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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주말 ‘만원사례’ 중고서점서 찾은 또다른 재미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재동의 남자도 쇼핑을 좋아해(20)

허름한 외관에 실내는 책으로 가득 차 있고, 특유의 종이 냄새가 가득한 곳. 중고서점 하면 떠오르는 모습이다. 실제로 어린 시절에 갔던 중고서점이 그랬다. 나의 보물 1호였던 만화 ‘슬램덩크’를 구하러 다니던 20년 전 이야기다. 당시 책 대여점 인기가 줄어 폐업이 많았는데, 중고서점에서 그 책들을 매입해 노끈으로 만화책이나 무협지 전질을 함께 묶어 팔곤 했다.

대학 때는 전공 서적을 구하러 중고서점을 찾기도 했다. 몇 만원이나 하는 책을 조금이라도 싸게 사려고 한 것인데, 『맨큐의 경제학』같이 유명한 책이 아니면 사실 구하기는 어려웠다. 더구나 찾는 책이 어느 서점에 있는지도 모르는 채 무작정 중고서점을 다녀야 하니,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보다 어려웠다.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 책과는 멀어졌고 중고서점을 갈 일은 더욱 없었다.

소설과 만화책들을 전집으로 묶어놓고 파는 헌책방. [중앙포토]

소설과 만화책들을 전집으로 묶어놓고 파는 헌책방. [중앙포토]

몇 년 전 강남역에 갔다가 누군가 윤동주의 초상화가 그려진 비닐 쇼핑백 들고 다니는 것을 봤다. 디자인과 아이디어가 좋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중고서점 체인점의 쇼핑백이었다. 강남역에 있는 그 서점에 가면 입구가 윤동주, 정지용, 알베르 카뮈, 버지니아 울프 등 문인의 초상화로 꾸며져 있다. 대형 중고서점 체인인 그곳은 기존 헌책방과 달리 깔끔한 인테리어에 잠시 책도 읽을 수 있는 카페 같은 자리도 제공하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중고서적을 검색해 찾을 수 있었다. 그간 많은 사람이 필요로 했지만 시도하지 않았던 중고 책을 사고팔 수 있는 플랫폼이 생긴 것이다.

고백하건대 나는 책을 많이 읽는 편이라고 할 수 없다. 서점 입장에서 본다면 단골손님은 못되고 뜨내기손님 정도 되는 것 같다. 주로 사는 책도 거의 만화다. 하지만 지나가는 길이라도 중고서점이 보이면 꼭 들어가 보는 편이다. ‘무슨 책을 사야지!’ 마음먹고 가지 않아도 둘러보는 재미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특히 ‘오늘 들어온 책’ 코너를 좋아한다. 가끔은 득템하는 경우도 있는데, 구하기 힘든 희귀한 만화책들을 구한 적도 있다. 또한 시중에서 구하기 어려운 작가의 절판본이나, 이벤트성으로 기획돼 구하기 힘든 책도 구할 수 있다.

미남미녀 작가들로 인테리어를 한 헌책방. [사진 한재동]

미남미녀 작가들로 인테리어를 한 헌책방. [사진 한재동]

옷이나 가전제품처럼 중고라는 이력이 마냥 감가상각이 되는 것과 달리, 책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다는 좋은 이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중고서점 책장에 꽂혀 있는 책은 어느 정도 검증이 된 느낌이 든다. 실제로 중고서점을 통해 구매한 책은 만족도가 높았다. 그중 기억에 남는 책을 떠올려보면, 박시백 화백의 『조선왕조실록』(총 21권), 대망을 만화로 만든 『도쿠가와 이에야스』(총 13권) 등이 있다. 사실 중고서점에서 보기 전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책인데, 모두 ‘오늘 들어온 책’ 코너에서 보고 구매했다. 유명 베스트셀러보다 이런 숨어있는 책을 찾는 재미가 있는 것 같다.

중고서점을 보는 또 다른 재미는 바로 굿즈 쇼핑이다. 처음에는 작은 매대에 문구류를 팔던 것에 지나지 않았는데, 점점 인기를 끌더니 이제는 서점의 고정적인 판매대를 꽤 크게 차지하고 있다. 상품 기획자가 마케팅을 잘하는지, 서점을 방문할 때 나도 모르게 하나씩 들고나오게 된다. 지적 허영심을 자극하는 책갈피부터 에코백, 만년필까지 종류도 다양해 자칫하면 중고서점 와서 책보다 굿즈에 돈을 더 쓰게 되기도 한다.

젊은 층에 굿즈가 인기 있는 덕분인지 강남이나 신촌 등 번화가 지점에는 주말에 정말 사람이 많다. 책을 사려는 고객 말고도 팔려는 사람도 감당해야 하니, 직원도 여간 바쁜 것이 아니다. 서서 읽던 사람이 잘못 꽂아 놓은 책도 정리해야 하고, 오늘 새로 들어온 책을 분류하고 온라인에 등록해둬야 한다. 인터넷에 따르면 중고서점 아르바이트는 고되기로 유명하다고 할 정도다. 주말에 사람 북적이는 중고서점의 풍경을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뉴스가 믿어지지 않는다.

중고서점 굿즈 쇼핑은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사진 한재동]

중고서점 굿즈 쇼핑은 놓칠 수 없는 재미다. [사진 한재동]

위의 말처럼 중고서점에서 책을 살 수도 있지만 가지고 있는 책도 팔 수 있다. 그러나 중고서점에서 책을 사는 것은 추천하지만, 파는 것은 사실 추천하기 어렵다. 아무리 관리를 잘하고, 새것에 가깝다고 해도 값을 잘 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책에 이름이라도 썼다면, 십 분의 일 가격도 받기 어렵다. 예전에 중고서점에 책 6권을 넘기고도 1권을 사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책을 가장 가치 있게 처분하는 좋은 방법은 지인에게 책을 추천하는 이유를 적어 선물로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중고서점에 넘기는 것은 가급적 마지막으로 하는 게 좋겠다. 몇만 원 하는 대학 교과서조차 좋은 값을 받기 힘들다. 차라리 그 교과서를 필요로 하는 학생과 직접 만나 거래하는 것이 훨씬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그게 어려워서 이런 중고서점 플랫폼이 생긴 것이다.

직장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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