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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 주려고 마술, 카퍼필드 앞에서 공연 잊지 못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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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호 19면

최연소 마술 박사 에드 권

“마술은 예술이다. 사람들이 흔히 볼 수 있는 무대 위의 마술쇼는 마술이란 거대한 예술 분야의 극히 일부일 뿐이다. 음악가에게 공연이 전부가 아닌 것처럼, 화가에게 전시회가 전부가 아닌 것처럼, 마술사에게 마술은 ‘쇼’가 아닌 ‘삶’이다.”

관객과 소통 클로즈업 마술 전문 #즐거움 주는 ‘쇼’로 끝나선 안 돼 #7살 때 카퍼필드 무대 보고 독학 #수도원서 2년간 서양철학도 공부 #지팡이는 에너지 집중하게 만들어 #마술은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어야

미국의 저명한 마술 컨벤션에서 최연소로 최고위 레벨의 자격증인 ‘박사(Ph D)학위’를 받은 에드 권(Ed Kwon·권준혁·24)은 마술을 이렇게 정의한다. 그가 마술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자리는 몇천 관객이 모이는 거대한 쇼장이 아니다. ‘인비테이션 온리’인 할리우드나 라스베이거스의 비공개 행사나 공연, 유명 배우나 기업 총수들이 참석하는 비공개 파티다. 1대 1 시연도 많다.

지난달 26~27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한국이미지커뮤니케이션연구원(CICI·이사장 최정화) 주최로 열린 ‘문화소통포럼(CCF) 2020’ 참석차 내한한 그는 “마술에 대해 조금 더 진지한 접근을 했으면 좋겠다”며 마술이 너무 ‘쇼’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에 대한 아쉬움을 전했다.

세계 마술 컨벤션 4F서 학위 이수  

1 마술사 에드 권이 크리스탈볼을 바라보며 마술 시연을 하고 있다. 박상문 기자 2 할리우드 매직 캐슬에서 카드 마술을 하는 에드 권. [사진 에드 권],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1 마술사 에드 권이 크리스탈볼을 바라보며 마술 시연을 하고 있다. 박상문 기자 2 할리우드 매직 캐슬에서 카드 마술을 하는 에드 권. [사진 에드 권], 그래픽=이은영 lee.eunyoung4@joins.com

그는 초근접 거리에서 관객과 소통하는 ‘클로즈업 마술’이 전문이다. 그의 마술은 촬영을 거절한다. “마술은 철저히 비밀스럽고 베일에 싸여 있어야 한다”는 그의 철학은 스승의 가르침이다. 찰리 밀러 같은 스승의 마술 영상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가 그동안의 수많은 TV 출연 요청을 거절하고 유튜브 채널도 운영하지 않는 이유다.

하지만 작금의 코로나 상황에서 마술사도 영상을 통해 비대면으로 관객과 만나야 하지 않을까. 이에 대해 그는 “현장에서 함께 소통하지 않고 다른 방식으로 경험한다면 그것은 더 이상 같은 마술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국내에서 나고 자란 그는 일곱살 때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내한 공연을 본 뒤 마술에 매료됐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당시 국내에 마술 관련 자료들이 거의 없어 혼자 영어 원서를 구해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읽고 또 읽으며 기술을 갈고 닦았다.

미국엔 어떻게 가게 되었나.
마술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FISM(Fédération Internationale des Sociétés Magiques)의 아시아 예선전이 2014년 국내에서 열렸고 거기 통역으로 참여했다. 쉬는 시간 구석에서 카드로 마술 연습을 하고 있던 나를 당시 심사위원으로 참석했던 오비 오브라이언(Obie O’Brien)이 불렀다. 그는 세계 톱클래스 마술사만 초청받아 갈 수 있다는 포에프(4F·Fechter’s Finger Flicking Frolic) 컨벤션의 대표였다. 몇 가지 마술을 보여줬더니 그는 내게 명함을 주며 “4F에 초대한다”고 말했다. 덕분에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고 공연도 했다. ‘마술사들의 카네기홀’로 불리는 할리우드 매직 캐슬에도 초대됐다. 2018년에는 세계 최연소로 마술 박사학위도 따냈다. 무엇보다 데이비드 카퍼필드를 다시 만나 그분 앞에서 내 마술을 보여드린 것이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마술에도 박사 과정이 있나.
예술로서의 마술은 대중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공개된 정보도 그리 많지 않다. 하지만 마술계 내에서는 우리만의 세계가 확고히 형성돼 있고, 우리들만의 컨벤션, 시상식 및 학위도 있다. 물론 정부 인증의 일반 대학과 동일한 디플로마는 아니지만 우리만의 학위로 레벨을 나눈다. 나는 버팔로에 있는, 매우 전통적이고 톱클래스 마술사만 참여할 수 있는 마술 컨벤션인 4F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마술에도 다양한 학파가 있는데, 나는 가장 보수적인 성향의 고전 학파에 속해있다. 고전적이란 선생님 밑에서 비밀스럽게 배우고 또 그것을 제자에게 승계하는 것을 말한다. 때문에 혈통이 있고 마술을 대하는 태도 역시 매우 진지하다.
박사 학위 취득까지 보통 얼마나 걸리나.
매년 열리는 4F 컨벤션에는 전 세계에서 200여 명의 마술사가 모여 자신들의 이론을 설명하고 갈고 닦은 기술을 보여준다. 또 이 컨벤션에 소속된 고정 멤버로부터 초청받은 마술사에게만 학위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는데, 웨이팅 리스트도 있다. 마술계 거장들로 구성된 심사위원 앞에서 마술을 선보인 후 수준에 따라 학사, 석사, 박사 학위를 이수하는 방식이다. 물론 탈락자도 있다. 내가 이곳 최연소 박사 학위 취득자고, 여기서 박사 학위를 받은 한국 마술사는 나 외에 아직 없는 걸로 알고 있다.

