엘'의 공동창업자들을 줌에서 만났다. 맨 위는 백양희 대표(CEO), 아래 왼쪽은 원빈나 제품 총괄 책임자(CPO), 오른쪽은 아네스 안 크리에이티브 총괄 책임자(CCO)다. 사진 라엘

아마존 1위(유기농 생리대 부문), 그것도 한국 여성 3명이 만든 안전한 생리대라는 사실에 금방 입소문이 났고 별다른 홍보 없이도 국내 생리대 시장에 안착했다. 지난달 말 이 생리대를 만든 공동창업자 3명을 화상회의 플랫폼 '줌'으로 만났다. 백양희 대표(CEO)와 아네스안 크리에이티브총괄책임자(CCO)는 미국 LA에, 원빈나 제품총괄책임자(CPO)는 서울에 있었다.

[남다름으로 판 바꾼 게임체인저] #<22>생리대 '라엘' 공동 창업자들

'엄마'에게서 가능성을 보다 

라엘은 2016년 기자 출신으로 여성 자기개발서 책을 낸 안 총괄과 디즈니 영화배급 담당자 출신의 마케팅전문가 백 대표, 건축을 전공한 아트디렉터 원 총괄이 함께 창업한 브랜드다. 시작은 안 총괄의 아기용품 온라인쇼핑몰이었다. 2012년 쌍둥이를 낳은 그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건강·환경·아기 세 가지 키워드를 만족시키는 제품들을 선별해 팔기 시작했다. 면 생리대, 아기 옷, 여성용 속옷 등이었는데 그 중 유기농 생리대의 반응이 제일 좋았다. 면으로 만든 1회용 생리대, 그 중에서도 안전한 제품을 찾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 안 총괄이 선별한 유기농 생리대는 쇼핑몰에 올리는 데로 바로 다 팔렸다. 비어있던 틈새시장을 발견한 순간이다. 곧바로 오랜 지인이었던 원 총괄과 함께 유기농 생리대 브랜드를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백 대표 역시 동참해 경영·마케팅을 맡았다.

라엘을 이끄는 4명의 여성들. 맨 왼쪽은 라엘코리아의 경영 및 운영을 담당하는 김지영 COO, 그 다음부터 백양희 대표, 아네스 안 CCO, 원빈나 CPO. 사진 라엘

라엘을 이끄는 4명의 여성들. 맨 왼쪽은 라엘코리아의 경영 및 운영을 담당하는 김지영 COO, 그 다음부터 백양희 대표, 아네스 안 CCO, 원빈나 CPO. 사진 라엘

판로는 아마존을 택했다. 당시 교류하던 주변 '엄마'들의 영향이다. 안 총괄은 "당시 아마존은 지금처럼 큰 플랫폼이 아니었지만 주변 엄마들 대부분이 아마존을 이용했다. 마트 거리가 먼 미국 환경상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는 게 편리했기 때문이다. 나는 엄마들이 '패스트무버'라고 생각한다. 엄마들이 어디서 쇼핑을 하고 무엇을 사는지를 보면 소비 트렌드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판단은 옳았다. 지금 아마존은 주가 3300달러(약 392만원), 매출액은 올해 2분기에만 889억달러(약 105조8000억원)에 달하는 거대 유통업체가 됐다. 라엘은 출시 6개월만인 2017년 5월 아마존에서 유기농 생리대 부문 1위를 차지하며 날개를 달았다.

