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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미·중에 낀 한국 외교 ‘신뢰받는 동반자’로 돌파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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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안인해 전 국제정치학회장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안인해 전 국제정치학회장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코로나19 팬데믹의 공포가 지구촌을 덮치면서 미국과 중국의 책임 공방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 국유기업 화웨이 제품 사용 금지에 이어 위챗·틱톡 제재 조치를 발표했고, 한국은 동참을 요구받고 있다.

양제츠 깜짝 방한 후 고민 깊어져 #미·중 믿음 얻고, 한·일 관계 개선을

이런 엄중한 시기에 최근 부산을 방문한 양제츠(楊潔篪) 중국 공산당 정치국원은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첫 대면 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연내 방한 일정에는 구체적 합의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한·중·일 3국 정상회담이 예정대로 연말에 한국에서 개최되면 리커창 총리가 방한할 것이다.

서훈 실장은 동북아 및 세계 평화와 번영을 위해서 미·중 공영과 우호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양 위원은 미·중 갈등 상황과 중국 측 입장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월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닉슨 대통령기념관 앞에서 미·중 관계에 대해 연설했다. 그는 ‘중국 정부와 시진핑 주석’을 ‘중국공산당(CCP)과 시진핑 총서기’라고 표현했다. 시 주석을 ‘파산한 전체주의 이데올로기 신봉자’로 비판하면서 미국은 자유주의 세계를 지키기 위해 공산주의 중국과 결별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1972년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사상 처음 중국을 방문해 마오쩌둥 주석을 만나 미·중 데탕트 시대를 연 닉슨 대통령 시대와는 결별하겠다는 정책 구상이다.

11월 3일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든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든 국익을 우선하는 미국의 대외 전략 추세는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중국과 북한에 대한 봉쇄와 압박은 이어질 것이다.

주요 7개국(G7) 회담을 확대해 개최하길 원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포위하기 위해 대선 이후 G11 회담에 한국을 초청하고자 한다. 한국이 옵서버로 참석할 수 있겠지만, 정식 회원국이 되려면 참가국 모두 동의해야 하므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이와 관련, 중국 외교부는 다자회의 확대가 바람직하다는 메시지를 내 주목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회담 분위기를 가장 솔직하게 중국 측에 전달할 수 있는 참가국으로 중국은 한국을 염두에 두는 듯하다. 한국의 국익을 극대화하려면 다른 국가와의 조율, 특히 한국의 G11 참여를 반기지 않는 일본과의 협조가 절실하다. 따라서 한국은 아베 신조 총리의 전격 사임 이후 새 총리와 한·일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남북 협력을 위한 돌파구를 찾고 싶어하는 한국에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는 북·미 관계와 남북 관계를 쌍두마차처럼 끌고 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피력했다. 북한의 최대 목표는 북·미 관계 개선을 통한 미국의 적대시 정책 철회다. 그렇기에 미국이 한국을 신뢰하지 않는다면 북한은 남북 대화나 교류 협력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와 중국몽(中國夢)을 내세우며 패권 경쟁으로 치닫고 있는 미·중 사이에서 한국이 균형을 잡아 중재 외교(Mediatory diplomacy)를 할 수 있는 여지는 사실상 없어 보인다.

미·중의 이해관계 충돌 와중에 대화와 협력이 이뤄지도록 한국이 가교 역할을 통한 중개 외교(Bridging diplomacy)를 하려면 양국으로부터 신뢰받는 동반자가 돼야 한다. 전략적 모호성(Ambiguity)은 미·중 모두의 불신을 받게 돼 오히려 한국이 설 자리를 잃을 공산이 크다.

한·중 수교 28주년(24일) 즈음에 이뤄진 한·중 고위급 만남에 중국 측은 상당한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의 여정은 멀기만 하다. 한국은 미·중 관계의 현재와 미래를 정확히 꿰뚫어 보면서도 양국 모두로부터 믿음을 얻는 전략적 신뢰성(Reliability)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안인해 전 국제정치학회장·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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