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민 희생 되풀이는 망언" 취수원 다변화에 뿔난 안동시장

중앙일보

입력 2020.09.05 06:00

업데이트 2020.09.05 06:48

경북 안동시 안동댐 전경. [중앙포토]

경북 안동시 안동댐 전경. [중앙포토]

“4만여 명의 수몰민이 고향을 등지며 흘린 눈물은 부산·대구·포항·구미 등 산업단지 부흥의 쓰디쓴 밑거름이 됐다. (중략) 그러나 지난 희생의 50년을 또다시 되풀이하겠다는 망언이 최근 들린다.”

76년 안동댐 준공으로 수몰된 마을 주민들 거론해
‘안동댐 수몰마을 주민대백과’ 수몰민들 애환 기록
“북한이면 통일되고 갈 수 있지만 내 고향 물속에”

 권영세 경북 안동시장은 지난달 6일 기자회견을 열고 환경부의 ‘취수원 다변화’ 계획을 비판하며 이같이 말했다. “안동 임하댐을 대구 취수원으로 활용하자”는 계획에 대한 항의였다. 권 시장은 1976년 안동댐이 건설되고 1993년 임하댐이 건설돼 수몰민이 대거 생겼던 역사를 언급하며 취수원 다변화 계획을 ‘또 다른 수몰의 위기’로 표현하기도 했다.

 대구시민들의 식수를 임하댐에서 일부 얻는다는 내용이 담긴 ‘취수원 다변화’를 두고 안동시장이 수몰민을 언급한 이유는 뭘까. 당시 수몰민들은 어떤 희생과 고초를 겪었던 걸까.

 수몰민들의 생생한 경험담이 담긴 ‘안동댐 수몰마을 주민대백과’를 살펴보면 수몰민들이 고향을 떠나며 느낀 감정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은 안동시와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이 안동댐 조성으로 삶의 터전이 물속에 잠겨버린 9개 수몰마을 주민 106명의 애환을 담은 구술채록집이다.

'안동댐 수몰마을 주민대백과' 책자 표지. [사진 안동시]

'안동댐 수몰마을 주민대백과' 책자 표지. [사진 안동시]

 유경상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이사장은 ‘책 여는 글’을 통해 “아직도 생생한 물들 때 기억, 풋구 먹고(논매기를 마친 농군들이 모여 하루를 즐겁게 보내는 것) 지신 밟고 동제 지내고 화전놀이하던 기억, 자녀들 출가 시키고 부모님 떠나보내고 이제 등 굽은 노인이 된 그들은 망향의 기억 저편 지난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줬다”며 “굴곡 많은 그들의 삶은 영원히 사장(死藏)되지 않음을 지금의 이 기록이 증명할 것”이라고 했다.

 76년 준공된 안동댐은 지역 사회 전반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식수난 해결, 댐주변 지역 환경정비와 더불어 문화 관광, 레저 산업의 발달 등으로 관광객이 증가해 물을 매개로 한 물 산업의 중심지로 떠올랐다. 하지만 댐 건설과 함께 자연환경의 변화, 일부 문화재와 가옥들의 이건, 실향민 발생 등 그들의 기록과 이야기는 수몰과 함께 묻히고 말았다.

 이 책에 소개된 주민들의 얘기에는 수몰 당시의 모습들이 생생하게 기록돼 있다. 와룡면 가류2리에 살던 김성종(81) 할아버지는 “처음에 낙동강을 막아서 댐을 만든다고 하는데 다 거짓말인 줄 알았어. 낙동강을 막는다고는 상상을 못했던 거지. 눈치 빠른 사람들은 보상 받아서 외지로 나가거나 이주했는데 못 믿은 사람들 끝까지 남아 있었어”라고 전했다. 그는 “그때 당시는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고향이 물에 잠긴다고 해도 다른 생각도 잘 안 들었어, 먹고 사는 입 먼저 걱정했어야 하니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그립기는 하지만 이제는 사람도 없고 아무 것도 남은 게 없지”라고 했다.

 예안면 미질리에 살던 우윤구(67)씨는 “당시에 미질에 젊은 사람들이 많았어. 초장에 우리는 수몰되는 거 싫다. 또 땅값을 너무 적게 준다, 저녁에 구석진 골방에 모여 불만들을 더러 이야기했지만 결국 주는 대로 보상 받았지. 요즘은 댐 만들 때 담수를 하려면 그 전에 도로도 미리 내놓고 보상도 제대로 하고 하지만 그때는 그런 게 없었어”라며 “그래도 누구 하나 아무 말 못하고 보상도 주는 대로 받아야 했고 비우고 가라 하면 비워야 했지”라고 그때를 떠올렸다.

'안동댐 수몰마을 주민대백과'에는 수몰마을 주민들이 직접 그린 마을 지도가 실려 있다. [사진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안동댐 수몰마을 주민대백과'에는 수몰마을 주민들이 직접 그린 마을 지도가 실려 있다. [사진 경북기록문화연구원]

안동댐 수몰마을 사진전에서 옛 사진을 들고 있는 미질리 수몰민 김명동 씨. [사진 안동시]

안동댐 수몰마을 사진전에서 옛 사진을 들고 있는 미질리 수몰민 김명동 씨. [사진 안동시]

 예안면 도목리에 살던 남혜정(55)씨는 “차라리 북한 같으면 통일이 되면 가서 볼 수는 있지만 우리는 물속에 있어갖고 이걸 어떻게 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라고 했다. 남씨의 부친 남추식(83) 할아버지는 물에 잠긴 고향 도목리의 지도를 손수 그려 남겨놓기도 했다. 남씨는 “고향에 대한 수구초심(首丘初心)도 있지만 고향에 대한 걸 못 남겨놨다고 그걸 본인이 하실 수 있는 영역 안에서 하신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북기록문화연구원은 안동댐 수몰마을 주민들의 기억을 기록하는 일로 “새로운 문화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미홍 안동댐 수몰마을 기록화사업팀장은 “국가의 정책 앞에서 아무런 방비도 없이 고향을 잃고 평생 망실감을 안고 살고 있는 안동댐 수몰주민들의 생활사를 이제라도 기록하고 해석하는 일은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다.

안동=김정석 기자
kim.jung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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