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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환경부는 왜 홍수 대응에 실패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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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김영오 과실연 상임대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김영오 과실연 상임대표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인류는 역사의 시작과 더불어 홍수와 싸워 왔지만, 최첨단 과학기술로 무장한 21세기에도 이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후 위기로 지구촌 곳곳에서 자연재해가 잇따르고 있다. 특히 홍수는 글로벌 이슈이자 로컬 이슈다.

어설프게 강행한 물 관리 일원화 #인력·예산·연구개발 모두 취약해져

대한민국의 홍수 대응은 우리나라의 특성을 제대로 반영해야 한다. 여름철 집중 호우, 산지로 인한 돌발 홍수, 하천 하류 도시 밀집 상황 등 한반도만의 기상학·지형학·인문사회학적 특성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사실 우리나라는 오랜 기간 치수(治水) 경험과 기술을 축적해왔다. 5대강에 홍수통제소를 수십 년째 가동하고 있다. 대규모 댐에서 분산형 치수 시설로, 콘크리트 제방 위주의 선 개념에서 생태습지·홍수터 확보 등 면 개념 치수 대책으로 진화해 왔다. 기상관측 전용 천리안 2A 호 위성과 강우 전용 레이더 10여기를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역대 최장 장마와 집중호우가 초래한 수해 현장을 속속들이 목격한 전문가들의 심경은 참담하다. 수십 년간 축적된 치수 역량의 실종을 봤기 때문이다. 안타깝지만 이번 실패는 예견된 일이었다.

첫째, 치수 역량의 양적 축소가 문제다. 2018년 물 관리 주무부처로 환경부 수자원정책국이 출범했지만, 환경부 수자원 관련 인력은 20여 명에 불과하다. 국토교통부 수자원정책국 시절 인력 50명에 비교하면 절반으로 쪼그라들었다. 환경부 수자원정책국의 물 관리 예산은 환경부 전체의 3%다.

둘째, 질적 구성도 취약하다. 국토교통부 수자원정책국에서 치수 업무로 잔뼈가 굵은 공무원들이 본인의 희망에 따라 환경부로 이동하지 않아서 생긴 손실은 그렇다 치자. 환경부로 이동한 공무원 중 수자원정책국에 남아 있는 공무원은 5명 내외라는 사실은 감추고 싶은 치부일 것이다. 안이한 순환 보직으로 환경부의 다른 국에 배치됐기 때문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홍수통제소와 수자원 조사기술원 등이 환경부로 이관되면서 전문성과는 상관없이 기존 환경부 공무원의 승진 진출로가 되고 있다. 치수 역량의 전문성 관점에서 봤을 때 이러한 환경부의 조직 관리는 사실상 자해 행위에 가깝다.

셋째, 외부 전문가들의 우려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는 것은 더 큰 문제다. 문재인 정부가 물 관리를 환경부로 일원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자 전문가들은 치수 역량의 약화를 경고했다. 그러나 환경부 수자원정책국은 2년 동안 본인들의 특기인 수량·수질 통합 관리에 몰입해왔다.

물 관리 일원화란 홍수 조절(治水), 물 공급(利水), 맑은 물(水質)이라는 삼각 축으로 구성된다. 하지만 환경부가 이 세 가지 중 하나만 들여다보고 있는 동안, 이번에 최장 장마와 수해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환경부는 물 관리 일원화 권한을 부여받았지만 제 역할을 못 했다.

넷째, 미래지향적 기술 개발은 한 걸음도 나가지 못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이변은 새로운 치수 기술과 정책을 요구한다. 예컨대 인공위성 활용 홍수 예측 기술, 센서 활용 제방 붕괴 모니터링 기술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물 관련 재해 분야 국가 연구·개발(R&D)은 어떤 이유인지 모르지만 지난 2년 동안 멈춰서 있다. 물 관리 주무부처 이관 말고 다른 이유를 찾기에는 공교롭게 시기가 겹친다. 어렵게 쌓은 대한민국의 치수 분야 과학기술의 전문성 상실을 손 놓고 지켜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전문성 약화를 회복시킬 기술 개발마저 뒷받침이 안 되면 이번 수해 같은 실패와 시행착오가 반복될 것이다.

법정 홍수기(6월 21일~9월 20일)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반도에는 태풍이 속속 올라오고 있어, 큰 비가 예상된다. 물 관리 주무부처인 환경부의 태생적 허약 체질이 조속히 보강되길 바란다.

김영오 과실연 상임대표·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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