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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조직 검사의 중요성

중앙일보

입력

주룩주룩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해 12월 몹시 추운 오후였다. 의사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로 ‘유비무환(비가 오면 환자가 없다)’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날도 환자가 적었다.

외래시간이 끝나갈 무렵 마흔쯤 돼 보이는 여자가 머뭇거리며 진료실에 들어왔다. 코 전체를 덮는 흰 반창고를 한 채 크고 짙은 안경을 끼고 있었다.

10여년 전 코에 팥알만한 종기가 생겨 성형외과에서 제거수술을 받았다고 한다. 이후 다시 커져 두 번 더 제거수술을 받았지만 점점 커지고 흉이 생겨 수술이나 치료는 포기한 채 아예 가리고 다닌다고 하소연했다.

상처를 보여달라고 했더니 “아직 남편이나 딸도 본 적이 없는데…”라고 부끄러워하면서 반창고를 뗐다. 코에는 국화빵 크기와 모양의 좀 그로테스크한 병변이 있었고 이마엔 수술 때 생긴 일자 모양의 흉터가 세로로 나 있었다.

여러 가지 검사 끝에 피부와 폐를 침범한 ‘유육종증’으로 결론을 내렸다. 피부를 포함한 여러 장기를 침범하는 비교적 드문 질환으로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피부에 발생했을 때 수술을 하면 오히려 수술 부위를 따라서 더 크게 재발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환자는 초기에 조직검사를 하지 않고 제거한 것이 상태를 악화시킨 원인으로 보인다.

현재 환자는 약물치료를 받으면서 증상이 호전되고 있다. 환자를 진찰하다 보면 피부에 생긴 병변을 아무런 검사 없이 무조건 제거한 탓에 걷잡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런 경우 조직검사를 해 보면 피부암이나 피부 백혈병, 피부 결핵 또는 유육종증 등 초기에 발견하지 못하면 치명적이거나 난치병이 되는 질환이 많다.

이 환자는 그런 점에서 일상의 매너리즘에 익숙해져 가던 나에게 인상적인 자극제가 됐다.

최근 피부과의 추세는 진단이나 치료보다는 수익이 좋은 미용 치료에 치중하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더구나 지금까지 1차 진료과이던 피부과가 3차에 속하게 될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이런 변화는 전공의는 물론 대학교수 등 전문의의 임상경험 부족 현상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피부과 영역의 혼돈이 저윽이 걱정되는 것은 혼자만의 기우(杞憂)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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