앳된 얼굴이지만 그는 ‘삶의 이유’와 ‘존재의 이유’를 알기 위해 2년 반 동안 미네소타에 있는 천주교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승들과 함께 살며 서양 철학을 공부했다. 자신이 철학에 빠진 이유도 마술을 하는 이유와 일맥상통한다고 말했다.

왜 철학을 공부하게 되었나.
어렸을 때부터 난 세상에 대해 궁금증이 정말 많았다. 부모님과 선생님께  ‘이건 왜 이런지’ ‘저건 왜 저렇게 움직이는지’ ‘누가 그것에 이름을 붙였는지’ 끊임없이 질문했다. 다행히 저명한 학자였던 아버지는 내 질문에 늘 답을 주셨고, 답을 못할 땐 밤새 책을 뒤져 알아낸 다음 설명해 주셨다. 이런 호기심 때문에 마술에 매료된 게 아닐까 싶다. 마술도 이 세상처럼 너무 신비하기 때문이다. 마술을 하면 할수록 마술이 단순히 눈속임 즉 트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어떻게 이 마술을 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왜 이 마술이 행해졌고 보는 사람들에게 어떤 득이 되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수도원에도 들어가게 된 거다.

아브라카다브라. 마술을 부릴 때 자주 하는 이 주문은 고대 히브리어로 ‘내가 내뱉는 말이 현실이 될 것이다’라는 뜻이다. 에드 권은 이것이 “마술의 진짜 의미”라고 말한다. ‘우리의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그 사람의 성격을 정의하고, 그 성격이 운명을 결정한다’는 말처럼, 그는 “시연을 할 때 늘 먼저 대화하고 그 사람에게 지금 필요할 것 같은 마술을 보여주며 어떤 깨달음을 주는 것이 마술사가 존재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도제식으로 전수받은 ‘고전 학파’

사람들이 흔히 아는 쇼적인 마술과 매우 다른 듯하다.
할리우드의 수많은 미디어로 인해 위자드, 한국말로 마법사라는 단어의 의미가 많이 바뀌었는데, 원래 마법사의 마술이 마술의 근원이라 할 수 있다. 마법사들은 리더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에게 마술을 통해 중요한 깨달음을 주곤 했다. 물론 쇼적인 마술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도 마술의 역할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마술 지팡이가 특이하게 생겼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것처럼 마술사들은 각자의 마술 도구(magic wand)가 있나.
그렇다. 내가 요청한 사양 그대로 캐나다의 한 장인이 만들어 준 것이다. 나도 여러 지팡이를 사용했는데, 이번 지팡이를 가장 오래 쓰고 있다. 중간 부분이 굉장히 단단한 금속이고 양쪽 끝에는 나무를 썼다. 마술사에게 지팡이가 어떤 의미인지 일반인에게 말로 설명하기란 너무 어렵다. 여기서 마술이 막 뿜어나오지는 않는다. 그건 미신이고 난 미신을 믿지 않는다. 마술봉이나 마술 지팡이는 마술사로 하여금 자신의 모든 에너지를 하나의 지점에 집중하도록 만든다. 지휘자의 지휘봉과 비슷하다. 마술봉이 없다고 마술을 못 하지 않는다. 심지어 긴 아스파라거스를 사용해도 된다. 다만 손에 길들여진 마술봉을 사용함으로써 에너지 혹은 의식을 몰입시키는 것이 조금 더 쉬워지는 것뿐이다.

임승혜 코리아중앙데일리기자 shar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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