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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국민의힘’ 당명 변경 진짜 의미가 있으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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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영렬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

이영렬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

이름은 개개인에게 그 자신을 대신하는 팻말이다. 기업이나 정당 같은 조직에는 외부에 내건 간판이다. 그래서 조직의 이름에는 자기의 제품이나 서비스가 연상되는 용어를 담기도 한다.

‘국민 대표’에서 ‘봉사자’로 바꿔야 #당명 바꾼 진정성 인정받을 수 있어

미래통합당이 지난 2일 당명을 7개월여 만에 ‘국민의힘’으로 바꾸면서 논란이 뜨겁다. 보통 오래되고 자리를 잡은 조직이 이름을 바꾸는 사례는 거의 없다. 제1야당인 공당이 8년 사이에 네 번째 개명한 것이니 시끌시끌한 것도 당연하다.

예상되던 논란을 무릅쓰고 간판을 새로이 단 것은 다음 선거에서 이기겠다는 의욕과 각오에서 비롯됐을 것으로 보인다. 기업에서도 과거의 부정적 이미지와 절연하려고 할 때 브랜드를 바꾸기도 한다. 일본의 자동차 기업 도요타가 미국에서 고급 차 브랜드를 출시했을 때 기존 중저가 이미지인 도요타를 숨기고 ‘렉서스’란 브랜드를 만든 게 좋은 예다. 국내 증권사들은 펀드가 잘 팔리지 않으면 이름을 바꿔 새롭게 내놓는다. 제품·서비스의 이름은 소비자가 그것을 인식하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업에서 제품 이름을 지을 땐 보통 고객이 그것을 사야 할 이유(개념)를 압축해서 만든다. 고객은 실물 제품을 오감으로 느끼고 이를 개념과 한꺼번에 인식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인식을 집대성 한 독일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는 “내용 없는 개념은 공허하고, 개념 없는 내용은 맹목적이다”라고 말했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이해할 때 감각으로 받아들이는 내용을 개념(이름)과 결합해 인식한다는 것이다 (김근배, 『끌리는 컨셉의 법칙』, 중앙북스). ‘눈높이 수학’이라는 학습 교재의 사용자들이 단계·수준별 학습지를 풀어 보고 눈높이라는 개념을 결합해 쉽게 인식하는 것이 그런 사례다.

‘국민의힘’이 당명을 여러 차례 바꿨던 것은 당이 내건 가치가 유권자에게 먹히기를 바랐던 까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권자의 눈과 귀에는 정강 정책이나 행동 같은 내용은 변한 게 없어 공허하게 받아들여진 적이 많았을 것이다. 음식점이 메뉴 이름만 바꾸고 그 나물에 그 밥을 내놓으면서 손님이 늘어날 것을 기대하는 게 무리인 것과 같다.

‘국민의힘’은 당 이름을 바꾸면서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인지 정강·정책에 5·18 민주화 운동 정신과 기본소득을 포함하는 등 이번엔 내용도 크게 바꿨다. 유권자에게 당명 변경이 잘 인식되도록 하려 노력한 것이다.

정당이든 기업이든 단기간에 대중의 인식을 바꾸려 한다면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바꾸는 게 하나의 방법이다. 세계 최대 인터넷 업체 구글은 인터넷 포털 도입 초기에 선두 주자 야후 등이 뉴스 정보 제공에 집중할 때 자신들은 검색엔진으로 관점을 바꿨다. 관점을 바꾸니 제공하는 서비스 내용이 달라지고 이익을 얻는 방법도 좋아져 대박을 쳤다.

요즘은 국민의 손안에 ‘스마트폰 언론 매체’가 들려 실시간으로 뉴스가 전달되기에 국민의 정치의식이 역사상 어느 때보다 높다. 그런 만큼 어떤 정당이든 큰 성공을 원한다면 자신에 대한 관점을 바꿔 유권자 눈에 보이는 행동을 다르게 할 필요가 있다.

기존에는 자신을 국민의 대표이자 국정 운영자로 보았다면, 이제는 유권자에 대한 봉사자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봉사자라면 과도한 특권을 내려놓고 유권자를 위해 행동할 것이다.어깨와 눈에 힘을 주고 막말을 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선거철에만 말하는 섬김은 굳이 아니더라도 유권자의 근심을 찾아내 풀어주고 억울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면 국민의 공감을 얻을 것이다.

이번에 간판을 새로 내건 ‘국민의힘’의 경우도 정강·정책과 함께 행동이 바뀐다면 당 이름에서 설명하려는 바가 유권자들에게 제대로 인식될 수 있을 것이다.

이영렬 서울예대 영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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