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한국인 흉보는 체코 청년에게 날린 따끔한 충고

중앙일보

입력 2020.09.04 13:00

업데이트 2020.09.04 13:21

[더,오래] 박재희의 발로 쓰는 여행기(50)  

(전편에 이어)

“꺄아아아악~”

다가와 내 침낭을 들추려 한 존재는 다리 없이 공간 이동을 하는 원혼 따위는 아니었다. 당연한 사실이 그때는 전혀 당연하지 않았다. 십대 아이들이었는데 나만큼이나 놀란 눈치다. 하긴 아이들도 무서웠을 것이다. 침낭을 뒤집어쓴 어떤 사람이 신음이라기에도 너무 커다란 소리로 괴상한 곡조를 울부짖으며 누워있었으니까. 조명이 들어오지 않는 컴컴한 방에서 우리는 번갈아 비명을 주고받은 후 서로가 귀신이나 미친 사람이 아님을 확인했다.

“친구가 발을 삐끗해 많이 늦어졌어요. 도착해보니 불빛이 보여 문을 두드렸는데 안에 들리지 않는 것 같았어요.”
“그랬구나. 난 누가 왔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어.”(어렴풋이 쿵쿵거리는 소리를 들었고 그때부터 영화 ‘여고괴담’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발가(Valga)의 노을과 상현달. [사진 박재희]

발가(Valga)의 노을과 상현달. [사진 박재희]

아이들은 겨우겨우 호스피탈레로와 연락이 닿아 숙소에 들어왔다며 운이 좋았다고 기뻐했다. 진짜 운이 좋은 사람은 나였다. 텅 빈 건물에서 혼자 밤을 지새워야 했는데 동지가 생겼다. 등딱지처럼 눌러 붙어있던 공포가 떨어져 나갔는지 그제야 어깨가 펴졌다.

1층으로 내려가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정신이 돌아왔다. 정신이 돌아오니 그제야 배도 고프다. 하루 종일 굶다시피 했어도 배고픈 것도 몰랐는데 그제야 위장은 시끄러울 정도로 꼬르륵 소리를 냈다. 불과 한 시간 전만해도 억울하게 죽은 학생의 원혼이 떠다니던 빌딩은 포르투 출신 열일곱 살 소녀 둘이 들어오고 나자 비소로 안락한 순례자 숙소가 되었다.

남은 비스킷 네 개로 허기를 때워야 했지만 두 개를 아이들에게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열심히 논의 중이다. 내일은 얼마나 걸을 것인지, 길 어디쯤 약국이 있을 것 같은지 어디서 먹을 것인지를 정하는 눈치였다. 늦게까지 가이드북을 펼치고 계획을 세우는 아이들의 두런두런 소리를 들으며 나는 잠을 청했다.

“너무 늦게까지 고민하지 말고 일찍 자둬요.”
그렇게만 말했다. 까미노에서는 계획이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라든지 계획하지 않았던 상황이 펼쳐질 것이란 이야기는 삼켰다. 아이들도 언젠가 순례길을 걷는 것이 그때그때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저 감사하는 연습을 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이다.

순례자 마을 깔데스데레이. 브리알로스에서 깔데스데레이를 지나 발가까지 갔다.

순례자 마을 깔데스데레이. 브리알로스에서 깔데스데레이를 지나 발가까지 갔다.

스물아홉 번째 도보 순례의 날, 난 브리알로스(Briallos)에서 깔데스 데 레이(Caldes de Reis)를 지나 발가(Valga)까지만 간다. 채 15㎞가 되지 않지만, 산티아고가 가까워지면 남아있는 거리가 아까워 나눠 걷게 된다. 마칠 때가 되면 걷는 행위가 주는 기쁨이 유독 사무친다는 것은 길을 걸었던 사람의 공통된 증언이다. 나 역시 수많은 간증의 사람처럼 모든 것이 기쁘고 감사하다고 중얼거리며 걸었다.

종일 비가 내리다 개이기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궂은 날씨 덕분에 무지개가 계속 나타났다. 행복했다. 다섯 번째 아니 여섯 번째 무지개가 나타났을 때 나는 엄밀히 말해 그다지 온전한 상태는 아니었던 것 같다. 순간 어떤 ‘말’을 들었으니까. 평소라면 얼빠진 사람이나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던 일이었다. ‘하늘에 계시는 어떤 분’의 음성이었는지 스스로 생각해 낸 것인지는 지금도 불확실하지만 듣기는 들었다. 다행이라면 내가 들은 음성이 거창한 예언이라거나 어디로 가서 황금을 찾으라 같은 종류는 아니었다는 것이다.

