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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언박싱]“이혼도장 안 찍으면 죽여버린다”…유책주의 딜레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사무실에 모르는 남성들이 몰려와 주먹을 휘두르며 물건을 부수고 있어요.”

충남의 한 경찰서에 지난달 21일 30대 남성의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사건의 내막은 이렇습니다. 그의 사무실에 몰려온 건 아내의 내연남과 그가 데려온 남성 3명이었습니다.

외도한 아내의 이혼 요구를 들어주지 않자 내연남이 다른 남성들을 대동하고 들이닥친 겁니다. 남편 측에 따르면 "이들은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든지, 그렇지 않으면 죽여버리겠다며 가위를 들고 위협"했습니다. 내연남은 “내가 당신 집 주소도 알고 애들이 어딨는지도 안다”라고도 말했다는 겁니다.

남편은 사무실 뒷문으로 빠져나와 경찰에 신고했고, 최근 피해자 신분으로 경찰 조사도 받았습니다. 그는 경찰에서 보복 범죄 위협을 느꼈다고 진술했습니다.

그런데 아내도 남편을 협박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남편이 “내 눈에 띄면 팔다리 한 군데를 부러뜨리겠다”고 위협했다는 겁니다. 경찰은 남편이 공동폭행을 당했다는 신고와 그 아내의 협박 고소 사건을 함께 수사하고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요. 남편은 "아내가 예전부터 외도를 반복하며 수차례 이혼 요구를 했지만, 그때마다 어린 자녀들이 있어 받아주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은 가정 파탄의 책임이 있는 당사자의 이혼 청구는 원칙적으로 받아주지 않습니다. 이른바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어서인데요. 그러다 보니 이혼을 둘러싸고 부부가 각종 소송전을 벌이는 일이 늘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입니다.

미국, 독일 등이 채택하는 파탄주의는 어떨까요. 이 나라들은 이혼 책임과는 상관없이 일단 가정이 파탄 나면 이혼을 허가해줍니다. 대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상대방에 대한 부양 의무를 지게끔 합니다.

한국에서도 영화감독 홍상수씨가 아내에게 이혼 소송을 제기한 직후 유책주의와 파탄주의를 둘러싼 논란이 일기도 했는데요. 외도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하면서, 각종 사건·사고까지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슈언박싱'에서 자세히 만나보시죠.

정진호·박사라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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