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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간 그린 ‘최후의 만찬’ 작품료로 포도밭 받은 다빈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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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2호 27면

[와글와글] 다빈치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일러스트=이정권 gaga@joongang.co.kr

널리 알려진 왼손잡이답게 그는 글씨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다. 게다가 그 글씨마저 뒤집어서 기록하는 독특한 필기 방식의 소유자여서 그가 남긴 글들은 거울로 비춰 보아야만 해독할 수 있었다. 지난 회 ‘와글와글’ 연재에서 로마의 철자를 거꾸로 쓰면 아모르(amor), 즉 사랑이라고 했는데 실제로 로마에서 만나자는 편지를 아모르라고 암호문처럼 써서 보낸 사람이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였다.

포도주는 창조력·영감의 원천 #‘신성한 술’ 예찬, 열렬한 애호가 #성당 벽화 대가로 9900㎡ 받아 #직접 포도 경작해 와인 제조까지 #사후 500주년 맞아 330병 출시 #미켈란젤로도 와이너리 소유

사생아로 태어난 왼손잡이에다 동성애자, 채식주의자였으며 금발 곱슬머리와 우아한 외모, 이슬람 사회와 달리 수염을 기르는 풍습이 아직 드물던 15세기 이탈리아에서 이미 멋진 수염을 길렀으며,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다녔다. 근육질 몸매에 무릎까지 내려오는 화려한 빛깔의 튜닉 스타일 의상을 입고 거리에 나가면 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고 할 정도다.

7200페이지 분량의 노트 전해져

이토록 독특한 그였지만, 그를 주목하는 진짜 이유는 엄청난 창조력의 원천에 있다. 화가와 조각가, 과학자, 공학자, 해부학, 축제기획자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인물형으로 자주 언급된다. 도대체 그의 남다른 창조력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타고난 재능이 물론 중요하지만, 여기에 두 가지 비밀병기도 큰 역할을 했다.

그 첫 번째는 수첩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7200페이지 분량의 노트에는 분수처럼 끊임없이 분출하는 호기심과 상상력이 그림과 글씨로 기록되어 있다. 월터 아이작슨이 쓴 『평전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따르면, 그나마 그것은 다빈치가 기록한 분량의 4분의 1에 불과하다니 실로 엄청난 기록 정신의 소유자임을 알 수 있다.

“탐구하라! 연구하라! 기록하라!”

다빈치가 생전에 남긴 노트들은 다양한 수집가들에 의해 보관되어 ‘코덱스’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빌 게이츠가 3080만 달러라는 거액을 들여 구입한 72쪽 분량의 ‘코덱스 레스터’가 화제가 되었지만, 밀라노 암브로시아나도서관의 ‘코덱스 아틀란티쿠스’, 영국국립도서관에 보관 중인 ‘코덱스 아룬델’, 주로 지질학과 물에 관한 연구인 ‘코덱스 레스터’, 그리고 두 권에 이르는 ‘코데스 마드리드’ 등이 유명하다.

“보이는 것만 그린다면 그는 진정한 예술가는 아니다. 예술가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릴 줄 알아야 한다.”

로마의 위대한 작품 앞에서 괴테가 남긴 명언처럼, 다빈치는 보이지 않는 것에 주목했다. 제스처를 관찰하기를 좋아하여 모티 코르포랄리(moti corporali)라 부르는 몸동작을 자주 그렸다. 하지만 그가 더 주목했던 것은 ‘아티 에 모티 멘탈리’(arti e moti mentali)라고 하는 ‘마음의 태도와 동작’이었다. 이를 묘사하기 위해 언제나 허리띠에 작은 수첩을 달고 다녔다고 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 ‘모나리자의 미소’는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오랜 탐구의 결과였다.

그의 창조력과 영감의 또 다른 원천은 포도주였다. 그는 피렌체 인근 빈치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이곳은 올리브와 포도농원이 흔했다. 20㏊의 포도농원을 소유했던 아버지를 둔 토스카나 사람답게 그는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포도주와 친해졌다. 와인을 가리켜 ‘포도로 만들어진 신성한 술’이라 했을 정도로 열렬한 와인 애호가였으며 포도주 예찬도 잊지 않았다.

“나는 좋은 와인이 있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많은 행복이 주어진다고 아직도 믿는다.”

그는 포도 작물 키우기, 와인 제조법, 와인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과 와인을 잘 마시는 법에 관한 기록과 함께 ‘바리크’(Barrique)라 부르는 225L 용량의 작은 포도주 저장용 참나무통에 관한 스케치를 ‘코덱스 아틀란티쿠스’에 남기고 있는데 독창적인 창안으로 평가된다.

와인을 좋아하고 직접 포도를 경작해 와인을 제조한 사람답게 가끔 작품의 대가를 포도밭으로 받기도 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밀라노의 산타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실내 벽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이다. 다빈치는 밀라노 통치자 루도비코 스포츠차 공작의 의뢰로 1495년부터 3년간 이 걸작을 그렸는데, 공작은 그림에 대한 보수의 일부로 성당 인근의 포도밭을 작가 다빈치에게 주었다. 그 포도밭은 약 9900(3000평) 내외의 크기로 성당에서 걸어서 2분 거리였다.

2차 세계대전 도중 폭격으로 망가져

시간이 흐르면서 포도밭은 황폐해졌다. 2차 세계대전 도중 연합군의 폭격으로 망가졌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양조학자와 고고생물학자 등이 한 팀을 이뤄 유전자 검사 등을 통해 다빈치가 이곳에서 길렀던 포도가 청포도의 한 종류인 ‘말바시아 디 칸디아 아로마티카’ 품종과 가장 흡사하다는 것을 밝혀냈다.

그의 노트에서도 말바시아, 모스카도, 파세리나 등 단 3종류의 이탈리아 포도만 기록된 점과도 일치하며 오늘날에도 이탈리아에서 여전히 재배되고 있다. 결국 원래의 다빈치 포도밭에서 처음 포도 수확을 하고 다빈치가 만든 와인 제조방식으로 제조한 뒤 레오나르도 다빈치 사후 500주년을 앞두고 화이트 와인 330병을 출시해 화제가 됐다.

그의 영원한 라이벌 미켈란젤로는 레드와인을 좋아하여 한때 피렌체에 와이너리를 소유했다. 피렌체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난 숨은 원동력은 어쩌면 열정의 상징 와인에 있지 않을까? 

손관승 인문여행작가 ceonomad@gmail.com
MBC 베를린특파원과 iMBC 대표이사를 지낸 인문여행 작가. 『괴테와 함께한 이탈리아 여행』, 『me,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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