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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폐암 선고 받고 딸에게 보낸 아버지의 영상 편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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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푸르미의 얹혀살기 신기술(28)

"오늘 가만히 손가락을 보니, 5개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른데, 나름대로 다 예쁘다. 꼬집어보니 느끼는 아픔도 똑같아.“ [사진 pixnio]

"오늘 가만히 손가락을 보니, 5개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른데, 나름대로 다 예쁘다. 꼬집어보니 느끼는 아픔도 똑같아.“ [사진 pixnio]

여름휴가 떠나기 전날, 아버지 손톱을 깎아 드렸다. 둥글게 다듬어진 손톱을 이리저리 살피던 아버지가 의외의 말씀을 하셨다.

“오늘 가만히 손가락을 보니, 5개 모양과 크기가 다 다른데, 나름대로 다 예쁘다. 꼬집어보니 느끼는 아픔도 똑같아. 부모가 자식을 생각하는 마음과 사랑도 똑같은데, 내가 왜 네 딸에 대해 누구는 이렇고 누구는 저렇다고 차별해서 생각했던가, 또 구분했던가. 그간 내가 가졌던 다소 편협한 생각을 완전히 바꾸기로 했다.”

혹시 거칠게 마무리된 부분이 있는지 살피는 줄 알았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아버지는 언니1에게는 장녀로서의 책임감을 강조하며 부담을 주는 한편 절대적인 신뢰가 있다. 자신을 유난히 닮았고 암 투병 중인 언니2에게는 한없는 관대함과 측은지심으로 일관한다. 반면 부산으로 멀리 시집간 언니3은 얼굴을 자주 못 봐서인지 만나면 어려워하시고 작은 일에도 큰 의미를 둔다. 함께 사는 나는 평상시엔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없는 사람같이 대하다가도 내 표정과 기분을 신경 써 살핀다. 아버지에게 솔직하게 표현하긴 힘들지만, 자매들끼리는 각기 다른 아버지의 태도를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곤 한다. 최근 특별한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우리 맘을 꿰뚫은 듯 이런 말씀을 해 괜한 불안감이 생겼다. 게다가 전날 아버지와 통화한 언니1로부터 “내가 앞으로 또 이렇게 좋은 여행을 갈 기회가 있을까”라는 말씀을 했다는 얘기도 들은 터였다.

이번 여행은 항암 치료 마친 뒤 여행 가고 싶다는 아버지 바람에서 출발했다. 코로나19로 바깥나들이를 통 못 하는 중 뇌졸중이 발생해 응급실에 갔고, 입원 검사 도중 폐암이 의심돼 한 차례 더 입원해 조직검사를 받았다. 그리고 바로 이어진 양성자 치료까지. 두 달여 정신없이 진행된 일정 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다독이고자 결심한 여행이었다. 나는 그저 2박 3일 바람 정도 쐬고 온다 생각했는데, 아버지 자신은 이번 여행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한참 앞선 생각마저 한 듯했다.

이번 여행은 항암 치료 마친 뒤 여행 가고 싶다는 아버지 바람에서 출발했다. [사진 pixabay]

이번 여행은 항암 치료 마친 뒤 여행 가고 싶다는 아버지 바람에서 출발했다. [사진 pixabay]

다음 날, ‘해랑’이라는 이름의 여름휴가 열차에 몸을 실은 후에도 이 엄숙함은 계속되었다. 넓은 침대에 누워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즐기던 아버지의 목소리가 또다시 차분해졌다.

“한 번 더 강조하마. 절대 다른 사람 믿지 말고, 남의 말에 속지 마라. 너를 향해 먼저 다가오는 이들은 모두 뭔가를 가져가고 뺏어갈 사람이니, 경계하고 또 경계해라.”

그제야 이 이상한 분위기의 정체가 명확해졌다. 어제저녁 손가락 보며 하신 말씀은 우리네 자매에게 남기는, 그리고 오늘은 나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이 처음은 아니다. 아버지는 늘 나에게 “한 푼도 허투루 쓰지 마라. 다른 사람 믿지 말고 남에게 돈 빌려주지 마라”를 반복했다. 그때마다 아버지가 날 못 미더워 하는 것 같아 섭섭했고, 나에 대해 어떤 오해를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폐암 조직검사를 위해 입원했을 때는 휴대폰으로 동영상 촬영까지 지시한 뒤 작정하고 말씀했다.

