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 프리즘] 도서정가제, 문제는 공급률이다

중앙선데이

입력 2020.09.05 00:26

업데이트 2020.09.05 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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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호 31면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지난주 도서정가제 보도(중앙SUNDAY 8월 29일자 18면)에 대한 피드백이 있었다. 독자 피드백이 아니라 ‘업자’ 피드백이다. 정가의 15% 이내에서 책을 할인 판매할 수 있도록 한 2014년 도정제가 결국 출판 시장 유통 질서를 바로잡자는 취지여서 출판사와 서점 등 업자들에게 더 다급하게 받아들여졌던 것 같다.

생기 있는 출판 생태계 이루려면
작은 출판사·서점 차별 없어야

낯 뜨겁지만, 1인 출판사인 안나푸르나 김영훈 대표는 “기사에서 공급률 부분을 건드려 좋았다”고 했다. 공급률이 뭔지 궁금한 분들이 있겠다. 출판사의 서점 납품 가격이다. 가령 정가 1만원의 책을 출판사가 서점에는 7000원에 공급한다. 차액이 당연히 서점 마진. 이 공급률이 출판사마다 제각각 적용돼, 그러니까 큰 출판사에게 유리하게 책정되기 때문에 문제라는 점을 기사가 지적했다(서점들은 많이 팔릴 가능성이 높은 큰 출판사의 책을 작은 출판사의 책보다 상대적으로 비싼 가격에 사들인다). 전제를 다시 확인하자. 우리 출판 시장은 생기 넘치는 출판 생태계 조성을 위해 자유로운 가격 경쟁을 인위적으로 제한하는, 시장 경제의 예외적인 영역이다. 그런 생각에 모두가 합의한 게, 말하자면 2014년 도정제다. 그런 전제를 인정하는 한, 공급률 차별이 존재하는 지금 출판 시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논리가 설득력을 갖는다. 몇 안 되지만 기자가 접촉한 작은 출판사들은 모두 지금의 현실이 불공정하다고 했다.

한 중형 출판사 대표는 구간(舊刊) 할인판매를 하지 못하도록 막은 게 현행 도정제의 가장 큰 문제라고 했다. 출판인들은 2014년 도정제 시행 직전, 말도 안 되는 할인판매가 난무했다고 기억한다. 가령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프랑스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 순위 상위권을 장식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자금력 여유가 있는 대형 출판사들이 무지막지한 할인 경쟁을 펼친 결과였다. 그런 폐단을 막기 위해 마련된 게 구간의 할인 판매를 막은 도정제였고, 그 결과 갈 곳 없어진 구간들이 폐기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출판사는 결국 팔리지 않아 창고에 쌓아뒀던 구간 4만5000부를 최근 폐기 처분했다고 한다. ㎏당 백몇십원꼴 폐지 값만 받았을 뿐이다. 물론 4만5000부 가운데는 출간된 지 10년, 20년 지난 구간도 있지만 불과 2, 3년 전 책도 수천 부가 포함돼 있다고 했다. 출판사 대표는 도정제 이전처럼 구간 할인이 가능했더라면 원가에 크게 못 미치는 싼 가격일망정 일부라도 팔 수 있지 않았겠냐고 말했다.

1인 출판사를 A, 책을 폐기한 출판사를 B라고 하자. B의 답답함은 앞으로 어느 정도 해소될 가능성이 높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정제의 구간 판매 금지 조항을 일부 손 볼 예정이어서다. 도서전이나 책축제 같은 일회성 행사에서만이라도 구간의 할인 판매를 허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시행된다면 구간 처분 동맥 경화가 일부 풀리게 된다.

안타깝게도 A의 억울함은 이번에도 달래줄 길이 없어 보인다. 정부의 이번 도정제 개선 방안에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작은 출판사는 지금처럼 큰 출판사보다 싼 가격으로 서점에 책을 공급하고, 도서 유통의 반대편 끝단인 작은 서점들은 큰 서점보다 같은 책을 비싼 가격에 납품받아 결국 손해 보는 현상이 앞으로도 계속된다는 의미다.

앞서 언급했지만 도정제의 취지는 건강한 출판 생태계를 만들어내자는 거다. 신선한 기획 아이템을 가진 신생 출판사가 얼마든지 시장에서 합당한 보상을 받아 다양한 출판물이 쏟아져 나오는 상태 말이다. 많은 출판인들이 그러려면 결국 불합리한 공급률 구조를 손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걸 민간에서 할 수 없다면 결국 나서야 하는 건 정부다.

신준봉 전문기자/중앙컬처&라이프스타일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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