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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재의식 속 흥선대원군 내쫓고, 디지털문명 주역 되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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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차 산업혁명 전문가 최재붕 교수 

최재붕 교수는 "미래는 정해져 있다"면서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잘 뛰어놀게 해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라고 했다. 박종근 기자

최재붕 교수는 "미래는 정해져 있다"면서 "디지털에 익숙한 젊은 사람들이 잘 뛰어놀게 해주는 게 어른들의 몫"이라고 했다. 박종근 기자

길에서 잡던 택시를 스마트폰으로 부르게 만드니 63조 기업이 됐고, 가게에서 빌려 보던 비디오를 폰 안에 집어넣으니 145조 기업이 됐다. 음식점 전단지를 폰으로 옮긴 회사는 또 어떤가.

디지털 시대의 핵심도 휴머니티 #BTS, 진정성 덕 글로벌 팬덤 생겨 #아날로그 때보다 더 인간적이어야 #중국 거지 노인도 QR코드 배워 #인공지능에 공포 느끼는 ‘꼰대’들 #‘포노 사피엔스’ 9개 코드 장착을

이렇게 스마트폰을 인공 장기처럼 사용하는 ‘포노 사피엔스(phono sapiens)’들이 새로운 세상의 주역이 된다. 4차 산업혁명 전문가인 성균관대 최재붕 교수가 지난해 출간한 저서 『포노 사피엔스』에서 예견한 미래는 코로나19 사태로 이미 현실이 됐다. 애플부터 알리바바까지, 시가총액 세계 7대 기업은 모조리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 차지했고, 이들 기업에 대한 투자는 코로나 이후 2800조원 증가했다. 디지털 문명으로의 전환이 모든 이에게 선택이 아닌 강제가 된 셈이다.

체인지9

체인지9

순식간에 다가온 생활방식의 변화에 저항감을 느끼는 사람도 많지만,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과 팬데믹 쇼크라는 전대미문의 ‘더블 쇼크’를 극복하려면 ‘생각의 표준’을 바꾸는 수밖에 없다. 최 교수의 신간 『CHANGE 9』은 당황하는 기성세대에게 ‘잠재의식 속 흥선대원군’을 몰아내고 ‘포노 사피엔스 코드’ 9가지를 장착하라고 촉구한다. 15만 부가 팔린 전작에 이어 신간도 출간과 동시에 2쇄에 들어갔다는 그는 요즘 가장 바쁜 사람이다. 주로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강의를 다닌다. 인터뷰 당일에도 한 기업에서 온라인 강의를 하고, 국회 온라인 정책토론회에서 발제도 했다. 인공지능 코딩이나 빅데이터 분석법을 배우라고 강의하는 건 아니다. ‘메타인지’‘휴머니티’‘다양성’‘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팬덤’‘진정성’ 등 9가지 키워드는 대부분 과거에도 유효했던 덕목들이지만, 이젠 장착하지 못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이 다르다.

