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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음 스트레스” “일자리 창출” 풍력발전에 두쪽 난 마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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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청정에너지의 역설〈상〉 풍력

“옛날에 요양 삼아 살려고 왔던 건데 이젠 풍력이 안 보이는 데가 없어요. 집을 버리고 갈 수도 없고….”

터빈 돌아가는 소리가 최대 민원 #‘저주파 소음’ 건강 악영향 논란도 #주민 참여한 제주 가시리 ‘상생모델’ #전기료 혜택, 임대료는 장학금으로

경북 영양군 영양읍 양구리의 한 마을. 암 판정을 받고 2003년 이사왔던 김의환(70)씨는 17년 만에 마을을 떠나려 한다. 김씨는 “산책 삼아 밖에 나가면 ‘윙윙’ 하는 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바람이 좋고 인구밀도가 낮은 양구리 일대엔 4개의 풍력발전단지, 88기의 풍력터빈이 설치됐다. 전국 풍력발전 용량의 14.8%에 이른다.

여기에 새로운 풍력단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주민과 갈등을 빚고 있다. 영양군 삼의리에 사는 남실관씨는 “풍력단지가 또 생기면 동네가 갇히게 돼 사람이 살 수가 없게 된다”며 반대 의사를 밝혔다. 양구리 한 주민은 “밤마다 소리가 나니까 주민들이 밖에 아예 나오지 않는다. 비 오는 날에는 물방울이 튀어 더 심하다”고 주장했다.

찬성 의견도 만만치 않다. 삼의리 이장 장수상(58)씨는 “단지가 들어오면 젊은이도 오고 장학금, 노후주택 개선 같은 혜택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마을이 양분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신재생에너지 사업이 확산되면서 이를 둘러싼 갈등도 커지고 있다. 미래통합당 윤한홍 의원이 17개 시도로부터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신재생에너지 관련 민원은 2017·18·19년 각각 309건·538건·601건으로 증가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274건이 발생했다.

경북 영양군 맹동산에서 바라본 풍력발전단지. 이 일대에는 총 4개의 풍력발전단지가 몰려 있고, 또 다른 단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양인성 인턴기자

경북 영양군 맹동산에서 바라본 풍력발전단지. 이 일대에는 총 4개의 풍력발전단지가 몰려 있고, 또 다른 단지 건설이 추진되고 있다. 양인성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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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주로 소음을 문제 삼는다. 발전기 터빈이 돌면서 발생한 소음이 일상 생활은 물론 건강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주장이다. 특히 사람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주파수 100㎐ 이하의 ‘저주파 소음’ 논란이 커지고 있다. 2018년 환경부가 발표한 가이드라인은 12.5~80㎐의 주파수 중 어느 하나라도 음압레벨(㏈) 기준을 초과하면 저주파 소음의 영향이 있다고 밝혔다.

측정 결과 가이드라인을 초과한 곳이 많았다. 2016년 한국교통대 산학협력단이 환경부 의뢰로 전남과 제주의 풍력발전단지 6개소를 조사한 결과 250m 떨어진 지점에서 5곳이 기준을 초과했다. 발전단지 1㎞ 이내 민가 15곳 중 47%(7곳)에서 저주파 소음의 영향이 발생했다.

발전 소음은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풍력발전이 활발한 덴마크에서 지난해 발표된 장기추적 연구 결과, 풍력단지의 야간 소음은 고령층의 수면과 정신건강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당뇨병·출산율·심근경색 등과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았다.

재생에너지 확산과 정착엔 주민 참여가 관건이다. 2013년 마을 공동목장에 풍력발전단지를 유치한 제주도 서귀포시 가시리에선 경북 영양군 양구리 등에서 있었던 갈등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주민들은 “원상 복구가 가능해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했고, 사업자는 주민 뜻을 존중했다. 현재 가시리는 연간 3억원을 임대료로 받아 장학금 등으로 쓰고, 가구당 월 2만원씩 전기료 혜택도 받고 있다. 자연과 어우러진 풍력단지 덕에 관광객도 늘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이익 공유화 모델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범석 제주대 풍력공학부 교수는 “풍력발전단지 개발 과정에서 지역 고용창출과 수익환원 등 상생 방안을 마련해 지역주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영양·제주=천권필·최연수 기자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양인성 인턴기자 feeling@joongang.co.kr

※본 기획물은 한국언론학회-SNU 팩트체크 센터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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