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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억 집 살 때 1350만원…집값 엎친 데 ‘복비’ 덮쳐 이중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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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호 14면

서울 시내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아파트 매매·전세 매물 전단이 붙어있다. [뉴스1]

서울 시내 한 부동산 공인중개사 사무소에 아파트 매매·전세 매물 전단이 붙어있다. [뉴스1]

서울 마포구에서 지난달 아파트를 매입한 장모(36)씨는 부동산 중개수수료(복비)를 정산하면서 골머리를 앓았다. 공인중개사가 많이 깎아주기 어렵다고 난색을 보여 집값 9억5000만원의 0.9%에 가까운 840만원을 복비로 내야 했다. 장씨는 “5년 전만 해도 3억원대에 매입할 수 있었던 아파트”라며 “그간 집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는데 복비는 과거 시장 상황을 반영한 요율대로 내야 한다니 소비자 입장에선 너무 비싸고,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부동산 ‘패닉 바잉’ 장세 이어지며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 약 10억 #거래 금액 9억 넘으면 수수료 0.9% #김현미, 수수료 체계 손질 내비쳐 #업계선 “수요 적은 곳은 생존위기” #전문가 “대형화로 서비스 개선을”

집값 상승으로 논란이 큰 가운데 ‘복비 폭탄’이 또 다른 골칫거리로 떠올랐다. 지난 2015년 적용된 현행 중개수수료율은 부동산 거래 금액에 따라 일정한 비율로 나뉜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서울의 경우 2억~6억원의 주택을 매입하면 한도액 없이 거래 금액의 0.4%, 6억~9억원은 0.5%를 각각 복비로 내야 한다. 9억원 이상 주택은 0.9%의 상한요율 이내에서 매매인과 중개사가 협의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협의로 깎지 못하면 15억원짜리 주택을 매입했을 때 복비로만 1350만원이 든다. 원래 있던 집 한 채를 팔고 이사한다고 치면 여기에 복비 수백만원이 더 드는 셈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수요가 많고, 매수자가 심적으로 불리한 ‘패닉 바잉’ 장세에서는 만족할 만한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서울 부동산시장의 소비자심리지수는 6월 131.9, 7월 139.4로 100포인트대였던 지난 3~5월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서울의 아파트 평균 매맷값은 10억원에 바짝 다가섰다. 전셋값도 처음으로 5억원을 넘어섰다. 26일 KB국민은행이 발표한 월간 KB주택가격동향에 따르면 8월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9억8503만원, 평균 전셋값은 5억1011만원이었다. 경기·세종·대전·부산 등의 주요 지역 집값도 껑충 뛰었다. 설상가상으로 전세 가격까지 급등하면서 매물도 급감하고 있다. 정부가 복비 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현행 중개수수료율은 2014년 11월 당시 박근혜 정부가 국민 복비 부담을 줄인다는 취지로 기존 체계의 개편안을 내놓고, 각 지방자치단체에 권고하면서 이듬해 전국적으로 적용됐다. 개편 이전 6억~9억원 주택 매매 때 복비 상한요율은 0.9%, 3억~6억원짜리 임대차 거래 땐 0.8%였다. 이를 거의 절반 수준으로 낮추면서 “반값 복비 시대가 열렸다”는 얘기가 나왔다. 다만 9억원 이상은 고가 주택으로 분류해 0.9%라는 높은 상한요율을 유지하도록 했다. 그만한 복비를 낼 여력이 충분한 경우라는 사회적 인식 또한 강했다.

유선종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문제는 서울 중위 주택 가격이 지난해 말 기준 9억원가량으로 ‘9억원=고가’ 공식이 무너진 데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개사들이 집값 상승 나비효과로 이전보다 많이 복비를 거둬들이는 데 비해 서비스 개선은 미미하다는 점도 지적한다. 이들은 매물을 소개하면서 중간에서 원활한 계약을 돕지만, 다른 선진국 사례처럼 거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지는 않는다. 통상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발행하는 공제증서를 통해 중개사당 1억원 한도 내에서 손해보상책임을 보증해주는 정도다.

또 중개에만 집중하는 국내와 달리 해외 중개사들은 금융 지원부터 세무 상담과 보험 알선까지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다. 중개사가 활동 보고서를 매주 제출하면서 매물의 하자 여부도 꼼꼼히 점검해준다. 이에 대해 국내 중개사들은 “복비 자체가 다른 나라보다 저렴한 상황에서 최선의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반박한다. 예컨대 미국의 복비 상한요율은 2017년 뉴욕시를 기준으로 매매 금액의 6.0%다.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도 4~8%선이다. 매도인과 매입자 모두 복비를 내는 한국과 달리, 한쪽만 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해도 국내가 훨씬 저렴하다는 주장이다. 공인중개사협회는 “수요가 적어 집값 상승에서 소외된 지역 중개사들은 실적 부진으로 오히려 생존 위기에 처해 있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9억원 이상 주택 매매에서도 복비를 0.9% 다 받으려는 중개사는 극히 일부일 뿐, 대부분 0.4~0.7% 수준으로 깎아주기에 별 문제 없다는 논리를 편다.

이런 논란 속에 정부는 복비 체계를 개편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쳤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25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현 부동산 중개수수료 체계에 대한 문제 제기가 많았다”며 “개선 방안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다만 김 장관은 구체적인 계획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래 금액과는 무관하게 일정 상한선을 제시하고 그 안에서만 받도록 하는 복비 상한제 도입 ▶고가 주택 기준을 현실적으로 재조정 ▶부동산 중개 업계의 서비스 개선 유도 등을 구체적 해법으로 제시한다.

유선종 교수는 “복비 산정에서 최고 구간을 현 9억원보다 상향 조정하고, 기존 구간은 복비 부담을 낮춰주면 집값 급등에 따른 사회적 부담을 경감할 수 있을 것”이라며 “중개사의 손해보상책임 보증 한도를 올릴 필요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현석 한국부동산분석학회장은 “정부가 중개 서비스 개선을 위해 건강한 시장 경쟁 유도에 힘써야 한다”며 “해외처럼 중개 업계가 중개뿐 아니라 금융·조세·법률 등 포괄적 업무 담당으로 소비자를 최대한 도울 수 있도록 중개사의 대형·법인화를 추진해볼 만하다”고 제안했다. 윤지해 부동산114 수석연구원도 “중개사 능력에 따라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새로운 중개 제도를 도입하면서 복비의 차등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균 기자 smi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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