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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는 8월, 사방이 코로나로 위험한 중동에 미 국무장관이 날아갔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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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이 전 세계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상황에서 지난 8월 24~26일 중동·아프리카 순방을 강행했다. 뉴욕타임스(NYT)와 BBC·CNN 등에 따르면 폼페이오 장관은 이스라엘·수단·바레인·아랍에미리트(UAE)·오만을 도는 강행군을 했다. 폼페이오의 순방은 중동의 낮 최고 기온이 섭씨 40도에 육박하는 폭염 속에서 이뤄졌다. AP·AFP·로이터 통신 등이 보도한 사진을 보면 성조기가 그려진 두꺼운 마스크를 쓰고 공항에 도착해 영접 나온 관리나 왕족을 만나는 그의 얼굴에는 굵은 땀방울이 흘렀다. 폼페이오는 왜 코로나19와 8월의 열기를 뚫고 중동과 아프리카 아랍권 순방에 나서야 했을까.

미국·중동, 코로나 발생률 최악 공통점 #폼페이오, 코로나19 위험 속 폭염 순방 #11월 대선 앞두고 실적 필요한 트럼프 #이스라엘-아랍 수교 다그치러 긴급파견 #아랍에미리트 수교 발표로 고무된 상황 #수단·바레인·오만 찾았지만 거부 손사래 #중동에서 한 건도 추가 수교 성사 못해 #고집불통 외교의 후폭풍으로 인심 잃어 #중동평화 구상 삐걱거리면 무업적 선거 #트럼프 재선 위해 10월쯤 특별한 한방?

성조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유엔과 중동에서 펼친 외교 활동이 성과 없이 끝났다. 다극화 시대인 21세기 미국 외교의 한계인가, 동맹을 무시해온 트럼프 외교의 후폭풍인가. AFP=연합뉴스

성조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쓴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 유엔과 중동에서 펼친 외교 활동이 성과 없이 끝났다. 다극화 시대인 21세기 미국 외교의 한계인가, 동맹을 무시해온 트럼프 외교의 후폭풍인가. AFP=연합뉴스

전 세계 확진자 넷 중 하나가 미국인

방역 차원에서 보면 폼페이오의 순방은 아무리 봐도 무리수다.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인 확산으로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아무리 외교관이라도 해외를 돌아다닐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2020년 8월 미국과 중동의 코로나19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미국에선 코로나19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연일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글로벌 통계사이트인 월도 미터에 따르면 8월 29일 현재 미국의 확진자는 600만 명에 이르렀고, 사망자는 18만 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코로나19 확진자 2474만 1651명 가운데 미국에서 605만 8447명이 나왔다. 전 세계 확진자 넷 중 하나가 미국에서 나온 셈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전 세계 사망자는 83만 7790명이며 미국에서 18만 5131명이 숨졌다. 미국이 전 세계 사망자의 22%를 차지한다.
이런 상황에서도 코로나는 기세를 더하고 있을 뿐 수그러들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미국은 그야말로 방역 참극을 겪고 있다. 세계 최강국, 최고 선진국을 자처하던 미국의 국가 이미지는 추락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곳곳에서 시위가 이어지고 있다. 마스크를 의무적으로 쓰게 하거나 제한을 강제하지 말라는 시위까지 벌어진다. 미국 민주당과 공화당은 오는 11월 3일의 대선을 위한 전당대회를 치렀다. 일부 행사에선 단체로 마스크를 쓰지 않은 모습이 고스란히 노출됐다. 미국은 코로나19에 밀리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지난 8월 24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탸냐후 총리와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지난 8월 24일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에서 베냐민 네탸냐후 총리와 팔꿈치 인사를 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폼페이오, 확진자 대거 발생지 순방

중동은 미국과 함께 코로나19의 대표적인 창궐지다. 인구 100만 당 확진자 발생 숫자가 이를 잘 말해준다. 인구 100만 이상 국가를 대상으로 할 경우 카타르(4만2096명)·바레인(2만9680명)·칠레(2만1209명)·파나마(2만804명)·쿠웨이트(1만9526명)·페루(1만8824명)의 순이다. 그 뒤를 미국(1만8286명)·브라질(1만7691명)·오만(1만6583명)·아르메니아(1만4659명)·이스라엘(1만2122명)이 뒤를 따른다. 전 세계에서 인구당 코로나19 발생률이 높은 12개 국가 가운데 중동이 카타르·바레인·쿠웨이트·오만·이스라엘 등 5개국이나 된다.
폼페이오가 돌아다닌 이스라엘·바레인·오만은 순위가 말해주듯 코로나19 고위험국가다. 누구나 가기를 꺼릴 수밖에 없다. 미국도 발생률이 만만치 않게 큰 만큼 폼페이오 일행을 맞는 중동 인사들도 그의 방문을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하지만 미국은 이런 순방을 성사시켰다. 그만큼 사정이 급했던 셈이다.

