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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걸릴까봐" 복면 씌워 흑인 질식사…징계까지 5개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미국에서 뒤늦게 공개된 ‘복면 질식사’ 흑인 사망 사건 후폭풍이 거세다. 대선을 불과 두 달 앞둔 시점에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재점화되면서 대선 변수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지난 2일 뉴욕시 로체스터 경찰 본부 인근과 맨해튼 타임스퀘어에서 각각 수백 명이 집결해 인종차별 항의 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사망한 흑인 남성 사건을 항의하고, 경찰 개혁과 예산 삭감을 촉구했다.

지난 3월 뉴욕 로체스터에서 경찰이 씌운 복면 때문에 질식사한 대니얼 프루드의 체포 당시 상황이 담긴 보디캠 영상. [AP=연합뉴스]

지난 3월 뉴욕 로체스터에서 경찰이 씌운 복면 때문에 질식사한 대니얼 프루드의 체포 당시 상황이 담긴 보디캠 영상. [AP=연합뉴스]

이번엔 흑인 복면 질식사…항의 시위 재점화

이번 시위는 지난 3월 뉴욕 로체스터에서 흑인 남성 대니얼 프루드(41)가 경찰에 체포되던 중 복면 질식사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불거졌다.

이날 프루드 가족은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강제 진압으로 프루드가 숨졌다며 진상 규명을 촉구했다.

프루드 가족이 공개한 영상에 따르면 프루드는 3월 23일 뉴욕 로체스터에서 가족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체포됐다. 경찰은 프루드를 바닥에 엎드리게 하고 수갑을 채운 뒤 두건을 씌웠다. 이후 그의 얼굴을 손으로 눌렀는데, 이 과정에서 프루드가 의식을 잃었다. 프루드는 곧장 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지만 일주일 뒤 사망했다.

3일 뉴욕에서 열린 대니얼 프루드 사망 사건 항의 시위 현장. [AFP=연합뉴스]

3일 뉴욕에서 열린 대니얼 프루드 사망 사건 항의 시위 현장. [AFP=연합뉴스]

미국에서는 두건을 일종의 체포 도구로 사용한다. 경찰은 프루드가 계속 침을 뱉어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안면부를 누른 건 약 2분 정도라고 했다.

유족은 “벌거벗은 채 땅에 누워 있었고, 수갑도 채워져 방어할 능력이 없는 상황이 아니었다”면서 경찰이 강경 진압했다고 분노했다.

뉴욕주 검찰은 지난 4월부터 자체 조사를 시작했고, 이날 해당 경찰관 7명을 정직 처분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사건 발생 5개월 만에 당국의 뒤늦은 징계가 나오면서 파문은 확산하고 있다.

대선 코앞 터진 시위…트럼프·바이든 반대 행보

이번 사건은 미국에서 확산 중인 인종차별 논란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됐다.

미국에서는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지난달 제이컵 블레이크 사건으로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 1일에는 LA에서 교통법규를 위반한 흑인에게 스무 발의 총을 난사하는 사건까지 일어나 미국 곳곳에서 항의 시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문제는 미국이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인종차별 항의 시위가 최근 이슈의 중심에 서자 공화당 대선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도 연달아 시위 현장을 찾아 지지층 결집에 나서고 있다.

3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이 위스콘신주 커노샤의 그레이스 루터교회 이사장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바이든은 위스콘신주에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 가족을 만나 사법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3일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조 바이든이 위스콘신주 커노샤의 그레이스 루터교회 이사장과 만나 인사를 나누고 있다. 바이든은 위스콘신주에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 가족을 만나 사법제도 개혁을 강조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다만 두 후보는 시위 현장에서 서로 다른 행보를 보였다. 바이든 후보는 ‘치유’를, 트럼프 대통령은 ‘법질서 유지’를 강조하며 상반된 행보를 보인 것이다.

바이든 후보는 3일 위스콘신주를 찾아 경찰 총격으로 하반신 마비가 된 흑인 남성 제이컵 블레이크와 통화하고 그 가족을 만났다. 바이든 후보는 이날 워스콘신주 밀워키 공항에서 비공개로 약 1시간 30분간 블레이크 가족과 법률팀을 만났다.

자리에 동석한 블레이크의 변호사 크럼프는 바이든이 경찰 활동과 법 집행에서 벌어진 인종적 불평등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바이든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많다”면서 교육·경제·사법제도에 있어서 인종차별 개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바이든은 블레이크 가족을 만남 뒤 찾은 커노샤시에서도 “블레이크는 다시 걷든 못 걷든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블레이크를 막을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블레이크 가족에 대해선 “엄청난 회복력과 낙관주의를 보여줬다”고 덧붙였다. 피해 가족을 만나 치유 행보를 한 셈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미국 위스콘신주 케노샤시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일 미국 위스콘신주 케노샤시를 방문해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법과 질서’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보다 이틀 앞서 커노샤를 방문했지만 블레이크 측과는 만나지 않고, 방문 내내 블레이크를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 블레이크 사건으로 촉발된 인종차별 항의 시위의 피해 현장을 둘러보면서도 경찰과 주 방위군을 칭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커노샤 행은 방문 전부터 논란이 일으켰다. 위스콘신 주지사와 커노샤 시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역 내 갈등을 더 키울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밝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강행했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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