‘언제나 기쁨을 발견하고 오로지 기쁘게 살아라.’
이를테면 이런 명령 같은 것이었다. 이 얘기를 하면 어떤 사람은 축복이라고 할 테고 더 많은 사람은 내가 살짝 돌았다고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나 정말로 들었으니.

종일 비가 내리다 개이기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궂은 날씨 덕분에 무지개가 계속 나타났다.

종일 비가 내리다 개이기를 수없이 반복했는데, 궂은 날씨 덕분에 무지개가 계속 나타났다.

발가 알베르게에는 나를 빼면 모두 다 20대 청년이다. 호스텔이나 맨션에 비하면 불편하지만 내가 알베르게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이유다. 사생활이 보호되는 독방의 쾌적한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요즘 말대로 텐션이 높고 밝은 청년과 어울리다 보면 힘이 솟았다. 가끔 예외적으로 기운을 빼는 친구도 있는데 오늘이 그날이다. 체코에서 왔다는 아이들이 한국에 대해 궁금하다며 저녁 식사에서 말을 텄다.

“한국은 기독교 문화권이 아닌데 어떻게 국민 대다수가 기독교인이 된 거죠?”
“한국에서 기독교인은 다른 종교를 비난하고 가톨릭마저 잘못된 종교라고 하던데 왜 그런가요?”

무슨 소리냐고, 아니라고 할 수 없음이 부끄럽고 아팠다. 한국에 체류했던 친구에게 들었다는데 우리나라 기독교 신자가 외국인에게까지 그런 인상을 주는 것은 몰랐다. ‘너무 이상한 한국인’이라고 말할 때 미리암의 표정이라니! 궁금증과 함께 혐오가 담겨있다. 이슬람은 악마라고 했다는 목사 얘기, 성당에서 마리아 우상을 숭배한다고 비난했다는 사람까지 참 가지가지다. 하지만 내가 내 식구의 잘못을 따지며 추궁하는 것과 남이 내 식구의 흉을 들추며 멸시하는 것을 보는 것은 다르다. 일반화하면 안 되는 문제라고, 밤새 토론할 만큼 알지는 못한다고, 졸려서 자야겠다고 얼버무려야 하는 기분이 영 개운치 않았다. 식당에서 돌아오는 길에 미리암은 또 물었다.

오래된 마을 돌다리를 건너는 순례자. 마칠 때가 되면 걷는 행위가 주는 기쁨이 유독 사무친다는 것은 길을 걸었던 사람의 공통된 증언이다.

오래된 마을 돌다리를 건너는 순례자. 마칠 때가 되면 걷는 행위가 주는 기쁨이 유독 사무친다는 것은 길을 걸었던 사람의 공통된 증언이다.

“한국 사람들 배타적이라고 하더라고요. 자기들끼리만 몰려다니고, 다른 나라 사람은 안 끼워주고. 차별하면서 백인은 무조건 좋아하고. 정말 그런가요?”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그냥 물러서지 않는 한국 아줌마가 내 안에서 튀어나온다.
“한국 사람이 친절하고 정 많다는 얘기는 못 들었어? 언어장벽 아니었을까? 네 친구가 한국말 잘해? 체코말을 못하는 한국 사람을 너희는 매번 끼워줬을까? 한국에 한 번 오렴. 직접 와보면 다를 거야.”

숙소에서 며칠 만에 와이파이에 연결되었다. 그동안 조안과 페이지에게서 온 메시지가 쌓여있다. ‘4시에 출발이야. 얼굴만이라도 볼 수 있기를’, ‘오고 있니? 우리 비행기 타기 전에 도착하지?’ 간절한 메시지에 코끝이 찡해졌다. 나 역시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남은 35㎞를 내일 오전 중에 걸을 수는 없다. 한국 사람은 왜 그러냐며 추궁하는 아이들 사이에 침낭을 펴면서 ‘수많은 나라 사람 중에 한국 사람만큼 따듯하고 좋은 사람은 없었어’라고 말했던 페이지와 조안에게 작별 메시지를 보냈다.

“너희를 만난 건 까미노가 내게 준 선물이야. 부엔 까미노.”

*영상은 순례길에 만난 하마를 닮은 돼지.

기업인·여행 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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