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중앙시평

코로나 시대의 대학발 사회 혁신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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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코로나 19 상황이 나아지기는커녕 더욱 심각해지면서, 이번 학기도 비대면으로 수업을 진행할 것 같다. 다행히 지난 학기 가르쳤던 ‘정치학 원론’ 대형 강의와 달리, 이번에는 수강생 12명 규모의 소형 학부 세미나다. ‘글로벌 리더십 연습’이란 이름의 과목인데, 문제는 현 코로나 위기 와중에 ‘지역 참여형·사회문제 해결형 수업’을 가르쳐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가 작년 4월 19일, 12월 27일 두 번에 걸쳐 중앙시평 지면을 통해 소개한 바 있는 소위 ‘대학발(發) 사회혁신’ 프로젝트로, 지역참여형 학습을 통해 교육·연구의 수월성을 추구하면서, 학생들을 사회적 가치에 민감한 공적·민주적 리더로 양성하고, 나아가 지역 발전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국경 넘어 온라인 토론·화상회의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는 #교육·연구·실천 프로젝트가 돼야

이전 수업에선 학생들이 성북구, 관악구, 시흥시, 강동구, 서울시 등을 대상으로, 주요 지역 이슈와 사례를 선정하여 참여 관찰 연구를 수행하면서 정책적·실천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가령 성북구 ‘동행(同幸) 아파트 민주주의’ 모델을 발표하고, 관악구의회 의정 모니터링 운영 조례 제정과정에 관여했으며, 시흥시 사회적경제 모델 전략계획과 강동구 마을공동체 기본계획을 수립했고, 관악구를 대상으로 서울시 참여예산 제안서를 제출한 바 있다. 학생들은 필자와 함께 연구 결과를 활용하여 논문과 편저를 공동 집필하기도 하였다.

코로나 시대에도 과연 이러한 방식의 수업이 가능할까? 사회적 거리 두기가 2.5단계로 강화된 현시점에 비대면으로 수업으로 진행하면서, 이러한 ‘발로 뛰는’ 참여형 교육·연구·실천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위드(with) 코로나 시대를 맞아, 어떤 주제를 잡아 어떤 방식으로 가르치고 연구하며 실천할 수 있을지 솔직히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코로나 시대에도 ‘대학발 사회 혁신’은 계속 중요할 터, 일단 실험에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이하에서는 문제의식과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고민해보자는 취지로 이번 수업 프로젝트 계획을 간략하게 소개하고자 한다.

수업 주제는 바로 ‘코로나 19의 정치’다. 방역과 경제 문제로부터 돌봄, 교육, 환경, 민주주의와 인권 등 코로나 19로 인하여 일어나는 여러 사회적 문제를 둘러싼 정치 현상을 말한다. 다만, 여기서 정치는 여의도(국회)와 광화문(청와대)보다는 로컬 풀뿌리 수준에서 자치(自治)적으로 혹 협치(協治)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집합적 행동에 초점을 둔다. 학생들의 과제는 주로 로컬 수준의 다양한 시민주도형 혹 시민참여형 솔루션 사례들을 찾아보고 아카이빙 및 분석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다.

수업 프로젝트 운영 방식에서는 SK 대학생 자원봉사단 SUNNY의 ‘사회적 가치(SV) 서포터즈’와 협업하기로 했다. SK 측에서는 한국·중국·베트남 국가별 2팀, 총 6개 팀이 코로나 상황 속 쓰레기 문제 해결을 위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매달 온라인으로 이들에게 피어(peer) 멘토링 기회를 제공하며, 12월에 최종 결과 발표회를 화상으로 개최한다는 흥미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필자는 공동 프로젝트 범위를 위에 열거한 다양한 사회적 문제들을 포함하는 방향으로 넓히고, 대학생 팀도 국가별 팀이 아니라 이슈별로 3국 대학생들이 관심 분야에 따라 함께 구성한 다국적 팀을 생각해보길 역제안했다.

한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면, ‘코로나 블루(blue)’ 시대의 심리방역과 사회적 연결 문제를 두고 한·중·베 3국에서 각각 2~3명의 대학생이 한팀을 구성한 후, 서울·북경·하노이의 시민주도형·참여형 솔루션 사례들을 연구하고, 매달 온라인으로 만나 서로 토론하고 배우며, 최종 화상 회의를 함께 준비하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 혹시 연말까지 기적적으로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 베트남 하노이 같은 곳에서 직접 만나볼 수 있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물론 쉽지는 않은 작업이 될 게 분명하다. 여러 가지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비대면 화상 회의 기술은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 있었지만, 코로나 시대의 도래로 비로소 더욱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그동안 그렇게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적으로 행동하자(think global, act local)’라고 되뇌어 왔지만, 국경 없는 팬데믹 시대를 맞이하여 지금처럼 이 말이 실감 나게 다가온 적이 있었던가. 인류 생존을 위해서는 인간, 지구, 번영, 평화, 파트너십 5개 영역의 17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추구해야 하며, 글로벌 수준의 목표 이행(implementation)에 있어 로컬 수준의 민관협력이 관건이라는 유엔의 글로벌 담론 또한 마찬가지다.

여하튼 이번 한·중·베 수업 프로젝트가 ‘코로나 시대의 대학발 사회 혁신’을 위한 의미 있는 실험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9월 한 달 우선 한국 팀 주도로 공동 프로젝트 주제와 이슈 및 방식에 대해 더 구체화한 후, 9월 말부터 중국과 베트남 친구들과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긴 한 학기가 될 듯싶다.

김의영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