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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선고발 후취하'…행동 앞선 정부, 교수들도 분노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31일 오후 대구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본관에서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근무 실태 조사에 반발하는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병원을 찾은 보건복지부 조사관을 상대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31일 오후 대구 남구 영남대학교병원 본관에서 보건복지부의 전공의 근무 실태 조사에 반발하는 영남대 의과대학 교수들이 병원을 찾은 보건복지부 조사관을 상대로 피켓시위를 하고 있다. 뉴스1

정부가 지난 28일 집단 휴진에 참여한 전공의·전임의 10명을 형사 고발한 것과 관련해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대한전공의협의회(대전협)가 29일 정부가 고발한 이들 중 뇌출혈 응급 환자 수술에 참여한 전공의, 코로나19 중증 환자 치료 뒤 자가격리됐다가 복귀한 전공의, 병동에 정상 출근한 전임의 등 4명이 무차별 고발 당했다고 밝히면서다.

보건복지부는 논란이 커지자 30일 오후 보도설명자료를 내고 "피고발인이 정상 출근해 진료를 한 것으로 확인되는 경우, 고발을 취하하겠다"고 밝혔다.

중앙대병원은 31일 "고발된 본원 신경외과 전공의는 복지부의 26일 업무개시 명령 일자 전일에 응급수술로 근무하고, 27일 업무개시 명령 일자에도 근무가 확인됐다"며 "수술기록지, 근무기록 등을 근거로 복지부에 고발 취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해당 전공의는 대전협이 "파업 중임에도 당직 교수를 돕기 위해 25일 새벽 4시30분까지 뇌출혈 환자의 응급수술에 참여했고, 26일 정부의 업무개시 명령서를 직접 송달받지도 않았다"고 밝힌 부당 고발 사례다.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28일 정부세종청사 복지부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박능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차장(보건복지부 장관)이 28일 정부세종청사 복지부 브리핑실에서 코로나19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서울 한 대형병원은 정부의 현장 조사 기간에 타 병원에 파견을 갔는데 고발된 전공의가 있어 관련 내용을 복지부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는 이날 "전공의 파업에도 중환자실을 떠나지 못한 흉부외과 전공의 4년차가 고발됐다"며 "정부가 착오로 고발한 것에 대해 고발 취하와 사과를 요구한다"고 성명서를 냈다. 정부 고발 10건 중 문제 제기가 나온 것만 3~4건이다.

이에 의료계에선 기본적인 사실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고발부터 한 정부에 대한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김대하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그간 수차례 의정 갈등에서도 정부가 전공의를 대상으로 업무개시 명령과 고발 조치를 한 적이 없다"며 "그만큼 이번 고발에 대해 의료계가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는데, 부적절한 고발이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선 고발-후 선처가 말이 되느냐"며 "고발해놓고 '아니면 말고 식'의 태도"라고 비판했다.

복지부는 "각 병원 수련부 등에서 제출한 '휴진 참여자 명단'과 확인서를 바탕으로 한 것"이라며 "현장 조사에서 병원에 해당 전공의 및 전임의가 진료 현장에 복귀하지 않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의료계에 따르면 26~27일 현장 조사에서 복지부 공무원들이 병원 측에 전공의 결근자, 휴가자 자료 제출을 요청했다고 한다. '연차(휴가)'를 쓰고 휴진에 참여한 전공의가 많았지만, 휴가서를 제출 못한 전공의, 해당 기간 파견을 간 이들이 주로 결근자 명단에 포함됐다고 한다.

한 병원 관계자는 "결근자 사유 등을 따로 물어봤다면 파견 등의 상황을 설명했을 것"이라며 "단순히 결근자, 휴가자 자료만 요청했고 고발 조치가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 몰랐다"고 말했다.

김현숙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에 업무개시명령 위반 전공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김현숙 보건복지부 의료자원정책과장이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 민원실에 업무개시명령 위반 전공의에 대한 고발장을 제출하고 있다. 뉴스1

정부는 코로나19 재확산 위기 상황에서 근무지를 이탈한 전공의에 대해 엄정 대응하겠다고 고발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고발은 면허정지 처분이나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무거운 처분을 담고 있다. 개별 전공의뿐 아니라 의료계 전체에도 주는 의미가 남다른 만큼 정부가 정확성과 신중함을 기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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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정부의 발빠른 고발은 의료계를 크게 자극한 모습이다.
정부는 이날 비수도권 10곳 수련병원에 대해 전공의 휴진 3차 현장 조사를 시작했다. 경북대병원은 이날 복지부에서 조사를 나오자 재직 교수진 30여 명이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 병원 관계자는 "지난주 타병원 선례를 봤을 때 우리병원 전공의들이 고발을 당할까 싶어 교수들이 나섰다"며 "고발 발생시 사직서 제출 등 단체행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대구 계명대 동산병원과 영남대병원에서도 이날 비슷한 풍경이 연출됐다.

31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본관 로비에서 병원 교수들이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교수 70여 명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병원 방문 시간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쓰고 항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 했다.연합뉴스

31일 대구 중구 경북대학교병원 본관 로비에서 병원 교수들이 보건복지부 전공의 근무 실태 파악에 항의하는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교수 70여 명은 보건복지부 관계자들의 병원 방문 시간에 맞춰 검은 마스크를 쓰고 항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침묵시위 했다.연합뉴스

서울성모병원 청소년과 교수들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전공의의 부재에 교수들이  응급실, 중환자실 대체 근무를 해 실질적인 업무 공백이 없었음에도 잠재적 범법자 취급을 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전공의 단 한 명이라도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 교수일동은 사직을 포함한 단체 행동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선 병원에선 전공의, 전임의들의 사직서 제출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대병원과 분당서울대병원, 보라매병원 등 서울대병원 계열에서 근무하는 전임의들이 이날 오전 사직서를 제출했다. 또 고려대의료원 전공의들도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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