품질은 기본, 신뢰를 쌓아야 산다

아마존에 게시된 라엘 생리대의 정보. 소비자들이 매긴 평점인 별 5개가 떠 있다. 사진 아마존

아마존에 게시된 라엘 생리대의 정보. 소비자들이 매긴 평점인 별 5개가 떠 있다. 사진 아마존

이들이 꼽은 성공 비결 중 하나는 '이미지'다. 이들은 "화려한 광고나 컨셉트로 만든 이미지가 아니라 제품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형성된 이미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백 대표는 "아마존 상위 순위에 올라가려면 고객의 리뷰와 평점이 가장 중요하다. 특히 생리대는 살에 바로 닿는 제품인 만큼 좋은 리뷰를 받으려면 품질이 기본 조건이다. 즉 최고의 브랜딩은 좋은 품질"이라고 밝혔다.
처음부터 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생리대가 '뚝딱' 나왔던 것은 아니다. 원 총괄은 "당시 생리대 생산은 유럽·중국·한국이 주요 생산국이었는데 유럽은 기계 설비가 노후했고, 중국은 안전성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 우리 고향인 한국에서 생산하는 게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이 나왔고 한국으로 직접 날아와 공장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여자 셋이 모여 '여자 몸에 좋은 제품을 만들자' 했지만 공장 찾기는 쉽지 않았다. 주문 수량도 적고 이들이 원하는 생리대를 만들어주겠다는 공장이 없어 개발에만 1년이 걸렸다. 결국 함께한 곳은 30대 젊은 사장이 운영하는 공장이었다. 그 역시 미국 유학파로 유기농 면 소재로 만든 생리대의 잠재력을 봤기에 가능했다.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왼쪽)' 진열대와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팝업 매장 모습. 사진 라엘

미국의 대형마트 '타깃(왼쪽)' 진열대와 노드스트롬 백화점의 팝업 매장 모습. 사진 라엘

초기에 사용했던 비닐 패키지(왼쪽)와 타깃에 입점하면서 바꾼 종이 상자 패키지. 사진 라엘

초기에 사용했던 비닐 패키지(왼쪽)와 타깃에 입점하면서 바꾼 종이 상자 패키지. 사진 라엘

유통전략은 치밀하게 짰다. 브랜드명 라엘(RAEL)도 미국 소비자가 아마존·구글에서 유기농 생리대를 검색할 때 '리얼 오가닉 패드'(Real Organic Pads)라는 쓰는 것을 보고, 리얼(REAL)의 오타까지 연관검색어로 뜨도록 고안한 이름이다.
고객과의 소통에도 집중했다. 제품에 대한 불만·개선점이 사이트에 올라오면 즉시 답하는 것은 물론, 실제로 이를 제품에 적용했다. 안 총괄은 "지금까지 8번의 업그레이드를 했다"며 "면 소재 톱 시트로 피부를 보호하는 건 기본이고 두께는 너무 얇지 않게, 촉감은 너무 딱딱하지 않게, 또 가장 적당한 접착력은 어떤 것인지 고객의 소리를 상품에 다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대형마트 '타깃'에 진출했을 때는 "두 달 안에 종이 패키지를 만들 수 있느냐"는 바이어의 말에 바로 패키지를 개발해 납기를 맞췄다. 백 대표는 "오프라인 진출은 우리에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당시 바이어가 '너희 제품을 꼭 들여놓고 싶은데 비닐 패키지는 매장에 진열하기 힘들다'는 의견을 냈고 우리는 바로 움직였다. 온라인만 생각하던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제안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금 라엘은 국내 백화점·마트를 포함해 미국 내 1850여개 타깃 매장에 입점했다.

라엘이 만든 화장품 브랜드 '리얼 라엘'. 생리 주기 중 생기는 피부 트러블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 제품이다. 사진 라엘

라엘이 만든 화장품 브랜드 '리얼 라엘'. 생리 주기 중 생기는 피부 트러블을 해결하는 데 집중한 제품이다. 사진 라엘

사업 확장 역시 생리 고민에 초점

라엘은 최근 스킨케어를 중심으로 한 화장품 '리얼 라엘'도 출시했다. 생리대 브랜드가 갑자기 화장품을 만든 이유를 묻자 이들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입을 모았다. "생리 주기마다 생기는 피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는 게 원 총괄의 설명이다. 백 대표는 "생리 때마다 겪는 여성의 고민을 해결해주는 상품을 계속 다뤄왔다. 방한용 핫팩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복부 찜질용 핫팩은 미국에서 인기가 높다"고 했다. 현재 화장품을 포함한 관련 상품 매출은 전체 매출의 20% 정도다. 사업 확장 역시 생리 고민 해결에 초점을 맞춘 결과다.
마지막으로 안 총괄은 "최근 생리대 시장을 쉽게 보고 '치고 빠지는' 커머스형 상품을 기획하는 회사가 많은데 신중했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그만큼 어려운 시장이란 의미다. 그는 "화려한 브랜딩보다 '여성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게 가장 확실한 성공법"이라고 강조했다.

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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