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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美·中 반도체 전쟁…미소 짓는 건 결국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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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반도체를 읽다 ⑨ : G2 싸움에 주목받는 '어부지리' 도쿄 일렉트론

"이 회사 주가, 왜 오른 거지…?

미국 상무부가 화웨이에 지난 5월 칼을 본격적으로 빼 들었다. “자국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 기업이 화웨이에 특정 반도체를 공급할 경우 미국 허가를 받아야 한다”고 선포했다. 그런데 이때 주가가 오른 기업이 있다. 인텔이나 퀄컴 등 미국 회사가 아니다. 미국 엄포에 화웨이와 연을 끊은 삼성전자, 대만 TSMC도 아니다.

일본 반도체 장비 기업 도쿄 일렉트론이다.

홍콩 아시아타임스에 따르면 미 상무부 발표 전 주당 2만 3000엔(약 26만 원)에 머무르던 이 기업 주가는 6월 말 3만엔(약 33만 원)을 넘었다. 1년 전과 비교하면 2배 이상이다.

도쿄 일렉트론 주가 변화. [아시아타임스 캡처]

도쿄 일렉트론 주가 변화. [아시아타임스 캡처]

그게 뭐. 미국이 화웨이를 제재하는 거랑 일본 회사 주가 오르는 게 무슨 상관이 있다는 건가.

분명히 있다. 아시아타임스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그렇게 분석한다. WSJ는 지난 20일 “미·중 간 반도체 기술 전쟁에서 도쿄 일렉트론은 큰 수혜를 입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마디로 ‘어부지리(漁夫之利)’다.

지난 5월 화웨이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2020’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궈핑 화웨이 순환 회장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AFP=연합뉴스]

지난 5월 화웨이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2020’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궈핑 화웨이 순환 회장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AFP=연합뉴스]

왜 그런가. 자세히 들여다보자. 미국은 5~8월 들어 화웨이 숨구멍을 거의 다 막았다. “불만이면 미국 기술 0%인 채로 반도체 만들어 써.” 이게 미국의 태도다.

중국의 속내는 이거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당장 그럴 수 없어 너희 기술을 썼을 뿐이다. 어떻게든 자립할 거다."

지난 5월 화웨이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2020’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궈핑 화웨이 순환 회장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5월 화웨이 '글로벌 애널리스트 서밋 2020’에 기조연설자로 나선 궈핑 화웨이 순환 회장이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히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WSJ가 “화웨이가 미국 제재로 인해 살아남을지 불분명해지고 있다”면서도 “그럴수록 중국은 반도체 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고 주장한 이유다. 실제 중국은 반도체 생산 기반 건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중국은 증권시장과 정부 자금을 통해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SMIC 등 자국 반도체 기업에 투자 중이다.

WSJ는 이렇게 비유한다.

"건설 열풍이 불면, 장비가 잘 팔리는 법이다."

[사진 셔터스톡]

[사진 셔터스톡]

팔리는 장비가 바로 도쿄 일렉트론 제품이란 거다. WSJ는 “미·중간 갈등을 고려하면 중국이 도쿄 일렉트론 같은 곳을 선호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이유가 뭘까. 삼성전자나 퀄컴, 인텔과 같은 유명 반도체 생산업체도 장비는 사서 쓴다. 물론 반도체 장비 업계를 장악한 것은 미국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제재가 화웨이의 목줄을 죌 수 있는 이유다.

하지만 100% 미국이 독점하는 건 아니다. 미 반도체 시장조사업체디인포메이션 네트워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도쿄 일렉트론은 시장 점유율 16.7%로 세계 시장 4위다. 하지만 1·3위인 미국의 어플라이드 머티리얼스(18.8%)와 램리서치(16.8%)와 2위인 네덜란드 ASML(17.6%)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경쟁력도 크다. WSJ에 따르면 도쿄 일렉트론은 특히 반도체 장비 핵심인 식각기 및 코터, 디벨로퍼 등에 강점을 가지고 있다. 코터, 디벨로퍼 분야에선 도쿄 일렉트론 시장점유율이 91%에 달한다.

도쿄 일렉트론도 중국이 중요하다.

WSJ에 따르면 지난해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도쿄 일렉트론의 1년 매출 중 중국 비중은 20%다. 아시아타임스는 “중국은 2019년 들어 도쿄 일렉트론의 가장 큰 시장으로 올라섰다”고 분석한다. 이전까지 가장 큰 고객이었던 한국과의 거래가 아베 정부의 수출 제한 조치로 인해 급감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라는 ‘큰 손’이 없어지니 도쿄 일렉트론도 중국에 기댈 수밖에 없다.

도쿄 일렉트론의 국가별 이익 변화.[아시아타임스 캡처]

도쿄 일렉트론의 국가별 이익 변화.[아시아타임스 캡처]

실제로 도쿄 일렉트론은 6월 말 주주들에게 한 실적 보고에서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인해 중국으로의 수출 주문이 취소 또는 연기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미국의 엄포에도 중국 시장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은연중에 표시한 셈이다.

물론 중·일 밀월 관계엔 한계가 있다. 트럼프 눈치를 보는 아베 총리가 미국 정부의 불호령에 도쿄 일렉트론을 압박할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원하는 모든 장비를 도쿄일렉트론이 만들어주기도 어렵다. WSJ는 “미국이 (8월 공언한 대로) 자국 장비 구매를 전면 금지하면 중국 업체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건설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지적한다.

그래도 도쿄 일렉트론을 주목해야 한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도쿄 일렉트론은 올해 사상 최대 규모인 1350억 엔(약 1조 5014억 원)을 투자해 차세대 반도체 제조기술인 EUV(극자외선) 공정 관련 장비를 개발한다. 세계 1·2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와 삼성전자가 EUV로 5nm(10억 분의 1m) 급 초정밀 반도체 제조 경쟁에 나섰기 때문이다. 중국과 관계가 끊어져도 도쿄 일렉트론은 EUV 시장에서 살 방도를 찾을 생각이다.

일본 미야기현의 도쿄 일렉트론 공장의 모습. [닛케이아시안리뷰 캡처]

일본 미야기현의 도쿄 일렉트론 공장의 모습. [닛케이아시안리뷰 캡처]

이럴 수 있는 건 결국 기술력이다. WSJ는 “중국이 반도체 자립을 할지는 알 수 없다”며 “분명한 건 좋은 기술을 가진 기업은 미·중 갈등 와중에도 이익을 본다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기업도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이승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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