포노 사피엔스 문명에 엄청난 가능성

세계 7대 기업이 죄다 디지털 플랫폼 기업이다. 결국 우리의 삶 전체가 디지털로 옮겨간다는 사인일까.
“디지털로 갔을 때 경험이 좋은 건 모두 옮겨 갈 거다. 안 갔을 때 좋은 것도 있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커피 한잔 마시는 경험은 커피 배달로 절대 대체할 수 없다. 그 좋은 경험이 나를 카페로 이끌겠지만, 5만원을 송금하러 은행에 가는 경험은 결코 행복하지 않을 거다. 플랫폼의 성공 여부는 좋은 경험을 크리에이트 하느냐의 문제다.”
지금껏 당연하다고 여겼던 상식과 기준이 흔들린다.
“대표적인 게 음악이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도 음악 소비의 변화가 미래의 소비변화를 주도한다고 했는데, 음악이 인류의 가장 오래고도 보편적인 소비 욕구를 보여주기에 그렇다. 음악을 듣고 싶을 때 어떻게 행동하나. 아무 생각 없이 앱을 열면 그 욕구가 순식간에 해결된다. 그렇게 문제 해결을 하면 다른 것도 요구하게 된다. 돈을 부칠 때도 송금 앱을 열지 않나. 감염 위험이 커지니 떡볶이 먹을 때도 앱을 쓸 만큼 소비가 급격하게 디지털 플랫폼으로 이동하게 됐고, 그 경험이 점점 표준이 되어간다. 이 위기가 누군가에겐 기회가 될 텐데, 위기를 기회로 삼으려면 내 마음의 표준부터 바꿔야 한다.”
아날로그가 미덕이던 예술이나 스포츠 분야까지 표준이 바뀔까.
“그런 경험은 대체하기 어렵지만 두려움 때문에 못 가는 상황이라면 어떻게든 온라인으로 양식을 옮겨 대리만족할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영속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내 아이디어는 이렇다. 예컨대 뮤지컬 공연에 삼성 갤럭시가 협업해 폰 1만 개로 객석을 채우고 티켓을 산 1만 명이 화상통화로 보게 하는 거다. 일괄적인 영상이 아니라 내가 보고 싶은 각도로 찍게 할 수 있고, 좌석 등급제도 가능하다. 화상통화 방식이니 내 얼굴도 배우에게 보인다. 관중이 보이면 배우에게도 감흥이 다르다. 그런 식의 새로운 아이디어로 방법을 찾자면 무궁무진하다. 공연도 기술을 통해 발전할 수 있다.”
올해 대중음악계엔 복고열풍이 불었다. 변화에 대한 기성세대의 저항심리 아닐까.
“시장의 부족사회화를 보여주는 거다. 마케팅 구루 세스 고딘의 말처럼, 인간에게는 작은 단위로 뭉치는 부족본능이 있다. 취미도 옛날에는 낚시, 등산회 정도 모였다면, 디지털로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아주 다양한 모임이 생겼다. 음악에도 트로트부족, 아이돌부족이 다 있다. 트로트의 잠재력을 알면서도 못 끌어냈던 건 ‘트로트 가수는 누구’라는 기존 상식을 버리지 않아서다. 아이돌 뽑듯 고객이 선택하게 했더니 팬덤이 폭발하지 않았나. 웹툰도 소수의 만화가가 주도하던 과거 출판시장과 달리 어마어마하게 크고 다양한 시장이 생겼는데, ‘포노’가 부족을 크리에이트한 셈이다. 조석 작가가 동남아 최고스타가 됐듯 ‘포노’의 팬덤에는 국가나 언어의 경계가 없는 게 특징이고, 그래서 가능성도 엄청나다.”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그는 디지털 문명에 부작용도 많다는 걸 인정했다. 하지만 부작용은 부작용일 뿐, 슬기롭게 쓰면 된다는 주장이다. 슬기롭게 쓰기 위한 9가지 코드 중 핵심은 ‘휴머니티’다. “디지털 문명이 냉정하고 차가운 시대라고 착각하는데, 오히려 휴머니티와 진정성을 끊임없이 드러내야 한다. 자본과 정치 같은 시스템이 소비자를 지배하던 시대에는 음모와 가식이 강력한 힘을 발휘했지만, 지금은 FBI 기밀문서도 까발려지는 세상이다. 그래서 더더욱 인간적이어야 한다. BTS가 음악만 잘했다면 글로벌 팬덤이 생겼을까. 그들에겐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따뜻한 메시지로 격려하고 아껴주는 휴머니티가 핵심이다. 신곡 ‘다이너마이트’도 지금 사람들의 우울함을 풀어주자는 의미로 노래했다고 한다. 빌보드 1위를 해도 ‘방시혁 대표 고맙습니다’ 한 번을 안 한다. 전부 아미 덕분이란다. 고객이 진짜 왕이라는 본질을 아는 거다.”

