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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文 '간호사'글은 기획비서관실 작품…"野습성 못버렸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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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다.” “참모들이 대통령에 누(累)가 돼서는 안 되는데….”

3일 오전 청와대 참모들이 모인 회의에서 나온 말이라고 한다. 전날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됐던 문재인 대통령의 간호사 관련 메시지를 두고 한 말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 상황실에서 중증 병상 확보 현황을 보고받은 뒤 발언 중에 내려간 마스크를 올려쓰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 수도권 병상 공동대응 상황실에서 중증 병상 확보 현황을 보고받은 뒤 발언 중에 내려간 마스크를 올려쓰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의 요청

문 대통령은 2일 페이스북에 “(간호사분들이) 코로나19와 장시간 사투를 벌이며 힘들고 어려울 텐데,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니 얼마나 힘들고 어려우시겠습니까”라고 적었다.

간호사를 격려하기 위한 글이었지만 “코로나 와중에 의료계까지 편 가르기를 한다”는 비판이 터져 나왔다.

청와대 참모진은 이날 해당 메시지가 나온 경위를 복기(復棋)했다고 한다.

사진 젊은간호사회 소셜미디어 캡처.

사진 젊은간호사회 소셜미디어 캡처.

시작은 2일 오전 문 대통령의 요청이다.

문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파업) 의사들은 떠났는데,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간호사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준비해야겠다”는 취지로 말했다. 그러면서 “공무원 인력 충원 계획에 (고생하는) 공공의료원, 공공병원 간호사 충원이 들어가 있지 않다”며 “꼭 반영되면 좋겠다”고 했다. 인력 충원 방식으로는 간호대 입학 정원 확대가 아니라 “근무 여건을 개선하면 과로와 혹사로 떠나갔던 간호사들이 되돌아오게 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메시지에 정무적 기능까지

 대통령의 요청은 기획비서관실로 전달됐다. 통상 문 대통령의 공식 연설문은 연설비서관실이, 이밖에 주요 회의 발언이나 대국민 메시지 등은 기획비서관실이 담당한다. 두 비서관실 모두 대통령 직속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소위들의 선별진료소 실전 연습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3월 2일 오후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군간호사관학교에서 신임소위들의 선별진료소 실전 연습 훈련을 참관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월 문 대통령의 복심인 윤건영 전 국정기획상황실장이 총선 출마를 위해 청와대를 떠나면서 국정상황기획실은 국정상황실과 기획비서관실로 분리됐다. 결국 기획비서관실은 문 대통령 메시지 담당에 정무적 판단까지 더해지게 됐다. 기획비서관은 대선 때 문재인 캠프 ‘광흥창팀’에서 활동했던 오종식 비서관이 맡았다.

대통령의 요청이 나온 지 2시간가량 지난 오후 1시 30분 해당 글이 게시됐다.

문구를 만드는 과정에서 “장기간 파업하는 의사들의 짐까지 떠맡아야 하는 상황” 등의 표현이 삽입됐다. 폭염에 방호복을 입고 쓰러진 의료진을 언급하면서는 “의료진이라고 표현됐지만 대부분 (의사가 아닌) 간호사들이었다는 사실”이라는 말도 들어갔다.

정작 문 대통령이 요청했던 ‘근로 여건 개선을 통한 떠나간 간호사의 복귀’ 등은 “공공병원의 간호 인력 증원”이라는 말로 뭉뚱그려졌다.

 ◇"야당 습성 못 버렸다"

문 대통령의 메시지에 야권은 “갈라치기”라고 했고, ‘젊은간호사회’도 “현재 의료인력부터 지켜달라. 어려움을 줄이는 방법은 간호대 증원이 아니다”라고 반발했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이에 대해 “기본적으로 일부 청와대 참모가 아직도 야당 시절 진영을 나눠놓고 싸워서 이기려고 했던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 것 같다”며 “청와대는 특정 지지층 대상이 아닌 국민 전체를 향한 메시지를 내야 하는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번 메시지 작성 과정에 관여한 한 인사는 “당연히 편 가르기나 정무적 판단을 개입시키지 않았다”면서도 “왜 이런 반응이 나올지 몰랐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8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의료기관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 음압 격리병동 앞에서 고임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 대응TF 팀장으로부터 병동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20.1.28 [청와대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월 28일 오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대응 의료기관인 서울 중구 국립중앙의료원을 방문, 음압 격리병동 앞에서 고임석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영증 대응TF 팀장으로부터 병동 현황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2020.1.28 [청와대제공]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본지에 “정치인이라면 누구나 SNS의 민감성에 대해 경험으로 알고 있을 것”이라며 “이번 일은 대통령의 뜻을 정확하게 전달해야 하는 참모들의 잘못이 아니겠는가”라고 말했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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