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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강찬호 논설위원이 간다

대통령은 ‘욕해도 된다’는데 경찰은 ‘대통령 모욕죄’ 수사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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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강찬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대통령 비판 전단 뿌린 30대 청년 ‘죽음같은 10개월’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17년 2월 9일 JTBC ‘썰전’에서 ’대통령이 됐을 때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나“는 질문을 받자 ’참아야죠. 국민들은 비판할 자유가 있죠“라고 대답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JTBC 캡처]

대통령 후보 시절인 2017년 2월 9일 JTBC ‘썰전’에서 ’대통령이 됐을 때 납득할 수 없는 비판, 비난도 참을 수 있나“는 질문을 받자 ’참아야죠. 국민들은 비판할 자유가 있죠“라고 대답하는 문재인 대통령. [사진 JTBC 캡처]

“대통령을 모욕하는 정도는 표현의 범주로 허용해도 됩니다. 대통령 욕해서 기분이 풀리면 그것도 좋은 일입니다.”

10번이나 출두하고 휴대폰도 털려 #“경찰, 누가 고소했는지조차 쉬쉬해” #“VIP에 보고, 널 콕 집어 처벌하란다” #법조계 “친고죄 원칙 무시한 무리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7일 교회 지도자들과의 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그는 3년 전에도 똑같은 말을 했다. 2017년 2월 9일 JTBC ‘썰전’에서 “참아야죠. 뭐. 국민은 얼마든지 권력자를 비판할 자유가 있죠. 그래서 국민이 불만을 해소할 수 있고 위안이 된다면 그것도 좋은 일 아닌가요”라고 말한 것이다. 두 번이나 이랬으니 빈말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다. 문 대통령 비판 대자보를 붙인 청년이 ‘건조물 침입’ 혐의로 1심 유죄를 선고받아 범죄자 신세가 된 데 이어 국회 분수대에서 문 대통령 비판 전단을 뿌린 30대 청년이 ‘대통령 모욕’으로 1년 가까이 수사를 받고 있다. 휴대전화를 석 달간 압수당하고 경찰에 10차례나 출석해 강도 높은 추궁을 당했다.

김정식씨가 지난해 살포한 문 대통령 등 여권인사 비판 전단.

김정식씨가 지난해 살포한 문 대통령 등 여권인사 비판 전단.

모욕죄는 친고죄라 문 대통령이 고소하지 않는 한 ‘대통령 모욕’죄는 성립하지 않는다. 공소제기가 안 되니 수사할 일도 없다. 그런데 ‘피의자’가 된 김정식(33)씨에 따르면 경찰은 김씨에게 누가 고소했는지는 물론, 피소 여부조차 알려주지 않고 수사를 이어가 논란이 일고 있다. 김씨로부터 들은 사건 전말을 재구성했다.

“대통령님 욕하면 어떻게 하나”

“2019년 7월 17일 오후 5시경 국회 분수대 앞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박원순 서울시장, 유시민씨 등 여권 인사를 비판하는 전단을 뿌렸다. 그러자 서울 영등포경찰서 ‘집중수사팀’에서 출석요구서가 날아와 가보니 안내데스크에선 모르더라. ‘하명수사’를 위해 특별히 세워진 태스크포스팀이란 느낌이 번쩍 들었다. 수사관은 날 보자마자 ‘대통령님 욕하면 어떻게 하나’ 하더라. ‘대통령이 나라님이냐? 비판도 못 하나? ‘님’자는 왜 국민에게 강요하나?’고 항의했다. 그러자 수사관은 ‘문 대통령을 북조선의 X라고 표현한 대목이 너무 셌다’면서 ‘VIP(청와대를 지칭한 듯)에 보고됐는데 당신 이름을 콕 집어 처벌해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기자들이 전화를 걸어오자 경찰은 입을 다물었다.”

“대통령이 고소했냐고? 내 입으로 말 못해”

“경찰에 ‘문 대통령이 날 모욕죄로 고소했느냐’고 물으면 ‘누군지 뻔히 알 건데 내 입으로 못 말한다’고 하더라. ‘피해자가 누구냐? 합의라도 보자. 1백만원 주겠다. 고소되긴 된 거냐’고 캐물으니 ‘에이 다 알면서 왜 물어. 내 입으로 그게 나오면 안 돼’ ‘누구인지 충분히 알 거라고 생각한다”고 하더라. ‘개인인지 기관인지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해도 ‘절차대로 진행되고 있으니까 협조만 해라’고만 하더라. 너무 화가 나서 ‘경찰이 정권의 충견이라고 자백하는 거냐. 대통령도 국민의 욕은 참겠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항의하니 ‘그런 식으로 말하면 안 되고 국회 방호처에서 연락 왔으니 경찰도 그냥 넘어갈 순 없지 않느냐’라고 하더라. 절박한 심정에서 청와대 비서실과 대검·경찰청에 날 고소한 이가 누구인지 알려달라고 정보 공개를 청구했다. 그런데 세 기관 모두 영등포서로 그 요구를 이첩하더라. 황당했다. 영등포서는 내게 ‘이런 것 괜히 해봤자다. 쓸데없는 것 보내지 말고 수사나 받아라’고 했다.”

석 달간 핸드폰 샅샅이 털려

“2월 12일에 영등포서 집중팀 형사 4명이 인천 남동구 내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영장도 안 보여준 채 폰을 압수하려 했고, 비밀번호 안 알려주었는데 수사관이 나 모르는 사이 내가 번호 누르는 모습을 녹화해 패턴을 파악하고 풀어버리더라. 메시지, 통화내역, 녹취록 등 저장된 내용이 전부 털렸다. 사건과 무관한 것도 조사할까 봐 5차례 포렌식 과정에 일일이 참여했다. 수사받은 것까지 합치면 경찰에 10번은 가야 했다. 경찰은 내가 광화문 집회에 나가 연설한 사실 등 나와 관련된 정보를 죄다 확보해놨더라. ‘유튜브에도 많이 나오데’라고 핀잔을 주기도 했다. 그걸 보면 내가 관여한 전대협 등 보수 청년 단체 조직을 파헤치려는 목적 같았다.”

