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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만에 ‘재합법화’ 앞둔 전교조…대법 판결에도 남은 두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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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법외노조 통보 위법 판결 후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권정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을 비롯한 조합원들이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법외노조 통보 위법 판결 후 기자회견을 열고 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시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7년 만에 노조로서 법적 지위를 회복할 것으로 보인다. 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교조가 고용노동부 장관을 상대로 낸 법외노조 통보 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고법의 파기환송심 판결이 나오면 전교조는 다시 합법노조가 된다. 고법의 판결 전이라도 '법외노조 통보가 위법했다'는 대법원의 판단에 따라 정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취소하면 전교조는 즉시 법적 지위를 회복할 수 있다.

이날 교육부는 "고용노동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해 후속조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육부 관계자는 “고용노동부가 법외노조 통보를 직권 취소한다면, 전교조는 바로 노조의 권리를 회복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도 이날 대법원 판결 직후 언론 배포 자료에서 "대법원의 판결 취지에 따라 (전교조에 대한) 노조 아님 통보 처분을 취소하는 절차를 빠른 시일 내에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고법 판결 또는 정부의 통보 취소로 전교조가 교원노조로서의 지위를 회복하면 7년 간 제한됐던 단체교섭권을 비롯해 노조 전임자 휴직, 직권 면직자 복직, 사무실 지원 등 노조로서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법외노조가 될 때 학교 복귀를 거부했다가 해직된 전임자 33명(정년퇴직자 1명 제외)의 복직 가능성도 커졌다.

전교조 법외노조 논란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전교조 법외노조 논란일지. 그래픽=김경진 기자 capkim@joongang.co.kr

2013년 박근혜 정부 법외노조 통보

3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실에서 한 조합원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3일 서울 서대문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사무실에서 한 조합원이 출근하고 있다. 뉴스1

전교조와 정부의 소송전은 박근혜 정부 시절 비롯됐다. 2013년 10월 전교조는 고용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교원이 아닌 자의 가입을 허용하는 경우 노조로 보지 아니한다’고 규정한 교원노조법의 조항을 근거로 들었다. 전교조의 조합원 가운데 국가보안법 위반 등으로 유죄 판결을 받아 해직된 전직 교원들(9명)이 있었다.

전교조는 법외노조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과 효력 정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 1·2심 모두 본안 소송에선 패소했다. 2심에선 교원노조법 조항의 위헌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2016년 1월 2심 판결 후 교육부는 시·도 교육청에 전교조 전임자에 대한 휴직허가를 취소하고 복직 조치하도록 했다. 전교조에 지원한 사무실 지원금을 회수하고 단체교섭도 중지하라고 통보했다.

정권 교체, 진보교육감 당선으로 입지 회복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리는 전원합의체에 앞서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이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리는 전원합의체에 앞서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이 입장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처럼 한동안 노조 활동에 타격을 입었지만 교육계에선 2017년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전교조가 사실상 입지를 상당 부분을 회복했다고 보고있다. 특히 2018년 시도교육감 선거 결과 17개 시도 중 14곳에 진보 성향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전교조는 진보 정부와 진보 교육감의 ‘교육 파트너’ 역할을 하게 됐다.

실제로 전교조는 이미 법적 노조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고 있다. 지난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이 공개한 ‘교원단체 지방 보조금 지원 현황’에 따르면 2018년부터 2019년 7월까지 광주·전남·강원 등 7개 교육청이 전교조에 약 5억원의 보조금을 지급했다. 올해 들어 서울·전북·울산 등 12개 교육청이 전교조와 단체교섭을 진행 중이거나 협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2월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해 전교조 지도부와 비공개 간담회를 진행한 것도 이같은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당시 전교조는 “유 부총리의 방문은 교원노조로서 전교조의 사회적 지위와 역할을 인정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대법원의 판결을 계기로 '재합법화'를 눈앞에 둔 전교조는 교원단체로서의 조합 활동은 물론 그동안 강조해오던 '대사회실천'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신규 가입자 급감으로 '조직 고령화'

지난 8월, 부산 북구 대덕여고 1학년 교실에서 한 선생님이 온라인 영상수업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지난 8월, 부산 북구 대덕여고 1학년 교실에서 한 선생님이 온라인 영상수업을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하지만 전교조가 1999년 교원노조법 제정에 힘입어 합법화됐던 당시의 사회적인 영향력, 교육계 내 위상을 완전히 회복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다. 복수의 교육계 관계자들은 “일선 학교에서 전교조를 바라보는 눈이 상당히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전교조의 조합원 규모가 예전만 못하다. 2003년 9만4000여명이었던 조합원 수는 법외노조 통보 이듬해인 2014년 4만8000명으로 줄었다. 현재 5만여명 수준으로 알려져있다.

특히 신규 임용된 젊은 교사의 가입이 줄면서 전교조 내부에서도 고령화에 대한 우려가 나온다. 전현직 조합원에 따르면 현재 전교조 가입 교사 중 20~30대와 40~50대 조합원이 3대 7 수준으로 알려졌다. '젊은 교사들의 모임'이란 이미지는 이미 옛말이 됐다.

지난해 5월, 전교조 결성 30주년 전국교사대회 참가자들이 법외노조 취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5월, 전교조 결성 30주년 전국교사대회 참가자들이 법외노조 취소를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뉴스1

반복되는 정치 투쟁은 조합원 감소의 한 원인이다. 10년 전 전교조를 탈퇴했다는 한 교사는 "어느 순간부터 전교조가 학교 현장보다는 정치 투쟁에 더 집중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저연차 교사 가운데는 단체활동 자체를 부담스러워 한다. 서울의 한 중학교에서 5년째 근무 중인 한 교사는 "선배들의 전교조 가입 권유를 거절한 적 있다. 정치 성향과 관계없이 특정 집단에 소속돼 활동하는 게 부담스러웠다"고 말했다.

전교조만의 강점도 퇴색했다. 촌지 거부, 체벌 금지 등 과거 전교조의 혁신운동은 학교 현장에 정착하고 있다. 교사들끼리의 자료 공유 등도 이젠 전교조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교사들의 연구회나 소모임이 활성화되며 각종 자료 공유도 수월해졌기 때문이다.

이에 전교조는 '재합법화'를 계기로 다시 젊은 조직으로 탈바꿈하겠다는 계획이다. 전교조는 최근 지부별로 '2030위원회'를 설치하고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운영하는 등 젊은 교사들과의 접점을 확대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권정오 전교조 위원장은 이날 "법적지위 회복을 계기로 긴 안목의 교육정책과 사회적 담론을 주도하고 교육현장의 어려움에 더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밝혔다.

김경미 기자 gae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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