성조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 도착한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얼굴 가리개를 쓴 오만 외교부 고위 인사의 영접을 받고 있다. 사진=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성조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오만의 수도 무스카트에 도착한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얼굴 가리개를 쓴 오만 외교부 고위 인사의 영접을 받고 있다. 사진=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이스라엘과 수교시키려 위험 무릅써

미국의 국무장관이 자국도 중동도 코로나19가 창궐하는 상황에서 왜 이런 무리를 하면서 해외 순방에 나서야 했을까. 이는 수단·바레인·오만의 공통점을 찾아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과 미수교국이면서 접촉은 마다치 않은 국가다.
‘더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이나 ‘예루살렘 포스트’를 비롯한 이스라엘 언론에 따르면 바레인과 오만, 그리고 수단은 지난 13일 수교를 발표했던 아랍에미리트에 뒤이어 이스라엘과 수교 가능성이 가장 큰 나라로 꼽힌다. 오만은 이스라엘의 시몬 페레스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가 방문했던 나라다. 바레인은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의 수교 발표 직후 이스라엘의 해외정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시 코헨 국장과 바레인의 할리파 빈 살만 알할리파 총리가 통화한 것으로 보도됐다. 수단의 실권자인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은 지난 2월 네타냐후 총리가 우간다를 방문했을 당시 찾아가 회담을 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다양한 국내외 정치·외교적 변수 때문에 최종 결정은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자 폼페이오가 무언가 당근을 제시하면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강권하기 위해 직접 순방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지난 8월 25일 수단의 카르툼에서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을 만나고 있다. 부르한 장군은 지난 2월 케냐에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났다. AFP=연합뉴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지난 8월 25일 수단의 카르툼에서 과도정부를 이끌고 있는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을 만나고 있다. 부르한 장군은 지난 2월 케냐에서 이스라엘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를 만났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이어 수단서 쿠데타 장군 만나  

폼페이오는 24일 이스라엘을 찾아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와 회담했다. 폼페이오와 팔꿈치로 인사를 나눈 네타냐후 총리는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이스라엘 국기와 미국의 성조기가 나란히 그려진 마스크를 쓰고 기자회견장에 나란히 섰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각별한 관계를 상징하는 마스크 장식 외교다.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이스라엘에서 수단으로 가는 자신의 전용기 항로를 보여주며 '이스라엘-수단 첫 직항'이라고 적었다. 사진=폼에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자신의 트위터에 이스라엘에서 수단으로 가는 자신의 전용기 항로를 보여주며 '이스라엘-수단 첫 직항'이라고 적었다. 사진=폼에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25일에는 아프리카 북동부 이슬람국가 수단의 수도 카르툼에 도착해 실권자인 압델 파타 알부르한 장군을 만났다. 2019년 4월 11일 쿠데타로 약 30년간 통치하던 오마르 알바시르 대통령을 끌어내린 뒤 주권위원장이라는 직함으로 과도정부를 이끄는 인물이다. 쿠데타는 수단 국민이 알바시르의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 가운데 벌어졌으며, 시위대는 쿠데타와 군부 세력도 비난해왔다. 묘한 상황에서 서방의 경제 지원을 물색하는 쿠데타 지도자를 미국 국무장관이 찾아가 만난 셈이다. 2005년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의 방문 이래 미국 고위 외교관의 방문은 폼페이오가 처음이다. 그만큼 의외의 방문이라는 이야기다.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바레인에 도착해 하마드 알할리파 국왕(가운데)과 살만 빈 하마드 알할리파 왕세자(오른쪽)의 영접을 받고 있다. 사진=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이 바레인에 도착해 하마드 알할리파 국왕(가운데)과 살만 빈 하마드 알할리파 왕세자(오른쪽)의 영접을 받고 있다. 사진=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이스라엘 맞선 아랍연맹 회원국 각개격파  

이어 26일에는 바레인·아랍에미리트·오만 등 페르시아만(아랍권에선 아라비아만)의 산유국 군주국가 세 곳을 하루에 돌았다. 물론 거리가 비교적 가까운 나라들이긴 하다.
3개국은 아랍어를 모국어 또는 부분적으로 사용하는 이슬람 국가들의 모임인 아랍연맹(AL)의 회원국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폼페이오가 코로나와 더위에도 이들 나라를 순방하는 이유는 아랍에미리트에 이어 추가 이스라엘 수교를 설득하기 위해서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공통점이다.
1945년 이집트·이라크·요르단·레바논·사우디아라비아·시리아 등 6개국이 결성했던 아랍연맹은 현재 22개 회원국을 거느리고 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직전부터 이에 반대하는 정치·외교·군사적 활동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1973년 욤키푸르전쟁(제4차 중동전쟁) 뒤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국가 단위의 군사활동은 실질적으로 중단된 상태다. 창립 회원국인 이집트가 1979년, 요르단이 1994년 각각 이스라엘과 수교하고, 올해 8월 13일에는 또 다른 회원국인 아랍에미리트(UAE)가 수교를 발표하면서 향후 정체성 혼란이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누가 아랍에미리트의 뒤를 따르는가를 두고 숱한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들 나라는 아랍연맹의 약한 고리인 셈이다.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바레인에 도착해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외교장관을 만나고 있다. 사진=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마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바레인에 도착해 압둘라티프 빈 라시드 알자야니 외교장관을 만나고 있다. 사진=폼페이오 국무장관 트위터

