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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단순 노동 말고 주 3일제 일자리 어디 없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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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백만기의 은퇴생활백서(67)

2001년 9·11 테러가 발생하자 미국 FBI에서 최정예 요원으로 구성된 특별수사팀을 조직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난항에 부딪혔다. 요원 10명 중 4명이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것이다. 탈락자 대부분이 경력 5년 이하의 젊은 요원이었다. 체력은 뛰어났으나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경험이 부족했다. 결국 FBI는 은퇴한 지 수년이 지난 요원을 복직시켜 사건에 투입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젊은 신예 선수로 팀을 조직했지만 유럽 예선에서 4위를 기록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이 불투명한 상황에 이르렀다. [사진 pikist]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젊은 신예 선수로 팀을 조직했지만 유럽 예선에서 4위를 기록하며 월드컵 본선 진출이 불투명한 상황에 이르렀다. [사진 pikist]

2006년 독일 월드컵을 앞두고 프랑스 국가대표팀은 젊은 신예 선수로 팀을 조직했다. 그러나 유럽 예선에서 4위를 기록하는 등 월드컵 본선 진출이 불투명한 상황에 이르렀다. 위기를 느낀 프랑스 축구협회는 2004년 유로 대회를 마지막으로 은퇴했던 지단 선수를 복귀시켰다. 지단은 곧바로 벌어진 대회에서 골을 터뜨렸고 결국 본선에 올라 프랑스에 준우승을 선물했다.

이렇듯 나이 든 사람은 젊은 사람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경륜이 있다. 인생을 살며 경험을 통해 얻은 지혜다. 지식은 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으나 지혜는 그럴 수가 없다. 시니어는 이렇게 터득한 지혜를 주위에 나누어주고 싶어 한다. 이들에게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미국 영화 ‘인턴’처럼 기업에서 이들의 지혜를 이용하는 것은 어떨까.

어느 소아과 여의사의 이야기다. 그는 병원에서 고소득을 올리며 명품에 탐닉했다. 주위에도 그러한 사람이 많았다. 버는 만큼 씀씀이도 커 경제적 여유는 별로 없었다. 문제는 소비에 걸맞은 돈을 벌려니 자기 시간을 갖기가 어려웠다. 그러던 어느 날 이렇게 살아도 되는가 하는 생각이 났다. 고심 끝에 큰 집을 팔고 그 반 정도 되는 작은 집으로 이사했다. 내친김에 1년 동안 병원 일을 그만두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그리고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루하루를 보냈다.

정원을 가꾸고, 책을 읽고, 사색하고, 음악을 듣는 것이 그녀의 생활 전부였다. 그런 생활을 6개월쯤 하고 나자 병원 일이 다시 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자기가 싫어했던 것이 의사라는 직업이 아니라 스트레스와 압박 속에서 전임으로 일하는 환경이란 것을. 그는 전처럼 일하기보다 시간제 의사로 일하기를 원했다. 그러나 의료계에서 그러한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았다.

어느 날 이웃에 사는 여자와 이야기하다가 그 집 아이의 소아과 의사를 만나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는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시간제 의사 일을 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상대는 한참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믿을 수가 없군요. 두 살배기 아기 때문에 지난 2년 동안 시간제로 일해 줄 의사를 얼마나 애타게 찾았는데. 괜찮다면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만나고 싶습니다.” 그는 뛸 듯이 기뻤다. 두 사람 모두 원하던 상대를 만난 것이다. 그 후 그는 1주일에 20시간 그곳에서 일하고 있다.

지인 중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대학 후배의 이야기다. 캠퍼스 커플로 만난 아내는 약대를 다녔으나 졸업과 동시에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가정생활에만 전념했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육아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되자 남들처럼 자신의 전공을 살려 일하고 싶어졌다. 지금은 아는 사람의 소개로 동네 약국에 취업해 1주일에 3일씩 근무하고 있다.

최근 베이비부머의 은퇴가 한창이다. 이들 중 일부는 자신의 경력을 활용할 수 있는 일자리를 찾고 있다. 그렇다고 전처럼 풀타임으로 일하기보다 위의 사례처럼 하루에 반나절, 또는 1주일에 3일 정도만 일하고 싶다. 나머지 시간은 자기계발이나 취미활동을 하기 위함이다. 일하는 대가로 받는 보수는 많지 않아도 된다. 이들에게 일은 자존감을 지켜주고 생명력을 유지하게 하는 힘이다.

은퇴자의 경력에 맞는 적절한 임무와 명분을 줄 수 있다면 큰돈은 필요하지 않다. 기업에서는 적은 돈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사진 flickr]

은퇴자의 경력에 맞는 적절한 임무와 명분을 줄 수 있다면 큰돈은 필요하지 않다. 기업에서는 적은 돈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사진 flickr]

분당의 아름다운인생학교도 이런 은퇴자의 욕구를 교육에 도입한 커뮤니티다. 이곳에는 공기업 임원부터 피아니스트까지 다양한 직업에 종사했던 사람이 있다. 이들 역시 자신이 사회생활을 하며 터득한 경험과 지식을 이웃에게 가르쳐준다. 다만 보수는 전혀 없다. 어느 날 강사로 있는 친구가 무료로 강의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차비라도 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말해 서로 웃었다. 사실 보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경제적 보상을 해주고 싶긴 하다.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 이러한 시스템을 활용하여 사회적기업을 창업한다면 성공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은퇴자의 경력에 맞는 적절한 임무와 명분을 줄 수 있다면 큰돈은 필요하지 않다. 기업에서는 적은 돈으로 양질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다. 요즘 정부나 지자체에서 시니어를 위한 일자리를 마련하느라 고심 중인데 대부분 일자리가 쓰레기를 줍는 등 환경미화 같은 단순노무직이다. 이렇게 단기간에 끝나는 사업보다 시니어의 경륜과 지혜를 활용할 수 있도록 일자리 사업영역을 다양화할 필요가 있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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