팬덤의 힘이 세지니 패싸움하듯 과격해지기도 한다.
“부족사회는 내 편을 보호하고 남의 편을 공격하려는 성향이 강한데, 인간의 내재된 본성이 드러나는 거다. 그래도 다행인 건 인류의 보편적 잣대란 게 있고, 그걸 건드리면 엄청난 분노를 일으킨다는 걸 아니까 조심한다. 연예인들이 악플러들 고소하면서 자정되고 있듯이 정치도 마찬가지다. 지금 정권을 비판하면 ‘문빠’들이 무자비하게 몰아치지만, 이런 게 과연 지속될까. 결국 보편적 가치에 의해 판단될 거다. 디지털 문명의 특징은 문제를 드러내는 거니까. 결국 보편적 가치가 승리할 거라 믿는다.”
n번방 같은 부작용도 디지털 문명의 산물 아닌가.
“n번방이 준 메시지가 뭔가. 우리 세대엔 야동이 일반적이었지만, 이제 나만 해도 절대로 그런 걸 열어봐서도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디지털 문명에선 저런 성착취물을 열어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범죄가 된다는 메시지를 준 거다. 결국 자정될 거다. n번방 때리기도 시민들이 먼저 나선 것 아닌가.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도록 메시지를 준 자체로 사회 변화에 기여했다고 본다.”
교육방식에 가장 큰 변화가 필요할 것 같다.
“어려서 성적만 좋으면 된다고 배우면 좋은 인재가 못 된다. 요즘엔 원자력 찬반 토론처럼 사회문제를 조사해서 해결책을 찾게 하는 교육이 많아졌다. 내가 돈 들여 해보고 싶은 건 이런 거다. 우리가 대학 때 농활을 갔듯 지금 대학생이 농촌에 가면 유기농으로 좋은 걸 재배하는 김 할머니 배추를 온라인 직거래로 제값에 팔아줘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될 거다. 그런 봉사를 해보면 쇼핑몰 비즈니스에 대한 역량과 기획력도 생긴다. 그런 경험 축적이 중요한데, 지자체가 지원해주면 최소한의 비용으로 소상공인의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이끌 수 있다. ‘코리안 뉴딜’이란 이런 방식으로 가야 한다.”

4차 산업혁명 공포서 벗어나야

그가 말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은 결국 사람을 향한다. 자본에서 소비자에게로 이동한 권력을 잘 포착하려면 나보다 남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는 것도 그래서다. “한국은 심리학자가 쓴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유일한 나라고,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언어가 세계에서 제일 많다. 우리 콘텐트가 세계에서 뜨는 이유도 그래서다. ‘아기상어’ 유튜브 조회 수가 64억으로 세계 2위다. 애들 심리를 열심히 데이터 분석했기에 얻어진 폭발력이다.”

그는 ‘인공지능’‘빅데이터’ 같은 단어만 들어도 공포를 느끼는 ‘꼰대’들이 코로나 이후 더 힘들어질 거라며, 이들을 어떻게 같이 끌고 갈지가 관건이라고 했다. 책을 쓴 것도 4차 산업혁명이 생각보다 쉽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서다. “문제는 그분들이 배우려고 안 한다는 거다. 하지만 어차피 이분들이 의사 결정권자라면 자꾸 데이터로 알려줘야 한다. 아마존의 베조스도 ‘누가 옳은지 알 수 없을 땐 데이터를 가져오라’고 하지 않았나. 내 말에도 처음부터 만인이 귀 기울이진 않았지만, 확실히 데이터가 돌아선 지금은 달라졌다. 내가 늘 하는 말이 중국 거지 노인이 깡통에 QR코드 붙인 사진을 책상에 붙여놓으란 거다. 중국 거지가 배우는데 우리가 못 배우겠나.”

유주현 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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