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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민의 시선

대통령 지지율의 역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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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정민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민 논설위원

이정민 논설위원

39%까지 떨어졌던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다시 반등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주말 발표한 8월 넷째 주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는 47%. 2주 전보다 8%포인트가 올랐다. 더불어민주당(38%)과 미래 통합당(20%)의 격차(18%포인트)도 다시 벌어졌다.

편 가르기로 지지율 반등 노려 #지지율 높지만 업적은 잘 안 보여 #“역사는 지지율 아닌 업적 논할 뿐”

코로나 2차 팬데믹이 가져온 반전이다. 정부는 K방역 성과에 도취해 자화자찬하며 정신줄을 놓고 있다가 바이러스의 기습을 당했다. 상처 입은 권위, 정권 안보의 위기에서 반전의 돌파구를 열어준 건 때마침 스스로 먹잇감이 돼준 8·15 광화문 집회와 이를 주도한 일부 교회의 비상식적 행동이다. 그래, 문제는 교회야!

분명히 해둘 건, 필자는 방역 지침을 거스르고 국민 불편과 혼란을 초래한 일부 극우 세력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는 점이다. 그렇지만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일부 교회의 몰상식’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종교적 자유를 주장할 순 없다’고 훈계하는 장면에선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용과 과학으로 풀어야 할 코로나 방역마저 일부 교회를 희생양 삼아 프레임 전쟁으로 몰아가려는 것인가. 광화문 광장에 울려 퍼진 ‘문재인 심판’ 구호와 대통령의 분노는 무관할 것일까.

코로나와의 전쟁 와중에 벌이는 의사와의 전쟁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건 그래서일 테다. 안에서 싸우다가도 밖의 공격을 받으면 집안싸움은 일단 멈추는 게 상궤다. 그런데 이 정부는 의사들에 대한 강경 대응의 수위를 되레 높이며 파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그러니 저잣거리는 ‘국민 안전과 생명을 볼모로 의사들을 압박하고, 방역에 실패하면 의사들 파업 탓으로 돌리려는 계산’이란 얘기로 흉흉하다. 특권층인 의사 대(對) 피해 받는 국민의 갈등 구도는 ‘부자 대 서민’ 구도의 판박이가 될 터다.

대결적 편 가르기 프레임은 이 정권 사람들 깊숙이 뿌리내린 DNA이자 위기 탈출의 만능 키다. 지난 3년여를 그렇게 허비했다.

공정과 정의를 부르짖으며 약자와 서민 편을 자처하던 조국 일가의 반칙과 불공정의 실체가 드러나자 느닷없이 ‘통제받지 않는 정치 검찰을 이대로 둘 것이냐’며 검찰개혁의 진흙탕 싸움으로 몰아갔다. 일본과의 외교 갈등이 무역 분쟁으로 옮겨붙자 ‘죽창가’를 띄우고 일본산 불매 운동을 탈출구 삼았다.

비핵화 해법 없는 대북 화해정책의 문제를 비판하면 ‘그럼 전쟁하자는 말이냐’며 전쟁 대 평화의 프레임으로 역공한다. 소득주도성장의 부작용을 지적하면 재벌 대 서민의 프레임으로 응수하는 식이다. 부자 대 서민, 친일 대 반일, 조국 대 윤석열, 임대인 대 임차인, 서울 대 지방….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국민은 갈가리 찢기고 정책은 누더기가 되고 시장 왜곡은 심화했다. 싸움이 짙은 선홍색으로 물들수록 ‘지지율 상승’이란 반사 이익이 더 커진다. 위험한 반전이다.

정권 사람들은 요즘 “레임덕 없는 최초의 대통령”이란 말을 자주 입에 올린다. 민주당 20년 집권, 100년 정당론에 토 다는 사람도 없다. 그런데 높은 지지율에 도취한 것일까. 누더기가 된 초라한 성적표는 보이지 않는 모양이다.

하나하나 뜯어보자. 양극화 해소를 내걸었지만 소득·자산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일자리 정부를 자임했지만 실업률은 높아졌다. 정부가 업적으로 꼽는 최저임금 인상과 주 52시간 근로제는 어떤가. 원래 좋은 직장이었던 대기업·금융·공공 부문 근로자의 임금은 더 오르고 삶의 질이 개선됐지만, 정부가 그토록 보호하려던 저임금 노동자와 영세·중소 상공인은 직장을 잃거나 더 열악한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저녁이 있는 삶’을 내세웠지만 오히려 ‘저녁 끼니가 있는 삶’을 걱정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한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특권과 반칙이 없는 세상도, 국민의 서러운 눈물을 닦아주는 대통령도, 권력기관을 정치로부터 독립시키겠다는 약속도, 적재적소를 원칙으로 한 탕평 인사 약속도 지키지 못했다. 50%에 육박하는 지지율과 176석의 여당 의석을 갖고도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면 역사는 이를 어떻게 평가할까. 신기루와도 같은, 이 지독한 지지율의 역설을 말이다.

청와대 청원 38만명(30일 오후 현재)을 넘긴 시무7조의 주인공 조은산은 일갈한다. “역사는 군왕의 업적을 논할 뿐 지지율을 논하지 않는다.” 재치와 통찰력이 번득이는 구절이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현실을 받아들이고 잘못을 인정하는 데서 시작하면 된다. 그렇게 하는데 문 대통령의 취임사만큼 좋은 교과서가 있을까.

이정민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