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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전교조 합법화…악마는 디테일에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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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일 전교조에 내려진 법외노조 통보가 불법했다고 판결을 내렸다. 7년만의 재합법화다. [뉴스1]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3일 전교조에 내려진 법외노조 통보가 불법했다고 판결을 내렸다. 7년만의 재합법화다. [뉴스1]

박근혜 집권하자 '전교조와 통진당 해산' 양대과제로 추진 #문재인 집권하자 '전교조 불법화 문제점' 파헤쳐 재합법화

1.
전교조(전국교직원노조) 만큼 복잡 첨예한 이슈가 더 있을까요.
어제(3일) 대법원이 사실상 전교조를 다시 합법화하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사방이 소란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판결 내용은 ‘박근혜 정부 시절 고용부가 전교조를 법외(불법)노조로 지정한 것은 위법’입니다. 과거 불법 지정이 잘못됐으니 지금부터는 합법이란 얘기죠.

2.
전교조 문제를 잘 이해하려면 법보다 정치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전교조는 그냥 노사나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문제니까요.

처음부터 그랬습니다. 전교조가 출범한 것은 1989년입니다. 87년 민주화의 결과로 사회각계 보수일색이 해체되어가는 와중에 막차로 올라탔습니다. 그러나 당장 ‘좌편향 이념교육’이란 색깔론에다 ‘스승이 노조원이냐’는 전통윤리까지 쏟아졌죠. 10년 투쟁에 교사 1500명이 해고됐습니다.

3.
전교조가 김대중 정권 들어서자마자 합법화된 것도 매우 정치적입니다.
기본적으로 IMF 극복을 위한 노사정위원회에서 노사가 서로 양보해 이룬 성과이기에 매우 바람직한 일입니다. 국제기구의 압박도 있었습니다.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달라는..
그러나 그 과정에서 김대중이라는 대통령의 진보성향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봐야겠죠.

4.
보수 이명박 대통령이 들어서면서부터 전교조는 타도대상이 됩니다. 이명박은 여러가지 수단을 동원해 불법화 몰이에 나서지만 결정타가 없었습니다.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자마자 결정타를 날립니다. 법외노조 통보는 곧 ‘불법이니까 해체하라’는 요구입니다.

5.
다시 진보정권이 들어섰습니다. 국정농단과 사법농단 조사과정에서 박근혜 정부의 무리수가 다 드러났습니다.
박근혜 청와대는‘비정상의 정상화’란 이름하게 집권하자마자 이데올로기 정화작업에 나섭니다. 양대 과제가 통진당과 전교조였습니다. 취임 첫해인 2013년말 법무부는 통진당을 헌법재판소에 고발하고, 고용부는 전교조에 ‘법외노조’ 통보합니다. 둘 다 해산.

6.
통진당은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한 방에 깔끔하게 없어졌는데, 전교조는 계속 법정투쟁을 이어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박근혜 청와대가 양승태 사법부와 짜고 소송에서 전교조를 몰아가는 과정이 드러났습니다. 그러다보니 전교조에 대한 합법화는 진보진영 입장에서 또다른 ‘비정상의 정상화’과제가 된 것입니다.

7.
이제 법적인 문제도 살펴봐야죠.
박근혜가 해산명령을 내린 법적 근거는 ‘해직자는 노조원이 될 수 없다’는 노동조합법입니다. 이에 따라‘해직자가 포함된 노조에 시정을 요구하고, 안들을 경우 법외노조로 통보할 수 있다’는 시행령이 있습니다. 시행령에 따라 통보한 것입니다.

그런데 3일 대법원 판결은, ‘법외노조 통보는 사실상 노동3권 침해인데, 이같은 기본권 침해는 시행령으로 할 수 없다’는 취지입니다. 이런 중요한 사안은 법으로 정해둬야 한다는 법률유보원칙에 맞지 않답니다.

8.
대법원 결정도 우스꽝스럽습니다. 법이 잘못됐으면 법을 고쳐야 하는 것이죠. 노동조합법을 고쳐 ‘해직자도 노조원이 될 수 있다’고 하거나 아니면 ‘해직자를 노조원으로 두면 법외노조 통보할 수 있다’고 법조항에 명시하거나..
그런데 법을 만드는 곳은 국회입니다. 법원은 그 법을 해석하는 곳이죠. 국회가 제 기능을 못하니까 대법원이 순서도 맞지않는데 총대를 멘 셈이 됐습니다.

9.
정답은.. 국회가 나서 ‘해직자도 노조원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한 노동조합법 개정안을 만드는 것입니다. 해직자도 포함시키는 것은 국제노동기구(ILO)가 수십년전부터 우리나라에 요구해온 권고사항입니다. 대부분 선진국가들이 이미 받아들인 ILO 핵심협약입니다. 기본적으로 결사의 자유는 자유롭게 허용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10.
물론 쉽지 않습니다. 진보진영의 '3권분립 초월 드라이브'에 민간기업의 우려는 심각합니다.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있습니다.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해서 법을 만드는 것이 정치입니다. 노조 문제를 정치나 이데올로기만의 문제로 접근하면 안됩니다.
이미 법개정안과 ILO비준안은 국회에 발의돼 있습니다. 그동안 방치해왔죠. 이젠 논의해야 합니다. 대법원이 이미 저질러 놓았으니까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