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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호정 '빨간 원피스' 美·英·日 의회라면 괜찮았을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4일 원피스를 입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지난달 4일 원피스를 입고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잠시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새끼 마담 같다. 누가 국회에 노래방 도우미 불렀냐."

지난달 4일, 한 초선의원의 국회 본회의장 등원 복장을 본 일부 네티즌이 보인 반응이다. 그 주인공은 21대 최연소 국회의원인 정의당 류호정(28·여), 문제의 복장은 '빨간 원피스'였다.

류 의원 '의회 복장논란' 한달 #韓국회, 별도의 복장규정 없어 #입법조사처 "드레스코드 필요"

복장 논란이 일자 류 의원은 "국회의 권위가 양복으로 세워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의 복장을 두고선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과 "국회 관행을 깬 탈권위 복장"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우리나라 국회법 25조엔 '의원은 의원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돼 있지만, 구체적으로 '국회의원은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식의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국회 복장'이 구설에 오른 게 여러 번이다. 1993년엔 한 여성장관은 바지 차림으로 국회에서 업무보고를 하던 중 주머니에 손을 넣자 "여자가 바지 차림으로 건방지게 손까지 넣었다"는 비판이 일었다. 2003년엔 유시민 16대 의원(현 노무현재단 이사장)의 이른바 '국회 빽바지 사건'이 터졌다. 2012년엔 보라색 미니스커트에 하이힐을 신은 김재연 19대 의원에 '치마 길이 논란'이 일었다.

다른 나라는 어떨까, 류 의원이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 의원으로 의회에 등원했을 때를 가정해봤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일 발간한 '주요국 의원 복장 규정'을 바탕으로 했다. 이 자료엔 영국·프랑스·미국·독일·일본 등의 사례가 담겼다. 영국·프랑스 등을 제외하면 나머지 나라도 명확한 복장이나 옷 색상의 규정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영국 '정장'이 기본…발언권 못 얻을 수도

지난 2월 영국 노동당 트래시 브라빈 의원이 발언 도중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오른쪽 어깨가 노출됐다. 트위터에서는 의회에 적합하지 않은 복장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트위터 캡처]

지난 2월 영국 노동당 트래시 브라빈 의원이 발언 도중 몸을 한쪽으로 기울이면서 오른쪽 어깨가 노출됐다. 트위터에서는 의회에 적합하지 않은 복장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트위터 캡처]

영국 하원은 '하원행동 및 예절규범'을 통해 '하원의 권위와 위상에 걸맞은 복장을 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남성 의원의 경우 넥타이는 매지 않더라도 재킷은 반드시 입어야 한다. 통상적으로 표결 땐 정장을 입으며, 청바지·티셔츠·운동복을 입거나 샌들을 신는 건 부적절하다고 본다. 정장을 입지 않았다고 입장이 금지되는 건 아니다. 대신 본회의장에 앉을 수 없다.

하원의장은 권위와 위상에 부합하지 않은 복장을 한 경우 발언권을 주지 않거나 퇴장명령까지 할 수 있다. 경우에 따라 다르겠지만, 하원의장이 류 의원의 복장을 권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경우, 류 의원은 발언권을 얻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미국·독일·프랑스, 튀긴 하지만 '등원 가능'

2017년 12월 프랑스 의회에 지역 축구팀 셔츠를 입고 연설에 나선 프랑수아 뤼팽 하원의원. 그 뒤 프랑스 하원은 복장규정을 명문화했다. [중앙포토]

2017년 12월 프랑스 의회에 지역 축구팀 셔츠를 입고 연설에 나선 프랑수아 뤼팽 하원의원. 그 뒤 프랑스 하원은 복장규정을 명문화했다. [중앙포토]

프랑스 하원은 2018년 복장규정을 명문화했다. 한 의원이 유니폼을 입고 본회의장서 연설한 게 계기였다. 프랑스 국회사무처 지침엔 '본회의장에서 의원의 복장은 중립적이고 외출복이어야 한다. 복장이 특정 견해를 표출하기 위해서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돼 있다. 여성 의원에 대한 복장규정은 없다. 류 의원의 경우 프랑스 하원 등원에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하원의 경우 복장에 대해 별도의 규정이 없다. 다만 하원 의사규칙에 '본회의 중 모자를 착용할 수 없다'고 돼 있는 정도다. 전통적으로 남성은 정장에 넥타이, 여성은 드레스나 스커트 정장을 입었다. 최근엔 여성 의원의 민소매 착용과 샌들 착화도 허용됐다. 상원엔 '반짝이 드레스'나 민소매 운동복으로 출석한 여성의원도 있다. 류 의원의 복장을 다른 의원들의 복장과 비교하면 다소 눈에 띄긴 하지만 등원엔 문제가 없다.

지난 2월 '화려한 복장'의 키어스틴 시너마 미국 상원의원이 톰 틸리스 상원의원과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2월 '화려한 복장'의 키어스틴 시너마 미국 상원의원이 톰 틸리스 상원의원과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AP=연합뉴스

독일 하원도 명문화된 규정이 없다. 대신 기존 관행에서 벗어난 복장으로 등원했을 때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다. 후원사 로고가 새겨진 축구 유니폼을 입거나, 티셔츠에 정치적 견해가 쓰인 옷을 입어서다. 관행에 따라 '품위에 적합한 복장'을 해야 하지만 정치적 견해를 표현한 복장은 금지된다. 류 의원 옷은 정치적 견해 등을 표현한 게 아니라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일본, 별도규정 없지만…한국처럼 논란 일듯

지난 4월 일본 중의원 본회의 모습. 대부분 남성 의원들이 정장을 입고 있고, 곳곳 파란색이나 흰색 상의를 입은 여성의원이 보인다. 연합뉴스

지난 4월 일본 중의원 본회의 모습. 대부분 남성 의원들이 정장을 입고 있고, 곳곳 파란색이나 흰색 상의를 입은 여성의원이 보인다. 연합뉴스

일본 중의원·참의원은 각각 규칙을 통해 '국회의 품위를 존중해야 한다' '회의장에 들어가는 자는 모자·외투·목도리·우산·지팡이류를 착용 또는 휴대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복장에 대한 규정은 없는 것이다. 대신 암묵적 규칙이 있을 뿐이다. 관례로 의원 배지를 단 상의에 넥타이를 착용한다. 여성의원에게도 그에 준하는 복장이 요구된다. 구체적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중·참의원 운영위원회가 판단한다. 다만 '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이 나라 특성상 류 의원의 복장은 국내에서처럼 논란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입법조사처 "논란 막으려면 최소 규정 필요"

국회 입법조사처는 해외에서도 대부분 의회 복장이 '정장 착용'으로 해석돼 왔다며 "대부분 공통적으로 '종교적 상징성·상업적 광고·정치적 견해'를 포함한 슬로건과 복장을 금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 국회의 경우에도 국회의 품위에서 벗어나지 않는 의원 복장이 어떤 복장인지를 명확히 하는 '최소주의적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며 "국회 의정활동에서 본질적인 문제가 아닌 불필요한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고석현 기자 ko.suk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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