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선 1000㎜ 물폭탄…온난화가 무지막지한 괴물 태풍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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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인 제9호 태풍 '마이삭'. 사진=미 항공우주국(NASA)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인 제9호 태풍 '마이삭'. 사진=미 항공우주국(NASA)

거센 비바람을 동반한 제9호 태풍 '마이삭 '이 한반도를 향해 북상하고 있다.
태풍이 스치는 제주도는 물론 태풍이 상륙할 남해안과 영남 지역에서는 큰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우려된다.

온난화가 태풍 피해 키우는 5가지 이유 #에너지 더 많이 얻고, 수증기 더 머금어 #가을까지, 더 북쪽까지 진출 피해 키워

여기에 제10호 태풍 '하이선'도 일본 열도를 관통해 오는 7일쯤 영남지방에 영향을 줄 것으로 기상청은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 7개의 태풍이 영향을 준 데 이어 올해는 지난달 8호 태풍 '바비'를 비롯해 3개가 연이어 한반도에 영향을 주는 셈이다.

기상청 국립태풍센터는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를 통해 "한반도에 상륙하는 태풍 숫자는 줄어드는 추세이지만, 상륙하는 태풍은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9호 태풍 '마이삭'의 예상진로. 자료:기상청

제9호 태풍 '마이삭'의 예상진로. 자료:기상청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예상 진로. 자료:기상청

제10호 태풍 '하이선'의 예상 진로. 자료:기상청

특히, 기후 변화로 인해 21세기 말까지는 태풍의 강도가 최대 11%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실 기상전문가들은 지구가 더워지는 온난화가 지속할 경우 앞으로 태풍·허리케인 같은 열대성 저기압으로 인한 인명·재산 피해가 갈수록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
전문가들이 그렇게 예상하는 이유는 대략 다섯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2일 오후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인 제9호 태풍 마이삭의 모습. 자료:기상청

2일 오후 한반도를 향해 북상 중인 제9호 태풍 마이삭의 모습. 자료:기상청

①해수 온도 상승이 초강력 태풍 만든다

자료;국립태풍센터

자료;국립태풍센터

태풍이나 허리케인 같은 열대저기압은 더운 바닷물에서 탄생한다. 더운 바닷물에서 발생하는 수증기에서 에너지를 얻는다.

지구온난화로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세력이 더 강한 태풍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중심 기압이 낮고 더 강해지면서 파괴력이 커지는 것이다.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해 7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하이옌'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태풍의 최대 풍속은 초속 63.9m(시속 230㎞)를, 순간 최대풍속(1분 풍속)은 초속 87.5m(시속 315㎞)를 기록했다.

지난 100년 동안 전 세계 해수 온도는 평균 1도가량 상승했고, 그 만큼 강력한 태풍이 나타날 가능성도 커졌다.

다만, 발생하는 태풍 숫자에 대한 전망은 엇갈린다. 일부 지역에서는 태풍이 발생이 줄어들 수도 있고 늘어날 수도 있다.
북서 태평양, 동아시아에 영향을 주는 태풍 발생 숫자에 대해서도 엇갈리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고 있다.

제주대 태풍연구센터장인 문일주 교수는 "적도 부근에 쌓인 열을 중위도 지방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게 태풍이므로 초강력 태풍이 한꺼번에 에너지를 이송하기만 한다면 태풍이 자주 발생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②힘을 유지한 채 북상한다

제18호 태풍 차바의 북상으로 2016년 10월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앞 방파제에 집채 만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중앙포토

제18호 태풍 차바의 북상으로 2016년 10월 5일 오전 부산 해운대구 마린시티 앞 방파제에 집채 만하 파도가 몰아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6년 10월 초 태풍 '차바'가 강타해 부산·울산 등지에 적지 않은 피해를 줬다.

해수 온도가 상승하고, 여름철이 길어지면서 태풍이 강한 세력을 유지한 채 더 북쪽까지 이동하고, 더 늦은 시기까지 북쪽으로 진출하게 된다.

2016년 10월 한국기상학회 가을 학술대회에서는 "기후변화가 지속할 경우 21세기 말에는 한 해 동안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 숫자가 지금보다 최대 두 배로 늘어날 것"이란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현재 한반도에 영향을 미치는 태풍 숫자가 연평균 3.2개인데, 6개 정도로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다.

기상학자들은 "태풍의 경우 북위 27도 부근, 즉 대만 부근 해역에서 가장 강력해지고, 그다음부터는 약해지는 게 보통인데, 해수 온도가 높게 유지되면 태풍이 세력을 잃지 않고 한반도로 다가올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지난달 서해로 북상했던 태풍 '바비'의 경우 대만을 지나면서도 세력이 줄지 않았고, 제주도 서쪽을 지날 때 세력이 가장 컸다.

