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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진국의 퍼스펙티브

민주화 운동권 정부에서 왜 민주주의 위기가 거론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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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진국
김진국 기자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

민주주의 위기의 신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민주주의 위기론을 제기했다.  “선출된 권력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시대가 됐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선거로 선출됐지만 민주주의를 파괴한다는 말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안녕을 걱정하는 사람이 부쩍 늘었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도 현 정부의 운동론적 민주주의가 “보는 각도에 따라 전체주의와 동일 체제”라고 비판했다.

적폐 세력을 척결해 그 권력을 #국민 돌려주겠다 할 때 조심해야 #정권 심복이 견제 기관 장악하면 #처벌 두려움 없이 권력 휘둘러

래리 다이아몬드 스탠포드대 교수는 “한국에서도 최근 대통령 권한 강화와 야당에 대한 무관용, 견제와 균형 약화, 정치적 반대파에 대한 위협 등 다른 나라에서 보는 것과 유사하게 민주주의가 퇴보하는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했다. 현 정부와 함께했던 진보인사들도 줄줄이 비판 대열에 참여하고 있다. 민주화 세력이 집권한 한국에서 민주주의의 위기가 거론되는 것 자체가 아이러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경쟁자 아닌 적만 있는 정치

2017년 3월 1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 집회. 시민들이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3월 11일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탄핵 환영 촛불 집회. 시민들이 ‘이게 나라다. 이게 정의다’라는 팻말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민주주의 파괴 논란은 문재인 정부 초기부터 있었다. 그러던 게 4·15 총선 이후 심각하게 논의된다.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의석 5분의 3을 차지한 뒤 국회 구조를 바꾸었다. 13대 국회 이후 쌓아온 여야 협치의 틀을 승자독식 체제로 전환했다. 법사위를 통한 야당의 견제를 무력화하는 것으로 시작해 결국 18개 상임위원장을 모두 차지했다.

임대차 3법 등 집권당의 일방적 입법이 이뤄졌다. 대통령이 요구하고, 국회는 빨리 통과시키는 효율성을 성과라고 자찬한다. 국회 인사청문회는 껍데기만 남았다. 청문보고서도 없이 장관 20여 명을 임명했다. 1일 이낙연 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위원장의 대화를 보면 앞으로 이렇게 쭉 갈 것 같다. 야당이 발목을 잡은 결과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5대 인선 원칙’은 문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국민이 많은 의석을 줬으니 독주가 국민의 뜻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득표율은 제1야당과 비슷하다.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가장 중요한 핵심은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를 유지하려면 헌법 외에 성문화되지 않은 규범이 뒷받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호 관용과 이해’, 그리고 ‘자제’다. 21대 국회에서 이것이 무너진 것이다.

이들은 최근에는 민주주의가 ‘총을 든 군인’이 아니라 “국민이 선출한 지도자의 손에서 죽음을 맞이한다”고 분석했다. 래리 다이아몬드 교수도 “대통령 등 행정부 수반의 권한이 강화되고, 사법부·언론·감사원·검찰·국회 등 권력 견제 기관들이 독립성 및 권한을 잃어가는 교묘한 방식으로 민주주의가 파괴된다”고 말했다.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집권한 과정도 국민의 열광 속에 합법적인 절차를 밟았다.

독재자를 어떻게 가려내나

레비츠키와 지블랫은 “선동가들은 기성 정치인을 비민주·비애국적이라고 매도하고, 이런 적폐 엘리트집단을 척결해 권력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고 약속한다”면서 이런 주장을 할 때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포퓰리스트 독재자들의 특징은 적을 만드는 것이다.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은 『파시즘』이란 책에서 파시즘의 중요한 특징으로 ‘국수주의·권위주의·반민주주의’를 꼽았다. 분노와 증오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나치는 전후 배상, 세계 경제 위기의 책임을 모두 유대인에게 돌렸다. 1100만 명을 학살한 ‘홀로코스트’의 광기로 이끌었다.

박정희 시대 학생들은 수시로 반공(反共)과 반일(反日)을 위한 군중집회에 동원됐다. 지금도 수시로 일본을 소환한다. ‘친일’ 대 ‘반일’은 지금도 중요한 선거 전략이다. ‘토착 왜구’라는 조어에 유대인 이상의 증오와 동원력이 감춰져 있다.

