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감독기구’ 결국 강행

중앙일보

입력 2020.09.0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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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지나친 시장 통제·감시와 개인정보·재산권 침해 위험이 있다는 비판에도 정부가 부동산 시장 감독기구 설립을 강행한다.

정부 ‘부동산거래분석원’ 신설
금감원·국세청·검·경 인력 파견
개인 금융계좌 조회 권한도 부여
“경제활동 자유 침해할 가능성 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일 부동산 시장 점검 관계장관회의에서 “(부동산 시장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불법행위 등을 포착·적발해 신속히 단속·처벌하는 상시 정부 조직을 만든다”고 밝혔다. 가칭 ‘부동산거래분석원’이다. 현재 국토교통부와 금융감독원, 국세청, 검찰, 경찰 등의 7개 기관, 13명의 인력으로 구성돼 운영 중인 임시 조직(태스크포스)인 ‘불법행위 대응반’을 상당 규모로 확대하는 방향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23번에 걸친 부동산 대책에도 시장 과열이 잡히지 않자 정부는 관리·감독기구 신설을 결정했다.

그동안 정부 내부에선 금융감독원을 본뜬 부동산감독원 설립을 논의해 왔다. 그러나 비판 여론이 높아지자 한발 물러서 ‘감독원’이란 명칭 대신 ‘거래분석원’을 선택했다.

하지만 이름에서 ‘감독’만 빠졌을 뿐 조직의 성격과 권한은 금융감독원을 넘어설 소지가 다분하다. 금융감독원은 금융시장 검사·제재 권한을 갖고 있지만 정부 조직이 아닌 민간 기구다. 반면에 신설 예정인 분석원은 부동산 시장 모니터링에서 단속·처벌까지 총괄하는 데다 정식 정부 조직으로 설치될 예정이다.

홍 부총리는 “정부 내 설치하는 정부 조직으로서 금융정보분석원(FIU)·자본시장조사단 사례를 적극 참고했다”며 “국토부·금감원·국세청·검찰·경찰 등 전문인력 파견을 확대하고, 금융 정보 등 이상 거래 분석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조직 구성의 면면을 감안하면 금융감독원(검사·감독), 금융정보분석원(정보 수집·분석), 자본시장조사단을 합쳐놓은 것과 맞먹는 막강한 관리·감독기구가 탄생할 수 있다.

특히 부동산거래분석원의 설립 모델로 삼고 있는 자본시장조사단의 경우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허위 정보도 수집·조사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인터넷 부동산 카페와 블로그, 페이스북, 유튜브 방송 등이 분석원의 주요 조사 타깃에 오를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설립 전부터 논란은 커지고 있다. 우선 부동산만을 타깃으로 한 관리·감독기구는 전 세계적으로 유사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비견될 만한 것은 좌파 포퓰리즘으로 유명한 베네수엘라의 공정가격감독원(SUNDDE) 정도다. 이 기관은 일반 상품에서 부동산까지 공정한 가격이 책정됐는지를 감시한다. 직권 조사가 가능하고 불법적으로 값이 책정됐다면 검찰에 고발하는 권한까지 있다. 이 조직은 우고 차베스 대통령 집권 이후 물가 관리에 실패하자 이에 강제 개입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홍남기 “불법행위 상시 단속·처벌” 시장선 “부동산 거래절벽 우려”

시장 안정을 명분으로 내건 강력한 감독기구는 결국 국민의 경제활동 자유를 침해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그동안 부동산 감독기구가 없어서 수도권 집값이 오른 게 아니다”며 “오히려 불법행위 단속 명목으로 (분석원이) 개인 정보를 볼 수 있게 되면 개인정보 침해 위험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교수는 “정부가 개인 계좌에 있는 자산까지 들여다보면 시장 거래는 오히려 더 위축되고, 일부 거래는 규제를 피해 오히려 음성화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감독기구 신설이 과연 시장 안정에 실효성이 있을지도 의문이다. 부동산 거래의 특성상 불법과 합법, 투자와 투기의 경계가 모호하다. 단순히 투자한 집값이 많이 오르거나 집 여러 채를 샀다고 해서 투기나 불법으로 몰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분석원이 강력한 단속·처벌 권한을 휘두를 경우 시장은 움츠러들고 실수요자는 더욱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 강남구 개포동의 한 공인중개업체 대표는 “최근 각종 부동산 규제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까지 겹쳐 힘든 상황에서 (정부가) 불법행위 단속까지 강화하면 거래 자체가 뚝 끊길 수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불법 대출과 세금 탈루 등 부동산 위법 행위를 놓고 금융당국과 국세청 등이 기존에 해오던 업무와 중복되는 문제도 풀기 쉽지 않은 과제다. ‘옥상옥’이란 지적이 이는 배경이다.

한편 정부는 태릉골프장 등 공공부지에 조성하는 3만 가구 규모 주택의 내년 사전 분양 일정을 다음주 중 확정해 발표할 예정이다.

세종=조현숙 기자, 염지현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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