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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카페로, 쉼터로…도서관의 변신은 무죄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홍미옥의 모바일 그림 세상(60) 

극한의 상황에 맞닥뜨렸을 때 당신이 찾아갈 곳은? 글쎄다. 병원? 아니면 우리 집 안방? 혹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광장?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선지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다. 2004년 개봉해 화제를 불렀던 영화 ‘투모로우’.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상이변이 찾아오는 현실에 맞닥뜨린 사람들의 마지막 피난처는 의외로 도서관이었다. 귀한 장서를 태워 가며 추위에 맞서던 그들을 품 넓게 안아주던 도서관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에게도 이미 도서관은 일상에 녹아있었다.

전주시청사에 들어선 책기둥 도서관. 아이패드7 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전주시청사에 들어선 책기둥 도서관. 아이패드7 프로크리에이트. [그림 홍미옥]

친구처럼, 이웃처럼 함께하는 도서관

까마득한 예전이지만 내가 살던 소도시에 최초로 공공도서관이 문을 열던 날을 기억한다. 아담하게 지어졌던 도서관은 당시만 해도 시민들의 자부심이었다. 우리가 사는 곳에도 도서관이 있다는 거 하나만으로 자랑거리가 넘쳐났기 때문이다.

사실, 요즘의 잣대로 보자면 그곳은 열람실, 자료실 구분도 모호했다. 게다가 시험공부를 하는 중고생들로 가득해 책을 읽는다기보단 공부를 하는 도서관이었다. 그래선지 학교 앞 사설 독서실과의 차이도 별반 느끼지 못했다. 그래도 하나뿐인 공공도서관은 우리의 뿌듯함이 되어주었다.

요즘 즐겨 찾는 재래시장. 여느 시장처럼 왁자지껄하고 손님을 부르는 소리로 시끄럽기 그지없다. 겨울이면 호떡을 굽고, 여름이면 옥수수를 삶아내는 냄새가 행인을 붙들곤 한다. 발길을 잡아끄는 건 또 하나가 있다. 시장 한복판에 버티고 있는 도서관이다.

처음엔 “어라, 이런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라니”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서관이라면 무조건 조용한 분위기에 취준생이나 애용한다는 선입견이 있기 때문이었다. 책을 읽고 토론도 하고 각종 문화행사가 쉼 없이 열리는 게 요즘 추세이고 보면 나의 고루한 생각은 참으로 꼰대스럽기 그지없다.

옥수수를 파는 아주머니 옆엔 시장통도서관 라벨이 붙은 책이 놓여있다. 시간이 곧 돈이 되는 시장 상인은 책을 읽는 것도, 빌리는 것도 만만찮은 현실이다. 그런 상인을 위해 기꺼이 책을 배달해주기도 한다니 이쯤 되면 친구 같은 도서관이라 부를 만하겠다. 실제로 어디 어디 도서관의 식당이 싸고 맛있는 맛집으로 오르내리는 걸 보면 우리 일상에 스며든 건 확실하다.

마음 단단하게 떠받치는 도서관의 힘!

최근 전주시는 지역서점을 살리고자 동네책방과의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진 홍미옥]

최근 전주시는 지역서점을 살리고자 동네책방과의 연대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사진 홍미옥]

한옥마을로 익숙한 도시 전주는 최근 새로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우연한 인연으로 들른 전주시청 책기둥 도서관은 마치 방학을 맞아 친척 집에 온 마냥 편안했다. 시민이 맘껏 오가는 시청사에 마련된 이곳은 복잡한 절차가 없이도 잠시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가만 보니 잔잔한 음악도 흐르고 향긋한 커피 향도 풍긴다.

도란거리는 사람들의 백색소음은 오히려 익숙한 일상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커다란 책기둥에 그득히 놓여있는 책과 함께 마치 프랑스소설에서 본듯한 살롱 분위기의 공간까지 마련되어 있다. 그런가 하면 전주의 동네 책방과 함께하는 코너도 있다. 이곳에선 책방 주인들이 추천하는 다양한 장르의 책을 만날 수 있기도 하다. 그간 내가 시청이나 구청에 들를 일은 기껏해야 여권 연장이나 서류를 떼러 가는 거뿐이었다. 그 사소하고 살짝 귀찮은 일에 도서관이라는 선물이 더해진 셈이랄까? 공공기관의 변신은 신선했다. 여기, 좀 더 머물고 싶어진다.

전주를 찾은 여행자들에게도 휴식처가 되어주는 꽃심도서관(좌), 간납대작은도서관(우). [사진 홍미옥]

전주를 찾은 여행자들에게도 휴식처가 되어주는 꽃심도서관(좌), 간납대작은도서관(우). [사진 홍미옥]

한때는 글로벌 관광지가 되었던 전주 한옥마을, 코로나19의 여파는 여기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한복을 입고 까르르거리며 사진을 찍는 여행자도 어쩌다 눈에 띌 뿐이다.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작은 집이 있다. 한옥마을 어귀의 작은 간납대도서관이다. 북카페형의 이 작은 도서관은 마을의 자투리땅을 이용해 만들었다.

주민은 물론이고 한옥 마을 여행자에게도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다고 한다. 여행지에서 도서관이라…. 이 또한 신선하다. 캐리어를 끌고 잠깐 들러 책을 읽는 상상을 해본다. 낯선 도시에서 만나는 책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생각만으로도 즐겁다.

도서관은 민주주의의 기둥 

‘도시의 책장을 펼치면 더 큰 세계가 다가온다’라는 카피로 반향을 일으켰던 다큐멘터리 영화 ‘뉴욕라이브러리에서’는 긴 러닝타임 동안 그저 도서관의 일상을 보여준다. 하지만 전혀 지루할 틈이 없었다. 카메라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도서관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기둥이다’는 영화 속 문장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누구에게나 열려있고 누구에게나 평등하고, 지휘고하를 막론하고 누릴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는 곳, 바로 도서관이다. 부디 코로나19로 다시 닫힌 도서관의 문이 활짝 열리길 기대해본다.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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