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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조리 매뉴얼 어겼다는 치킨 가맹점, 계약 갱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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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김용우의 갑을전쟁(27) 

가맹점사업(프랜차이즈)을 시작하면 몇 년까지 할 수 있을까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가맹사업법) 제13조 제2항에 따라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10년간 갱신요구를 할 수 있습니다. 가맹점사업자는 가맹본부가 제시하는 조건과 기준 등에 따라 점포 및 내부 시설·장비 등을 준비하는 등 상당한 비용을 들여 투자할 수밖에 없어 임의로 계약이 종료되거나 해지된다면 투자비용을 제대로 회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가맹사업법 제정 당시에는 없던 10년의 갱신요구권이 2008년 2월부터 가맹사업법에 도입돼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10년이 지나면 어떨까요? 가맹사업법상으로는 가맹점 사업주가 더 이상의 갱신요구를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가맹점 사업자가 공들여 형성한 영업권이 단지 가맹계약 기간이 10년을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종료되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을 겁니다. 이에 공정거래위원회는 2019년 5월 28일 ‘장기점포의 안정적 계약갱신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는데요. 전체 가맹계약기간이 10년을 앞두고 있거나 10년을 초과한 가맹점 사업자(장기점포 운영자)도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계약을 갱신해주도록 한 것입니다.

가맹점사업자는 가맹본부가 제시하는 조건과 기준에 따라 점포 및 내부 시설·장비 등을 준비하는 등 상당한 비용을 들여 투자할 수밖에 없어 임의로 계약이 종료되거나 해지된다면 투자비용을 제대로 회수할 수 없습니다. [사진 pxhere]

가맹점사업자는 가맹본부가 제시하는 조건과 기준에 따라 점포 및 내부 시설·장비 등을 준비하는 등 상당한 비용을 들여 투자할 수밖에 없어 임의로 계약이 종료되거나 해지된다면 투자비용을 제대로 회수할 수 없습니다. [사진 pxhere]

당시 대표적인 치킨 업종 가맹본부가 이를 준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 가이드라인은 강제적인 효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장기 점포 운영자는 가맹본부가 부당하게 갱신을 거절한다는 점을 밝히지 못하는 이상 10년 이상의 영업권을 보장받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장기 점포 운영자의 갱신을 인정한 의미 있는 대법원 판례가 나와 살펴보겠습니다.

A는 12년간 대구 한 곳에서 B치킨을 운영했습니다, A는 분무기로 간장소스를 뿌려 간장 치킨을 조리했는데요, 이를 알게 된 B치킨 가맹본부에서는 조리용 붓으로 발라야 하는데 분무기를 사용한 것은 가맹본부의 중요한 영업 방침인 조리 매뉴얼을 위반한 것이라며 A에게 시정요구를 했고, 끝내 A와의 가맹계약 갱신도 거절했습니다. A는 이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습니다만, B치킨 본부가 무혐의처분을 받자 법원으로 달려가 손해배상을 구하는 민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가맹본부는 억울함을 표시했습니다. 본사 임직원 및 지역장들 모두 모인 자리에서 간장소스를 붓으로 바른 치킨과 분무기로 뿌린 치킨을 비교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는데, 간장 치킨은 조리용 붓으로 발라야만 간장소스가 압력에 의해 골고루 잘 배게 되고, 그래야만 B치킨만의 고유하고 통일성 있는 맛을 낼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입니다.

법원은 조리 매뉴얼 문언에 ‘간장소스를 붓으로 바른다’는 내용이 없기에 반드시 붓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나름의 조리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겁니다. [사진 pxhere]

법원은 조리 매뉴얼 문언에 ‘간장소스를 붓으로 바른다’는 내용이 없기에 반드시 붓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나름의 조리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한겁니다. [사진 pxhere]

하지만 세 차례의 재판에서 법원은 모두 A씨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대법원 2020. 7. 23. 선고 2019다289495). 특히 대법원은 가맹점계약을 체결한 지 10년이 경과해 가맹사업법상 계약갱신요구권이 인정되지 않아도, 본부가 계약을 거절할 수 없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봤는데요. 핵심은 조리 매뉴얼의 해석에 있었습니다. 조리 매뉴얼에는 ‘모든 소스는 골고루 섞이도록 사용하고, 간장 소스는 너무 많이 바르지 않아야 한다’라고 되어 있었는데요. 가맹본부는 ‘간장소스를 바르다’라고 한 것은 당연히 붓을 사용해야 할 것을 전제로 한 것이고, 실제로도 가맹본부가 간장소스 붓 2개를 제공했으므로 당연히 이를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조리 매뉴얼 문언에는 ‘간장소스를 붓으로 바른다’는 내용이 없기에 반드시 붓을 사용할 필요는 없다고 봤습니다. 게다가 A가 조리 과정에서 분무기를 사용한 것은 조리 매뉴얼을 고의적으로 어기려고 한 것이 아니라, 나름의 조리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즉 가맹본부가 우월한 거래상 지위를 남용해 부당하게 가맹점 계약 갱신을 거절했다고 본 것입니다. 결국 A씨는 가맹본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법원은 A가 지급한 가맹비, 교육비, 설비 집기와 권리금을 고려해서 2000만 원을 산정했습니다.

하지만 위 사안을 장기점포 운영자의 갱신요구권을 인정한 것으로 확대할 수 없습니다. 10년이 초과한 가맹계약의 갱신은 법적으로 강제할 수 없음이 원칙입니다. 예외적으로 A 사안과 같이 신의칙에 반하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장기 가맹계약의 갱신 여부는 가맹본부가 결정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므로 주의를 필요로 합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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