“오늘은 내 몸에 중대한 선고를 받은 날이다. 너에게 이런 이야기 할 시간이 또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 그래서 미리 이야기한다. 너는 의지가 강하고 판단력이 빠르고 분명한 사람이니까 네 인생을 네 소신껏 판단해서 결정해라. 남의 말을 잘 믿고 남을 쳐다보는 사람 치고 행복한 사람도 성공한 사람도 없다. 자기 소신껏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다. 남을 시기하고 질시할 필요도 없고 오직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의지하면서 주님과 더불어 네 인생을 충실하게 살아가도록 해라. 형제간에는 우애 있게, 언니들 말 잘 듣고. 인생은 야박하게 살아갈 필요도 없지만 궁색하게 살 필요도 없다. 마음에 여유가 있고 풍부하게 살아야 한다. 남을 용서하는 마음은 중요하다. 남을 용서하지 못하면 내 마음에 어둠이 생기고 그것이 병이 된다. 다시 한 번 더 이야기하는데 남을 절대 쳐다보지 말고 남의 말 절대 듣지 말고 네 소신껏, 네 삶을 결정해 나가라는 것이 내가 너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는 유언 겸 부탁이다. 이상이다. 2020년 6월 10일 오전 9시 30분 암 환자 병실 침상에 누워서 간절히 부탁한다.”

아버지 검사 결과에 모든 신경이 집중되어 있던 때라 그저 촬영만 했을 뿐 깊은 의미까진 곱씹지 못했는데, 오늘 새삼 강조, 요약해 하는 말씀을 들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제는 가마솥 뚜껑같이 두툼한 손을 이리저리 살피면서 가슴 울컥하는 말씀을 하더니, 오늘은 차창 밖 풍경을 보며 새삼 막내딸 걱정하는 모습이 영락없이 곧 떠날 사람이었다.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각산’ 정상에서 열심히 쓴 엽서가 6개월 후에 도착한다는 말에 아버지는 허탈하게 웃으셨다. [사진 푸르미]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각산’ 정상에서 열심히 쓴 엽서가 6개월 후에 도착한다는 말에 아버지는 허탈하게 웃으셨다. [사진 푸르미]

하늘은 흐렸지만, 코로나19 덕에 거의 단독으로 타다시피 한 요트 위에서는 그래도 조금 기분이 좋을 법도 한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그저 먼 곳을 말없이 응시했다. [사진 푸르미]

하늘은 흐렸지만, 코로나19 덕에 거의 단독으로 타다시피 한 요트 위에서는 그래도 조금 기분이 좋을 법도 한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그저 먼 곳을 말없이 응시했다. [사진 푸르미]

어머니는 내가 초등학생이던 40대 초반 유방절제 수술을 받았다. 그 후 수차례 항암 치료와 수술을 받았지만, 일상생활을 악착같이 해냈고 네 딸을 여느 어머니와 같이 살뜰하게 보살폈기 때문에 2009년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어머니와의 이별이 다가옴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80대에 접어든 아버지는 폐암을 비교적 초기에 발견해 잘 치료해 가고 있음에도 병을 받아들이는 마음과 태도가 아주 달랐다.

젊어서부터 주머니 안 동전까지 정확히 꿰고 사신 아버지는 유난히 나의 급여 관리에 관심이 많다. 생활비 카드를 호기 있게 주시고도 매달 고지서가 날아오면 뚫어지라 항목을 살피고, 결제 총액이 100만원이 넘거나 본인이 이해하기 힘든 지출에 대해서는 붉은 동그라미를 쳐서 내 화장대 위에 올려두곤 했다. 지금까진 그저 성격이려니 했는데, 이달부턴 가계부라도 보여드려야겠다 생각이 든다. 그간 아버지가 보기엔 허술할지 몰라도 내 나름대로 간소한 삶을 지향하며 지출을 통제해 왔다. 탁상달력에 몇 가지 항목만 기재하는 간단한 형태이긴 하지만, 매달 필수지출과 경조사, 충동소비를 합산해 정산하고 평가해 지출을 수정해 왔다. 철부지 막둥이가 그래도 가정경제를 감당할 준비 정도는 해 왔음을 알면 마음이 조금이라도 편안해지지 않을지.

아버지의 코로나 블루가 전염이라도 된 것일까? 아버지의 진심 어린 당부가 나는 왜 이리 서글프고 애달픈지 모르겠다.

공무원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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