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결과적으로 아쉬운 결정적 순간

중앙선데이

입력 2020.08.29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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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호 31면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영원히 남을 찰나를 포착하려면 결정적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하며, 그러려면 일상의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엿볼 수 있어야 한다. 사진을 예술의 반열에 올린 프랑스의 사진가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은 일상 속 ‘순간의 마법’에 천착했다. 그런 그가 1952년 펴낸 사진집 타이틀이 ‘결정적 순간’이다. 그는 “결정적 순간이란 렌즈가 맺는 상(像)은 끊임없이 움직이지만, 시간을 초월한 형태·표정·내용의 조화에 도달한 절정의 순간”이라고 했다.

5월·8월 연휴 후 코로나19 악화
추석 민족 대이동, 정부 선택은

결정적 순간-. 지금도 너무나 유명한 이 표현을 우리는 사진미학과 아무런 관련 없는 분야나 상황에서도 자주 쓴다. 특히 정치나 경제, 스포츠 영역에서 특정 시점의 중요한 결정 등을 나중에 되돌아볼 때 곧잘 차용한다. 그럴 때 과거 결정적 순간의 선택이 빛을 보려면 선택의 내용 못지않게 타이밍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고심 어린 결단도, 탁월한 전략·전술도 타이밍이 맞지 않으면 결국 후유증만 남기기 십상이다.

연일 대유행의 경고음이 울리고 있는 코로나19 대응이 대표적인 사례다. 일상을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면 확진자 수가 좀 줄다가 조금만 방심하면 다시 늘어난다. 치료제와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뫼비우스의 띠처럼 무한 반복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특히 불행히도 이제는 언제 어디서 누구라도 코로나19에 걸릴 수 있는 상황으로 악화됐다. 걷잡을 수 없는 확산의 큰 원인은 감염 경로를 모르는 ‘깜깜이 집단감염’ 발생이다. 그만큼 바이러스가 조용히, 넓게 퍼진 걸 뜻한다. 27일 새로운 확진자의 약 33%, 지난 2주간 확진자의 19.4%가 ‘깜깜이 환자’다.

이렇게 방역망이 뚫리기 쉬운 조건이 형성된 원인은 다양하다. 코로나19 감염을 억제할 마스크를 쓰지 않거나 감염된 후에도 방역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는 사람이 적지 않다. 누적된 피로감에서인지 사회적 거리두기도 잘 지키지 않는다. 여기에 방역과 경제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지 않으려는 정부의 엇갈린 시그널도 상황 악화의 요인이다. (정부로선 불가피한 선택이었고 치료제·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계속 이어질 난제이지만) 코로나19 감염을 경고하면서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사회적 거리두기에 반하는 휴가를 장려하고 소비를 부추겼다.

크게 두 번의 결정적 순간이 아쉽다. 4월 말부터 5월 초까지 이어진  황금연휴와 8월 광복절 연휴다. 당시 황금연휴 후 적어도 2주는 확진자 추이 등을 보고 생활방역으로 전환하자는 주장이 있었지만 경계심이 느슨해지면서 묻혔다. 결국 이태원 클럽발 확진자가 쏟아졌고, 노래방·주점 등지에서도 집단감염이 이어졌다. 임시 공휴일까지 만들어 늘린 광복절 연휴 후에도 비슷한 패턴이 반복됐다. 사랑제일교회 등의 광화문 집회가 코로나19 재확산의 트리거로 작용했지만, 그 전에 이미 깜깜이 환자가 일상 깊숙이 침투했을 가능성을 간과했다.

이번 광화문 집회가 기름을 부은 코로나19 확산세를 잡는다고 해도 또 다른 결정적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9월 말부터 이어질 추석 연휴다. 정치권에서 추석 연휴 ‘이동 제한’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정부는 아직 공식 검토한 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정부가 고심하고 있는 ‘3단계 거리두기’ 카드를 꺼내든, 3단계에 준하는 2단계 거리두기를 하든, 민족의 대이동에 어떻게 대응하느냐가 코로나19와의 전쟁에서 중요한 변수가 될 확률이 높다. 락다운(봉쇄)도 능사가 아니지만 일상과 방역의 균형점 찾기도 지극히 어렵다. 조만간 우리 모두 짧은 듯 긴 찰나의 고민에 빠지게 될 듯하다(선불교의 영향을 받은 브레송에게 찰나는 단순한 순간이 아니라 굉장히 짧으면서도 긴 시간이었다고 한다).

남승률 경제산업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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