문 대통령 비난 대목만 집중 추궁

“경찰은 문 대통령을 비난한 대목만 집중 추궁했다. 난 박원순·유시민 등도 비판했는데 그들에 대해선 전혀 안 물어봤다. ‘대통령을 어떤 이유로 북조선의 X라 욕했나’고 추궁하고 전단을 만든 배후와 공범을 캤다. ‘이런 행동 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건 알았나?’라고도 묻더라. ‘배후는 없고 그냥 내가 한 것’이라 하니 ‘인쇄업체가 어디냐’까지 묻더라. 기자들에게 이 얘기를 해주니 ‘요즘도 대통령 모욕죄가 있느냐’며 못 믿겠다고 하더라. 그러다 내가 수사받는 사실이 보도되니까 경찰은 ‘언론에 말 좀 하지 말라’며 엄청나게 화를 냈다.”

총선서 야당 참패하자 ‘그것 봐’

“경찰은 일하는 나를 수시로 불러 똑같은 질문만 퍼부었다. 내 활동 자체를 위축시키려는 목적으로 보였다. 동생이 야당에 있다 보니 수사 초반에는 날 야당 끄나풀로 몰고 가려는 듯도 했다. ‘쌍둥이 동생이 한국당 당협위원장이네. 출마했네’라고 하더라. 결국은 내 단독 행동임을 알고 초점을 바꾸더라. 야당이 참패한 4·15 총선 직후 경찰에 가니 내게 ‘거 봐’라고 하더라.”

‘욕해도 된다’는 대통령 발언? 그건 그거고 …  

“경찰은 5월 말 나를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겼는데 ‘빠꾸’(수사 보강 지시)를 먹었다고 한다. 그 뒤 7월 초 마지막 심문을 받은 후론 감감무소식이다. 지난달 27일 대통령이 ‘날 모욕해도 좋다’고 발언한 직후 경찰에 전화해 ‘대통령이 한 말 들었나’고 하니 어색한 웃음과 함께 ‘그건 그거고 우리가 판단해 방향을 정할 것’이라 하더라. 10개월 넘게 피의자 신세로 지내니 조리돌림을 당하는 느낌이다. 날 차라리 구속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사람들이 정권의 실상을 알 것 아니냐?”

표현이 지나친 건 아닌가?

“반일(反日)을 국내 정치에 이용하는 정권의 행태가 국익을 해친다고 비판하면 친일파로 몰지 않나. 그런데 여권 사람들 조상 중엔 친일파가 없나? 그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또 ‘북조선의 X’는 내 주장이 아니라 일본 잡지사가 쓴 표현을 번역한 것뿐이다. 일본 잡지사에는 항의 한마디 안 하면서, 또 북한이 문 대통령을 ‘삶은 소대가리’라고 욕해도 가만있으면서 왜 국민만 잡나.

정무수석 최재성 “일반인이 댓글 다는 건 표현의 자유”

경찰은 “김정식씨 수사는 적법하다”는 입장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1일 “문 대통령이 김 씨를 고소했는가?”라는 질문에 “수사 중이라 확인해줄 수 없다. 고소 여부도 수사의 일부”라고 했다.

경찰이 10개월 넘게 수사 중이라면 고소가 있었다고 추정할 수 있지 않나.
“신중하시라. 이 사건과는 별개로, 모욕죄는 법리상 (고소가 없어도) 수사가 가능하다.”
대통령은 ‘날 모욕해도 된다’는데 경찰은 ‘대통령 모욕’죄로 수사 중이다.
“그 질문엔 전혀 답변할 수 없다. (왜인가? )내가 말할 사안이 아니다.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김씨 수사에 대해 법조계는 부정적 입장이다. 문 대통령으로부터 ‘날 욕해도 된다’는 발언을 끌어낸 전원책 변호사는 “모욕죄는 고소가 없는 한 공소는 물론 수사도, 내사도 하면 안 된다. 그러면 불법”이라고 했다. 배승희 변호사는 “법리상 수사까지는 할 수 있지만, 경찰이 고소도 없는데 모욕죄 수사를 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 과잉수사라 비판받기 충분하다”고 했다.

지난달 11일 임명된 최재성 정무수석의 입장도 눈길을 끈다. (정무수석은 청와대에서 경찰을 관장한다). 그는 2018년 언론 인터뷰에서 “문 대통령을 ‘문죄인’이라 비난하는 댓글을 그냥 둬야 하나”는 질문을 받자 이렇게 답했다.

“정치인이 그런 표현을 쓰면 금도를 넘어선 것이라 조처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일반인이 그렇게 하는 건 표현의 자유 영역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중략) 아주 심플하다. 고 최진실씨가 댓글에 시달리다 유명을 달리했을 때 국회가 당사자의 고발 없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입법하려 했는데 내가 반대했다. 명예를 훼손당한 사람이 고발하면 되는 거다. 표현을 갖고 뭐라 하는 건 안 맞다.” (그는 “대통령을 그렇게 부르는 건 국민 모두의 수치일 수 있다. 죄인이라 말하면 죄상이 있어야 한다. ‘문죄인’은 표현의 자유 영역과 사실에 어긋나는 영역의 경계에 있다”고 덧붙였다)

강찬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