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유소년서도, 프로서도, 편견에 맞서는 정정용 감독

중앙일보

입력

프로축구 꼴찌팀 서울 이랜드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바꿔놓은 정정용 감독. 손에 책을 든 그는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다. [사진 서울 이랜드]

프로축구 꼴찌팀 서울 이랜드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바꿔놓은 정정용 감독. 손에 책을 든 그는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다. [사진 서울 이랜드]

지난해 12월 부산에서 열린 한 축구 세미나. 그곳에서 만난 정정용(51) 프로축구 서울 이랜드 감독이 이런 말을 했었다.

K리그2 서울 이랜드 변화 이끌어 #지난해 5승 최하위팀 올해는 7승 #손에 책,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 #제자들 뿌듯해 지금은 PO 생각뿐

“내 인생은 그랬다. 팀을 맡을 때마다 ‘경험도 없는데 이 친구로 되겠어’란 말이 뒤따랐다. 이번에도 ‘유소년만 맡다가 프로에서 통하겠어’라고 하더라. 잘 준비해 결과를 만들겠다”고.

그가 K리그2(2부) 서울 이랜드 사령탑에 부임한 직후였다. 지난해 6월 폴란드 20세 이하(U-20) 월드컵 준우승으로 처음 프로 지휘봉을 잡게 됐다. 이랜드는 2018년부터 2년 연속 꼴찌팀이다.

지난해 6월 U-20월드컵 8강전 세네갈전에서 승리 후 정정용 감독이 이강인과 포옹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6월 U-20월드컵 8강전 세네갈전에서 승리 후 정정용 감독이 이강인과 포옹을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부임 8개월. 이랜드는 올 시즌 7승4무6패로, 벌써 지난해 승수(5승)를 넘어섰다. 3위까지 올랐고, 현재는 5위다. 플레이오프 진출권인 4위 경남FC와 동률(승점)이다. 이랜드에는 이렇다 할 스타 선수가 없다. 선수단 평균연령은 23.8세다. 이상민·최재훈·문정인·김태현·고재현 등 정 감독이 연령별 대표팀에서 지도했던 제자들이 주축이다.

서울 이랜드 정정용 감독이 경기 중 비디오분석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서울 이랜드 정정용 감독이 경기 중 비디오분석 내용을 공유하고 있다. [사진 프로축구연맹]

이랜드는 지난달 30일 안산 그리너스를 1-0으로 꺾었다. 후반 43분 교체 투입한 김수안의 슈팅이 발단돼 최재훈의 결승골로 이어졌다. 2일 서울 잠실에서 만난 정 감독은 “수안이는 14세 대표팀 상비군에서 데리고 있었다. 장신 공격수로 한 방이 있는 비밀병기”라며 웃었다.

정 감독은 “축구협회 기술연구그룹(TSG) 멤버로, 각국을 다니며 세계축구 트렌드를 봤다. 유럽에서는 스리백에 공수전환이 빠른 팀이 성적을 낸다. 멤버 구성에 차이가 있지만 접목하려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연령별 대표팀 감독은 당장 눈앞의 월드컵에 못 나갈 수도 있어 부담감이 심하다. 프로팀은 쭉 이끌어갈 수 있다”고 말했다. “프로가 스트레스가 덜하단 말인가” 되묻자, 그는 앞머리를 넘겨 무성해진 흰머리를 보여주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프로축구 꼴찌팀 서울 이랜드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바꿔놓은 정정용 감독. 손에 책을 든 그는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다. [사진 서울 이랜드]

프로축구 꼴찌팀 서울 이랜드를 경쟁력 있는 팀으로 바꿔놓은 정정용 감독. 손에 책을 든 그는 여전히 공부하는 지도자다. [사진 서울 이랜드]

프로야구 SK 와이번스 프런트 출신 김은영 이랜드 사무국장은 “김성근 전 SK 감독과 정 감독의 공통점은 그 종목에 미쳐서 몰입한다 점”이라고 말했다. 정 감독은 요즘 일본의 고 노무라 가쓰야 야구감독을 다룬 책 『이기는 법』을 읽는다.

노무라는 통산 성적이 5할에 불과했지만, 약팀을 강팀으로 바꾸는 능력이 탁월했다. 정 감독은 ‘리더십은 사람을 움직이는 일이다. 지식을 전하거나 권위를 내세우기에 앞서 ‘내가 널 신뢰한다’는 메시지를 줘라. 감독이 믿어주면 선수는 뼈가 부서지도록 달린다’는 책의 대목을 보여줬다. 이랜드 선수들은 정 감독을 “쌤(선생님)”이라 부르지만, 자율 속에 규율이 있다.

2019 U-20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낸 정정용 감독이 이강인 등 선수들과 함께 지난해 12월27일 송년회를 갖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서울 이랜드]

2019 U-20 월드컵 준우승을 이뤄낸 정정용 감독이 이강인 등 선수들과 함께 지난해 12월27일 송년회를 갖고 기념촬영을 했다. [사진 서울 이랜드]

U-20 월드컵 당시 제자였던 오세훈(상주), 엄원상(광주)은 K리그에서 자신의 경쟁력을 보여줬다. 소속팀 내 주전 경쟁에서 고생하던 이강인(발렌시아)은 최근 주장 완장을 찼다. 정 감독은 “제자들이 성장하는 걸 보면 뿌듯하다. 월드컵이라는 큰 경험이 도움됐을 것이다. 강인이는 근육도 많이 붙었더라”라고 평가했다.

정 감독은 유소년 지도자 시절부터 늘 편견에 맞서 싸웠다. 그는 “연령별 대표팀 감독을 지내며 느낀 건 ‘욕심낸다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는 것이다. 3년간 아이들을 키웠는데, 정작 U-17 월드컵에 다른 감독이 나갔다. 그때 내려놓는 걸 배웠다. U-20 월드컵 때도 아시아 예선을 통과만 생각했다. 지금도 플레이오프 진출만 생각한다”고 초탈하게 말했다. 그러더니 “편견과 싸웠을까. 오히려 재미있었다. 이제 다시 도전하러 가야 한다”며 화상 미팅을 위해 인터뷰를 끝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