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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한미일 국방회담 빠진 정경두 해명 "이취임식 못하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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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8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정 장관은 미국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 31일 중앙일보에 "회의에 다녀오면 자가 격리를 해야 해서 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뉴스1]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8월 25일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정 장관은 미국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에 불참한 것과 관련해 31일 중앙일보에 "회의에 다녀오면 자가 격리를 해야 해서 가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뉴스1]

미국이 한ㆍ미ㆍ일 국방장관 회의(8월 29일 괌 개최) 참석을 요청했는데도 한국만 불참한 것과 관련해 군은 물론 정치권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경두 국방부 장관이 “회의에 다녀오면 자가 격리를 해야 해서 가지 않았다”는 옹색한 해명을 내놓아 논란을 키우고 있다.

"퇴임 정리할 것 많아 안 가기로 한 것" #청와대 관여설엔 "그건 아니다" 부인 #공무 출장은 격리 아닌 '능동감시' 대상 #전문가 “동북아 격변기, 빠진 건 납득 안돼”

정 장관은 31일 중앙일보와 통화에서 “회의에 갔으면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상황이었고, 퇴임으로 정리할 것도 많아 안 가기로 한 것”이라고 불참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녀오면 장관 이ㆍ취임식에도 참석하지 못한다”고 했다.

정 장관은 '청와대와 조율 과정에서 안 가기로 한 것은 아니냐'는 질문엔 "그런 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한ㆍ미 국방장관 회담은 올해 (11월에 열리는) SCM(한ㆍ미안보협의회)도 있으니 후임 장관이 잘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9일 미국령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미·일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당초 미국 측은 한국에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를 제안했으나, 한국이 불참 통보하면서 양자 회담으로 바뀌었다. [미 국방부 트위터 캡처]

지난 29일 미국령 괌 앤더슨 공군기지에서 미·일 국방장관 회담이 열렸다. 당초 미국 측은 한국에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를 제안했으나, 한국이 불참 통보하면서 양자 회담으로 바뀌었다. [미 국방부 트위터 캡처]

하지만 이런 해명은 사실과 다르다. 외교관이나 공무원이 해외 출장을 갈 경우, 사전에 현지 공관에서 격리면제서를 발급받아 질병관리본부에 제출하면 출국과 귀국 시 PCR 검사(호흡기 검체 검사)만으로 격리가 면제된다. 이후 스마트폰에 앱을 내려받아 자가 체크하는 이른바 ‘능동감시’ 형태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다.

실제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9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독일 출장을 다녀온 뒤 격리가 아닌 능동감시 조치를 받았다.

이날 열린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서도 정 장관의 불참 문제는 논란이 됐다. 미래통합당 태영호 의원은 강경화 장관에게 “북한 문제를 다루는 자리에 당사자인 한국이 빠진 게 말이 되느냐”는 취지로 질의했다.

이에 강 장관은 “한ㆍ미 국방 양측이 시간 조율에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이해한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이 회의에 참석하지 않아도 다양한 레벨에서 매일 소통하고 있다”며 “연례 SCM 회의를 통해서도 북한 문제는 물론 양국 사안에 대해 충분하고 긴밀하게 협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장관과 비슷한 취지의 답변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한·미·일 국방장관 회의 불참 건을 두고 전문가들 사이에선 “미국 대선을 앞둔 동북아 격변기에 국방 수장이 한ㆍ미ㆍ일이 조율하는 자리에 스스로 빠진 건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11월 제6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 참석차 태국을 찾은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이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 회의를 끝으로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제6차 아세안 확대 국방장관회의 참석차 태국을 찾은 정경두 국방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이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 앞서 기념촬영을 한 뒤 회담장으로 향하고 있다. 이 회의를 끝으로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연합뉴스]

사실 이번 회의는 정 장관이 지난 5월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에 한·미 국방장관 회담을 제안한 게 발단이었다. 당시 인종 차별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하면서 에스퍼 장관이 날짜를 정하기 힘들었고, 지난 7월엔 청와대가 정 장관 교체 발표를 곧 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 우리 측이 날짜를 잡지 못했다고 한다.

한·미 연합훈련 뒤로 장관 인사 발표는 늦춰졌지만, 미국이 한·미·일 3국 국방장관 회의를 열자는 수정 제안에 정 장관은 코로나19와 이임을 핑계로 불참한 것이다.

특히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북한 도발과 미·중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는 시점인 데다, 대선 결과에 따라 ‘주한미군 철수론’이 불거지면서 안보동맹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후임자에게 현안들을 미룬 셈이다. 또 북한이 미국 대선 직전 군사도발을 감행하는 ‘옥토버 서프라이즈(10월의 깜짝쇼)’가 거론되는 상황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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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연구센터장은 “북·중과 관련한 민감한 현안에 대해 현장에서 우리 입장을 얘기해야 설득력이 있지, 피하는 인상을 주면 미국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며 “북·중에도 한ㆍ미가 얽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만큼 회담에 참석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 장관의 해명과 달리 군 안팎에선 “정 장관이 임기 마지막까지 청와대의 눈치를 본 것 아니냐”고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다.

이와 관련, 한 정부 소식통은 “회담 불참을 단순히 국방부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청와대로선 한ㆍ미ㆍ일 회의에서 '중국 미사일 위협' 등 공동의 어젠다가 만들어지는 게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미·일 국방장관은 회담에서 동·남중국해에서 힘을 배경으로 한 중국의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데 의견 일치를 봤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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