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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링으로 들어간 바이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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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박현영 기자 중앙일보 경제에디터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박현영 워싱턴특파원

인종차별 반대시위는 재선을 향해 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악재일까 아닐까. 답은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이다.

지난 5월 25일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 무릎에 눌려 ‘숨을 쉴 수 없다’는 외마디를 남기고 숨졌을 때 트럼프 앞날은 어두웠다.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구호와 함께 ‘노(No) 트럼프’ 푯말이 등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일자리를 잃고, 락다운(lockdown·이동제한령)으로 두 달간 집에 갇혀 지내던 시민들이 쏟아져 나와 울분을 토했다.

석 달여가 지났다. 또 다른 흑인 제이컵 블레이크가 세 아들 앞에서 백인 경찰이 쏜 총 여러 발을 등에 맞고 크게 다쳤다. 가라앉았던 시위는 다시 불붙었다. 폭력 수위도 높아졌다. 사건이 일어난 위스콘신주 커노샤에서는 상점이 불타고 시위대와 반(反) 시위대 간 총격전까지 벌어졌다. 그런데 이번엔 트럼프 지지율이 올랐다. 위스콘신에서 조 바이든 민주당 대통령 후보에게 8%포인트(6월 25일) 뒤지다가 그 격차를 3.5%포인트(8월 31일)로 줄였다. (리얼클리어폴리틱스 평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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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전 신호는 공화당 전당대회에서 나왔다. 트럼프는 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 ‘법과 질서 수호’를 중심 메시지로 잡았다. 친트럼프 방송인 폭스뉴스가 시위대와 경찰 간 대치, 약탈과 방화로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현지 영상을 반복적으로 내보내 밑자락을 깔았다. 트럼프 입을 통해 ‘시위’는 ‘폭동’이 됐다. 커노샤의 혼란을 당신 동네에서도 보게 될 것이라는 경고에 안전과 안정을 갈망하는 백인 중산층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선 결과를 사실상 결정짓는 경합주에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났다.

코로나19를 이유로 집에서 칩거하던 바이든은 급히 펜실베이니아주로 출격했다. 대중 유세는 두  달 만이었다. “폭력은 절대 안 된다”고 외쳤다. 보름 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했으면 더 좋았을 말이었다. 법과 질서, 안전을 강조하는 선거 광고를 긴급 편성했다. 트럼프가 다녀간 위스콘신을 이틀 뒤 방문하는 일정을 잡았다. 트럼프 링 안으로 바이든이 들어간 셈이다.

상대를 내 링으로 끌고 들어올 때 싸움에서 이길 가능성이 커진다. 바이든은 18만 명 넘는 코로나19 사망자와 대공황 이후 최고 실업률, 경제 파탄에 대한 책임을 묻는 ‘코로나 심판론’이란 안락한 링에서 순식간에 ‘누구의 미국이 더 안전한가’를 묻는 링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 번도 우위를 놓치지 않은 바이든이 수성할까. 트럼프가 새로운 기술을 쓸까. 미 대선은 이제 60일 남았다.

박현영 워싱턴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