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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에 꽂혀 네이버·카카오·애플·삼성전자 뛰쳐나온 남자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여기 7년을 동고동락한 창업자 네 명이 있다. 잘 다니던 네이버·카카오·애플(미국)·삼성전자를 그만두고 2013년 식당 검색·추천 서비스 '망고플레이트'를 창업한 오준환 대표, 김대웅 이사, 노명헌 이사, 유호석 이사가 주인공이다. '맛집'에 꽂혀 대기업을 박차고 나온 이들은 최근 회사를 숙박·여행 플랫폼 기업 '여기어때'에 매각했다. 국내 스타트업 중 1~2%에 불과하다는 인수합병(M&A)형 '엑싯(투자회수)'을 막 마친 이들을 지난달 27일 만났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판교]

서울 서초구 신논현역의 한 공유오피스. 대부분 직원들은 재택근무 중이던 이날, 오준환 대표가 먼저 나왔다. 그는 안정적인 IT 대기업을 떠나 험난한 '창업의 길'을 택하고 매각을 결정하기까지 7년의 경험을 공개했다.

망고플레이트 공동창업자 4인. (왼쪽부터) 김대웅 이사, 유호석 이사, 노명헌 이사, 오준환 대표. 김정민 기자

망고플레이트 공동창업자 4인. (왼쪽부터) 김대웅 이사, 유호석 이사, 노명헌 이사, 오준환 대표. 김정민 기자

맛집으로 뭉친 'IT 어벤져스'

왜 창업했나.
취미가 본업이 됐다. 노명헌 이사와는 미국 시카고대 선후배 사이이자 룸메이트였다. 둘이 맛집 찾아다니는 게 낙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삼성전자 취업 후 만난 유호석 이사가 카이스트 동기였던 김대웅 이사를 소개해줬는데 이들과도 공통 관심사가 맛집이었다. 맛집을 계기로 넷이 금세 친해졌다. 맛집을 찾아다니지만 말고, '진짜 맛집'을 찾아주는 서비스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안정적이고 유망한 회사를 관두기 쉽지 않았을 텐데.
시장성을 봤다. 당시 맛집은 기념일에만 가는 특별한 곳이 아니라, 점차 일상의 트렌드로 변하고 있었다. 셰프들이 한창 미디어에 나오고 쿡방(요리방송)과 먹방이 많아질 때였다. 미국과 일본엔 이미 옐프, 타베로그 등 '국민 앱'이 있었다. 게다가 우리 넷은 서로 전문 분야가 다른 '최적의 창업팀'이었다. 나는 삼성전자에서 구글·페이스북·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과 파트너십을 담당하는 그룹장이었고, 노 이사는 미국 스타트업과 애플 본사에서 데이터 과학자로 커리어를 쌓는 중이었다. 유 이사와 김 이사는 카카오와 네이버에서 서버(백엔드) 개발자, 프론트엔드 개발자로 일하고 있었다. 합이 참 잘 맞았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위워크 신논현점에서 오준환 망고플레이트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위워크 신논현점에서 오준환 망고플레이트 대표가 중앙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김정민 기자

지난해 대표를 바꿨는데, 매각을 준비했나.
창업 당시엔 제품 개발이 중요해 개발자인 김대웅 이사가 대표를 맡았다. 지난해부턴 투자자 미팅 등 사업 확장이 필요해 이 분야 경험이 있는 내가 대표가 됐다. 사실 4명이 서로 '네가 대표하라'고 미루는 사이다(웃음). 회사의 성장을 위한 선택에는 늘 이견이 없는 편이다.

"여행·숙소·맛집은 한몸" 여기어때 자회사로 제2막

여기어때에 매각을 결심한 이유는.
지난 7년간 레저·요식업 분야에서 꾸준히 인수 제안이 왔다. 하지만 큰 시너지가 있을지 의구심이 들었다. 그러다 올해 초 시작한 투자 라운딩에서 투자자 소프트뱅크벤처스를 통해 여기어때의 인수 제안을 받았다. 맛집과 여행·숙박의 만남이 좋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 같았고 성장성도 좋아보여 매각을 결정했다.
협상 과정은 어땠나.
드라마틱하진 않았다. 여기어때 경영진의 비전과 경력이 워낙 좋았고, 무엇보다 회사 분위기와 일하는 방식이 비슷했다. 가령 우리 임직원은 18명 모두 서로 영어 이름을 부르며 수평적으로 일하는데, 여기어때도 똑같았다. 직원들이 쉽게 융화될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수액은 얼만가. 창업자들은 얼마를 벌었나.
양사 합의 하에 비공개다. 공동창업자 4명의 지분은 정확히 밝힐 순 없지만 각자 다르다. 일단 대표인 내가 지분이 제일 많다.
앞으로의 목표는.
여기어때의 자회사로서 숙소와 액티비티, 맛집 간의 연동을 최대치로 끌어올릴 생각이다. 물론 망고플레이트 앱도 계속 운영한다. 미국에서 맛집 찾을 때 구글이 아닌 옐프를 쓰듯, 한국에선 우리가 '국민 앱'이 됐으면 좋겠다.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위워크 신논현점에서 만난 '망고플레이트' 공동창업자 노명헌 이사, 오준환 대표. 김정민 기자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 위워크 신논현점에서 만난 '망고플레이트' 공동창업자 노명헌 이사, 오준환 대표. 김정민 기자

"국내 스타트업 M&A 많아져야"

성공한 M&A라고 생각하나.
그렇다. 엑싯은 스타트업 중 정말 극소수만 할 수 있다. 엑싯 자체가 의미가 크다.
지난해 배달의민족이 독일계 '딜리버리히어로'에 인수될 때 외국계 회사가 됐다며 비난받았다. 여기어때도 유럽계 사모펀드가 운영하는데 걱정은 없었나.
없었다. 일단 우린 그만큼 큰 회사가 아니라서(웃음). 그리고 (배민의) M&A 자체는 분명 좋은 일이다. 이제껏 국내에서 스타트업의 M&A 사례가 너무 없었다. '빅딜'이 나와야 창업 생태계도 발전할 수 있다.
지금의 한국 창업 생태계를 평가한다면.
과거보다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는 여건은 정말 좋아졌다. 우리가 창업할 때만 해도 공유오피스가 없어 일할 곳을 찾기 힘들었고, 엑셀러레이터(창업 육성기관)들도 많지 않았다. 정부 지원도 그간 현금성 지원, 팁스(TIPS), 빅데이터 사업 등 훌륭해지고 다양해졌다. 하지만 일정 단계를 넘어가면 고비를 넘긴 스타트업이 부쩍 줄어든다. 미국은 성장단계별 M&A 문화가 잘 잡혀있는데(※2018년 미국 벤처투자 회수의 44.5%가 M&A), 한국은 대기업이나 덩치 큰 벤처기업이 스타트업 인수 자체를 낯설어한다. (큰 기업이) 신사업 진출할 때 시장에서 의미 있는 데이터나 사업모델을 확보한 스타트업을 인수하면 즉각 시너지를 체감할 수 있는데도 말이다.
한국·미국 벤처투자 회수 시장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한국·미국 벤처투자 회수 시장 비교.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창업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당부한다면.
혼자였으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힘들 때마다 서로 도와가며 일했던 게 원동력이었다. 4명 다 결혼한 뒤에 창업했는데, 갓난아기였던 자녀들이 이젠 초등학생이 됐다. 가족처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좋은 동료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창업팀엔 기술자와 사업가가 같이 있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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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민 기자 kim.jungmin4@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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