이념보다 중요한 장기집권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파시즘은 정치적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려는 수단”이라고 말했다. 또 그는 “나치들은 인종차별주의자들이면서 동시에, 자신들을 개혁가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나치는 실제로 “더 많은 노령 연금, 빈민 계층을 위한 더 많은 교육 기회, 아동 노동 근절과 산모 의료 서비스 개선”을 주장했다. 그렇지만 그것은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는 20년 장기 집권론을 제기했다. 2017년 대선 선대위원장이었던 그는 “극우 보수세력을 완전히 궤멸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악의 무리와 천사들의 전쟁에 대화와 타협이 있을 수 없다. 장기 집권을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이길 수밖에 없는 정치 구도, 불공정한 게임규칙을 만들어놔야 한다. 그렇지만 경쟁자 없는 정치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우리’ 대 ‘그들’의 투쟁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파시즘의 첫 번째 특징으로 “우리 대 그들이라는 사고방식”을 들었다. 정당의 중심은 정책이다. 하지만 ‘우리’와 ‘그들’로 나누면 정책보다 진영이 중요하다. 경쟁자는 아무리 좋은 정책을 갖고 있어도 ‘적’일 뿐이다.

최순실의 딸은 촛불시위의 감정을 건드린 방아쇠였다. 공정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젊은이들을 광장으로 불러냈다. 조국의 딸도 비슷한 지점에 있다. 다른 것은 부모가 속한 진영이다. 젊은이들의 불만은 같았지만, 결과는 달랐다. 같은 검찰이 같은 방법으로 수사했지만 한번은 찬사를, 한번은 공격을 받았다. 정부 인사에서 배제한 명단이 블랙리스트가 되기도 하고, 적폐 명단이 되기도 한다. ‘우리 편’은 언제나 ‘정의’를 위해 싸우기 때문이다.

완장과 선전공세

파시즘 연구자들은 공통으로 ‘폭력성’을 주요한 특징이라고 말한다. 나치는 돌격대(SA), 친위대(SS), 비밀경찰(게슈타포) 등을 동원해 테러·고문·살인으로 공포를 심었다. 소위 ‘완장부대’다.

팬덤의 온라인 폭력이 위협적이다. 여권 인사도 비판적인 발언을 했다가 댓글 폭탄에 두 손을 든 일이 이어진다. 팬덤의 댓글이 여론을 대신한다. 만들어진 ‘가짜 여론’이다. 드루킹 사건도 잊혀져 간다. 문재인 대통령은 문자 폭탄을 “경쟁을 흥미롭게 하는 양념”이라고 옹호했다.

올브라이트는 “무식한 주장을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게 만드는 게 속임수의 첫 번째 법칙”이라고 말했다. “어떤 발언이나 이야기, 비방도 자꾸 반복되면 그럴듯하게 들리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대신 기존 언론에 대해서는 “가짜 뉴스를 퍼뜨린다”면서 “궤멸해야 할 대상”이라고 몰아붙인다. 그렇게 해서 신뢰를 무너뜨리고, 탄압을 정당화한다고 올브라이트를 설명했다.

중국 문화대혁명에서 완장은 홍위병이었다. 대자보가 선전 수단이었다. 청와대 게시판이 그런 역할을 한다. 거기에는 삼권분립도 없다. 국회 운영도 대통령이 개입하라고 한다. 재판 결과도 대통령에게 뒤집으라고 한다. 대통령이 제왕이고, 우상이다. 대의제는 숨을 헐떡이고, 직접민주주의를 빙자한 전체주의의 망령이 어른거린다.

경기도 하기 전 사라진 심판

레비츠키 교수는 민주주의를 무너뜨리는 중요한 방법의 하나로 ‘심판 매수’를 꼽았다. 사법부 등 규제기관들을 축구 경기의 심판에 비유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이런 기관은 중립적 역할을 해야 한다. 법원·검찰·정보기관·국세청 등이 독립성을 유지해야 행정부의 권력남용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그러나 “정권의 심복들이 이 기관들을 장악하면 처벌에 대한 두려움 없이 권력을 휘두른다”고 레비츠키는 설명했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독재자는 법률을 차별적으로 적용해 정적을 차단하고, 동지는 보호하는 강력한 무기를 손에 넣는다. 세무 기관을 앞세워 야당 인사와 언론을 공격한다. 경찰은 야당 지지자의 시위는 탄압하면서 친정부 인사의 폭력은 묵인한다.”

적폐 청산으로 자기 사람을 심을 자리를 넉넉하게 확보했다. 대법관 14명 중 10명을 문재인 대통령이 임명했다. 임기 중에 1명을 제외한 전원을 임명하게 된다. 헌법재판관 9명 중 8명을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검찰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한 사람은 대부분 좌천됐다. 정권과 호흡을 맞춘 사람은 영전했다.

나치 집권 과정에 돌격대(SA)가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 자체가 권력으로 부상하자 수백명을 처단하고, 친위대(SS)와 게슈타포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적폐 청산을 주도한 검찰과 그것을 감시하게 된 공수처의 역할이 주목된다.

다른 정부기관들은 ‘심판관’이라는 표현조차 민망하다. 탕평은 취임사와 함께 사라졌다. 철저하게 충성도 기준이다. 제왕적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하자는 개헌 논의를 10여 년째 했지만, 오히려 권력은 더 집중되고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