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오래]결혼, 출산, 입양 말고 가족이 될 수 있는 길

중앙일보

입력 2020.08.31 15:00

[더,오래] 배은희의 색다른 동거(30)

아침 8시. 습관처럼 알람을 끄고 옆에 있는 은지를 끌어안았다. 손바닥 가득 은지의 심장이 콩콩 전해졌다. 작은 뺨에 뽀뽀를 하고, 머리를 쓸어주고, 등을 살살 긁어주었다.

“은지야, 더 자고 싶어?” 귓가에 대고 물었다. 대답도 귀찮은지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은지. “조금 더 잘까?” 다시 묻는 순간 인상을 팍 쓰면서 이불을 끌어당기며 소리쳤다. “엄마, 미워!”

그래, 나는 엄마다. 미웠다가 좋았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감정을 쏟아내는 은지 엄마다. 혈연을 뛰어넘어 엄마와 딸로 만난 사이인데 이렇게 눈치 보지 않고 미우면 밉다고, 좋으면 좋다고 표현하는 은지라서 참 다행이다.

위탁가족의 호칭을 보면 제 각기다. 은지처럼 아기 때 위탁부모를 만난 경우는 엄마·아빠라고 부른다. 하지만 어느 정도 커서 위탁부모를 만난 경우 큰엄마·큰아빠, 이모·삼촌이라고 부른다. 한 집에 이모랑 삼촌이 부부로 살고 있는 격이다. 이상한 조합이지만 위탁가족 대부분은 그걸 인정하고 한 생명을 키운다. 남남에서 가족이 되는 과정을 묵묵히 감내하며 한 식탁에 둘러앉는다. 식성이 닮아가고, 습관이 닮아가면서 가족이 되어간다.

내가 위탁부모가 된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젖먹이 은지를 만나고, 매일 씻기고 입히면서 사랑을 배워갔다. [사진 배은희]

내가 위탁부모가 된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젖먹이 은지를 만나고, 매일 씻기고 입히면서 사랑을 배워갔다. [사진 배은희]

초등학교 교과서엔 가족이 되는 세 가지 방법을 결혼, 출산, 입양이라고 설명한다. 위탁엄마로서 나는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가족이 되는 방법은 결혼, 출산, 입양, 위탁이라고. 이 네 가지 방법을 통틀어 한 마디로 표현하면 사랑이라고.

가족이 되는 방법은 결국 ‘사랑’이다. 혈연이어도 사랑이 없는 가족은 남남이고, 혈연이 아니어도 사랑하면 가족이 된다. 가족이 되게 하고, 가족으로 살게 하는 것이 사랑이다.

그러고 보면, 가족의 시작도 사랑이다. 부모님과 결혼한 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면서 한 가정을 이룬다. 그 사랑 안에서 한 생명이 태어나고 사랑 속에서 자라간다. 그렇게 성장한 사람이 또 한 사람을 사랑하고, 사랑 속에서 사람이 태어난다. 동전의 양면처럼 사랑과 사람은 닮은 데가 있다.

내가 위탁부모가 된 것도 사랑 때문이었다. ‘가정위탁제도’를 통해 젖먹이 은지를 만나고, 매일 씻기고 입히면서 사랑을 배워갔다. 막연히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은지를 만나면서 내 삶이 의미를 찾아갔다. 그게 사랑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요즘 고민하는 건, ‘어떻게 하면 은지랑 두 아이들(휘성, 어진)이 평생 형제간의 우애를 갖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은지에게 믿고, 의지할 형제가 있다면 더 든든할 테니까. “은지 잘 챙겨주고. 은지 공부하는 것도 도와주고……, 알았지?” 한편으론 두 아이에게 짐을 얹어주는 게 아닌가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부모가 선택한 것을 아이에게 전가하는 것 같아서. 하지만 평생 은지의 언니·오빠로 살아준다면 그게 잘사는 인생이고, 그게 큰 사람 아닐까.

세상은 계속해서 변하고 우리의 모습도 달라지겠지만, 사랑을 향한 욕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그건, 사람이 사랑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본질을 찾고자 하는 마음 때문이다. 위탁가족이 된 지 6년. 나는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사람이라는 걸.

위탁부모·시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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