코로나 와중 하루 3개국 군주·왕족 만나

바레인에선 하마드 빈 이사 알할리파 국왕과 살만 빈 하마드 알할리파 왕세자와 만나 회담했다. 압둘라 빈 라시드 알자야니 외교장관도 만났다.
이어서 이웃나라인 아랍에미리트로 날아가 아부다비 에미르(이슬람 군주)의 동생인 타흐눈 빈 자이드 알나흐얀 국가안보 보좌관과 왕궁에서 회담했다. 이어 오만에서 지난 1월 즉위한 술탄(이슬람 군주)인 하이삼 빈 탈리크 알사이드와 회담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그동안 공식 석상에 나타나기를 꺼렸던 중동 페르시아만(아라비아만) 지역 군주와 왕족을 폼페이오가 줄이어 만난 셈이다. 그만큼 미국이 이스라엘과 아랍 국가의 수교에 발 벗고 나섰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8월 26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아부다비 에미르(이슬람 군주)의 동생인 타흐눈 빈 자이드 알나흐얀 국가안보 보좌관과 왕궁에서 회담하고 있다.거리 두기가 돋보인다. AFP=연합뉴스

지난 8월 26일 아랍에미리트(UAE)를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아부다비 에미르(이슬람 군주)의 동생인 타흐눈 빈 자이드 알나흐얀 국가안보 보좌관과 왕궁에서 회담하고 있다.거리 두기가 돋보인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수교 모두 거절…미 외교 한계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수단, 바레인, 오만 모두가 미국이나 이스라엘의 기대와는 달리 선뜻 수교에 나서지 않았다. 심지어 내놓고 수교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아랍 국가들은 대중 사이에 뿌리 깊은 반이스라엘 정서를 고려하면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다. 아울러 내부 정치 세력 간 찬반 싸움 우려, 전 근대적인 군주정치의 존속 가능성, 이스라엘에 격렬하게 맞서는 이란이나 친이란 국가와의 갈등 증폭, 극단주의 테러 세력의 위해, 정치적·경제적 실익 등 다양한 변수를 놓고 저울질한 결과일 것이다.

지난 8월 26일 오만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수도 무스카트에서 하이삼 빈 탈리크 알사이드 술탄을 만나고 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AFP=연합뉴스

지난 8월 26일 오만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수도 무스카트에서 하이삼 빈 탈리크 알사이드 술탄을 만나고 있다.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랍권 수교 확대, UAE에서 그칠 수도 

이런 상황에서 아랍권과 이스라엘과의 수교가 자칫 아랍에미리트에서 당분간 그칠 가능성도 있다. 그럴 경우 트럼프 방식의 중동 평화 구상에 여기서 끝날 수 있다. 아랍권과 이스라엘이 대거 수교하면서 팔레스타인 측과의 협상력을 높여 중동 분쟁의 근원을 도려내겠다는 구상은 당분간 보류될 수밖에 없다. 미국은 대중동 외교력의 한계를 절감할 수밖에 없게 된다. 미국의 시각에서 이스라엘과의 수교를 지나치게 간단한 일로 여겼다는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다. 중동은 절대 만만하지 않은 지역이며, 팔레스타인 문제와 중동 평화는 꼬이고 꼬인 매듭이라는 사실을 폼페이오의 순방 결과가 잘 보여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EPA=연합뉴스

수교 멈추면 10월쯤 다른 지역서 한방?

미국 입장에선 폼페이오의 순방이 성과 없이 끝난 셈이다. 8월 초 유엔에서 대이란 제재를 둘러싼 미국의 제안이 동맹국이 대거 포진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거부당하는 수모를 겪은 데 이어 성과 없는 대이스라엘 수교 압박 외교는 트럼프에게 부담을 줄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선 물러서지 않고 다시 수교 압박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다른 지역에서 트럼프 지지 유권자들의 마음에 들 업적을 만들려고 뛸 수도 있다. 대선 전까지 뭔가 실적을 내야 하는 트럼프의 입장에선 선거를 코앞에 둔 10월쯤 전 세계와 미국 유권자의 이목을 끌 큰 사건을 기획하려고 할 수도 있다. 중동에서 벌어진 나비의 날갯짓이 동아시아에서 폭풍우로 변할 가능성도 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ciimccp@joongna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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