특히, 태풍 ‘차바’처럼 10월 초인데도 한반도에 강력한 태풍이 불어왔다는 것은 ‘슈퍼 태풍’이 한반도에 상륙할 가능성도 커졌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미국 합동태풍경보센터(JTWC)의 기준에 따르면 ‘슈퍼 태풍’은 중심 부근 최대 풍속이 초속 67m 이상인 태풍이다.

③해수면 상승이 침수·해일 피해 키운다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그래픽=김주원 기자 zoom@joongang.co.kr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빙하가 녹아내리면 해수면이 상승하게 된다. 또,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바닷물 부피가 팽창해 해수면이 상승한다.

같은 세력의 태풍이라도 해수면이 상승하면 연안 침수 피해가 늘어날 수 있다. 특히 태풍 해일 피해가 증가할 수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따르면 한반도 해역에서는 평균 해수면이 최근 40년간 약 10㎝ 상승했다.
2015년 말 기준으로 산정된 해수면 상승률은 연평균 2.48㎜였고, 해역별로는 남해가 2.89㎜, 동해는 2.69㎜, 서해는 1.31㎜ 상승했다.

10㎝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먼바다에서부터 연안까지 드넓은 면적에 걸쳐 10㎝ 높이의 물을 태풍이 밀어댄다면 해안에서는 엄청난 높이가 될 수 있다.

태풍과 해수면 상승의 조합이 일어난다면 영종도 인천공항도 모두 물에 잠기게 될 것이란 경고도 나온다.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 따르면 기후변화가 지금과 같은 추세로 진행된다면 2100년까지 한반도 연안의 해수면은 1.36m 상승하고, 남한 국토 면적의 4.1%에 해당하는 4149.3㎢가 해수 침수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로 인한 경제적 피해가 토지와 주택 침수 피해, 주민 이주비용, 경제활동 손실 등으로 2100년까지 286조원(현재 가치)에 이를 것으로 KEI는 추산했다.

④수증기 증가로 '물 폭탄'이 떨어진다

지난해 9월 23일 대구시 수성구 금호강 둔치가 전날 태풍 '타파'가 몰고 온 폭우에 대부분 잠겨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23일 대구시 수성구 금호강 둔치가 전날 태풍 '타파'가 몰고 온 폭우에 대부분 잠겨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제17호 태풍 '타파'가 몰고 온 '물 폭탄'으로 전국 곳곳에 폭우가 쏟아졌다.
제주도 한라산 어리목에서는 727.5㎜의 강수량이 기록됐고, 한라산 윗세오름에도 649㎜의 폭우가 퍼부었다.

2002년 태풍 '루사' 때는 강릉에 하루 870㎜의 폭우가 내리기도 했다.

열역학 관련 클라우시스-클라페이론 방정식(Clausius-Clapeyron equation)에 따르면 기온이 섭씨 1도 상승하면 대기는 수증기를 7% 더 포함할 수 있다.
지구 평균기온은 지난 100년 동안 약 1도 상승했고, 이로 인해 더 많은 수증기를 함유하게 된다.

2017년 8월 미국 텍사스 휴스턴을 강타한 허리케인 '하비'는 일주일 넘게 이 지역에 연간 총 강수량과 맞먹는 '물 폭탄'을 쏟아부었다. 1000㎜가 넘는 엄청난 폭우가 쏟아진 것이다.

미국 로런스 버클리 국립연구소는 지구온난화가 하비 강수량을 19~38%는 끌어올렸다고 추산했다.
네덜란드 왕립기상연구소도 인간이 유발한 지구온난화 시대가 오기 전을 가정한 환경과 비교한다면 하비가 뿌린 폭우 양이 15%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⑤느리게 이동하며 계속 타격한다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해 7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하이옌'. 태풍의 눈이 뚜렷하다. 미 해양대기국(NASA)

2013년 11월 필리핀을 강타해 7000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태풍 '하이옌'. 태풍의 눈이 뚜렷하다. 미 해양대기국(NASA)

태풍 이동 속도가 느려지면 빨리 지나가는 것보다 더 큰 피해를 키우게 된다. 누적 강수량도 많아지고, 강풍에 노출되는 시간도 길어진다.

지난 2018년 6월 미국 해양대기청(NOAA)은 네이처에 발표한 논물을 통해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태풍을 비롯한 열대 저기압의 이동속도가 70년 전보다 10% 정도 느려져 피해를 가중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한반도와 일본을 포함한 북태평양 서쪽 지역의 경우 태풍 이동속도가 20%나 느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전문가들은 "온난화로 대기와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열대지역의 대기순환이 약해져 열대 저기압의 이동 속도가 떨어지고, 태풍의 이동속도가 느려지면 같은 지역에 내리는 강우량이 증가한다"고 설명한다.

기후변화, 지구온난화로 태풍 피해가 증가한다는 것은 인류가 온실가스를 배출한 데 따른 결과이고, '부메랑'으로 되돌아온다는 얘기다.
지금 당장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기후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지구의 경고'인 셈이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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