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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편배송 천천히 하라" 트럼프 측근 우체국장 수상한 지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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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AP, 로이터=연합뉴스]

재선에 도전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 [AP, 로이터=연합뉴스]

미국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우편 투표'를 둘러싼 우려와 갈등이 점점 커지고 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편 투표 조작 가능성을 제기해온 가운데 윌리엄 바 법무장관도 3일(현지시간) CNN과의 인터뷰에서 비슷한 시각을 드러냈다. 바 장관은 이날 2005년에 나온 한 연방선거개혁위원회 보고서를 언급하면서 "부재자 투표(우편 투표)가 조작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말했다.

트럼프측 '우편 투표' 조작 위험 연이어 제기 #공화당 지지자도 "우편투표 위험" 의견 늘어 #민주당 지지자 "트럼프가 방해할까 우려" #결과 뒤집히면 트럼프 불복에 美 혼란 올 듯

전문가들은 우편 투표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의견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이 '우체국 예산 삭감'까지 운운하며 우편 투표를 반대하는 저변에는 선거에 불리하다는 대선 전략이 깔려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로 각 주들이 우편 투표를 확대하고 있는데 그럴 경우 유색인종 투표율이 높아져 민주당이 유리해질 것을 트럼프 대통령이 우려한다는 게 미 언론들의 시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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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앞에 설치된 가정집 우편함. [픽사베이]

마당 앞에 설치된 가정집 우편함. [픽사베이]

유권자들의 마음도 복잡하다. 지난 2일 미국 매체 복스(Vox)의 보도에 따르면 최근 공화당 성향의 유권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으로 우편 투표의 공정성에 대해 의구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반면 민주당 성향 유권자들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공정한 우편 투표를 저해하고 대선 결과에 불복할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화당 지지자, 트럼프 영향에 "우편 투표 위험" 

진보 싱크탱크인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Data for Progress) 등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60%는 미 연방우체국(USPS)이 공적 이익에 헌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민주당 지지자의 74%, 공화당 지지자의 45%도 연방우체국의 필수적이며 공적인 기능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편물 수입 감소 등으로 재정적 위기에 처한 지 오래됐지만, 여전히 이익을 추구하기보단 사회에 필수적인 공적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라트로브의 아몰드 파머 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라트로브의 아몰드 파머 공항에 도착해 지지자들에게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는 비록 더 많은 비용이 들더라도 연방우체국이 대선 투표 우편물을 최우선으로 취급하고 처리할 수 있게 지원해야 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유권자의 74%는 정파를 떠나 주정부가 비용을 들여서라도 우편 투표를 최우선 처리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공화당 지지자 가운데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주장에 영향을 받아 우편 투표시 민주당에 유리한 부정이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늘어났다.

데이터 포 프로그레스에 따르면 유권자 52%는 '우편 투표가 신뢰할 만하다'고 응답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73%, 무당파 48%가 신뢰할 만하다고 응답했지만, 공화당 유권자 중에서는 32%에 불과했다. 심지어 공화당 지지자의 62%는 우편 투표가 실제 부정 선거로 이어질 수 있어 이런 방식의 투표를 제한해야 한다고 응답했다.

민주당 지지자 "오히려 트럼프가 방해할까 우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위스콘신주는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 총격 사건으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A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후보가 3일(현지시간) 위스콘신주 밀워키 공항에 도착해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위스콘신주는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 총격 사건으로 시위가 벌어지고 있는 지역이다. [AP=연합뉴스]

민주당 지지자들은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이 선거를 방해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 6월에 부임한 연방우체국장 루이스 드조이가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인데다 우체국 업무지침을 바꿔 우편 배송을 지연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7월 AP통신 등은 드조이가 '연장 근무를 하지 말고 늦게 도착한 우편물은 다음 날 배송하라'며 업무지침을 바꿨다고 보도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 선거로 인한 선거 부정 가능성을 제기한 이후다. 대선을 염두에 두고 일부러 우편 배송을 늦추려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유권자 중 49%는 트럼프 대통령과 드조이 국장이 실제 투표를 방해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민주당 지지자의 78%, 공화당 지지자의 26%가 이같이 우려했다. 드조이는 자신이 우체국의 기능을 의도적으로 약화시킨다는 일각의 우려에 대해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우편 투표서 결과 바뀌면 혼란스러울 듯" 

미국에선 우편 투표로 인해 대선 이후 한동안 정국이 혼란스러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우편이 늦게 도착해 당일 개표에 모두 반영되지 못할 것으로 예상하는 데다, 우편 투표 개표 결과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불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 데이터 분석가가 예측한 대선 개표 결과

미 데이터 분석가가 예측한 대선 개표 결과

앞서 민주당 데이터분석기업 호크피쉬의 최고경영자(CEO) 조 멘델슨도 이런 우려를 표한 바 있다. 멘델슨은 1일(현지시간) 미국 인터넷 매체 악시오스가 운영하는 다큐멘터리 뉴스 ‘악시오스 온 HBO’에 출연해 "우편 투표 개표가 지연되면 11월 3일 대선 당일엔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가 우편 투표 개표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크게 이길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우편투표를 사기로 몰아가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호크피쉬가 지난달 1~16일 미국 50개 주 1만 7253명의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민주당 성향 유권자 다수는 코로나19 감염 우려로 인해 우편 투표를 하겠다고 답했다. 반면 공화당 성향 유권자들은 "직접 투표하겠다"는 응답자가 다수였다.

전문가들은 2016년에는 4명 중 1명이 우편 투표를 했지만, 올해는 유권자 절반이 우편 투표를 할 것으로 점쳤다. 우편 투표자 수가 많고 우체국이 업무를 늦게 처리할수록 개표는 늦어지고, 시비 요소가 많아진다.

트럼프가 반대하는 보편적 우편투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라트로브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3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라트로브에 도착한 트럼프 대통령을 환영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에서 우편 투표는 이번 대선에 새로 등장한 것이 아니다. 지난 2016년 대선에서도 전체 유권자의 25%가 우편으로 투표했다. 선거 당국이 유권자 집으로 투표용지를 보내면 유권자는 여기에 기표한 뒤 돌려보내는 방식이다. 부재자 투표를 신청하는 경우에도 우편 투표를 할 수 있다.

우편 투표를 반대하는 트럼프 대통령도 지난달 플로리다주에 부재자 투표를 신청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부재자 투표는 괜찮다"는 답변을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대하는 건 '보편적 우편투표'다. '보편적 우편투표'는 유권자가 투표용지를 요청하지 않아도 선거 당국이 등록 유권자 모두에게 이를 보내준다. 이 제도가 없는 주도 있는데,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투표장에 가지 않겠다는 유권자가 늘자 보편적 우편투표를 허용하는 주가 늘었다.

미 언론들은 우편 투표를 하게 되면 투표율이 상대적으로 낮았던 흑인과 유색인종 등이 투표에 더 쉽게 참여할 수 있어 민주당에 유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권자의 신원 확인 문제, 중국이나 러시아 등 외부 세력이 개입할 가능성 등을 제기하며 보편적 우편 투표를 반대하고 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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