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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선방" 섣부른 축포…한은 "최악 땐 올해 -2.2%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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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한국은행이 올해 경제성장률을 -0.2%에서 -1.3%로 하향 조정했다. 방역 실패로 인한 경기 후퇴를 공식화한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확산이 장기화하면 -2%대로 떨어질 것이란 경고도 내놨다. 불과 2주 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한국 성장률 상향 조정(-1.2%→-0.8%)을 내세워 자화자찬했던 정부는 체면을 구겼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시행 중인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매장에 코로나19로 인한 임시휴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조치가 시행 중인 24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매장에 코로나19로 인한 임시휴업 안내문이 붙어있다. 연합뉴스

한은이 27일 수정경제전망을 발표하고,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1.3%로 1.1%포인트 낮췄다. 지난 5월 전망치를 기존 2.1%에서 -0.2%로 대폭 수정한 뒤 석 달 만에 추가로 더 낮춘 것이다. 당초 한은은 코로나19 신규·잔존 확진자 수가 2분기 중 정점을 찍고, 봉쇄조치가 점진적으로 완화할 것이란 전제하에 전망치(-0.2%)를 내놨다. 하지만 8월 중순 이후 수도권을 중심으로 급격히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이 전제가 무너졌다.

코로나19 재확산으로 23일부터 전국적인 사회적 거리 두기 2단계가 시행되는 등 방역 조치가 한층 강화됐다. 나라 안팎으로 경제활동 위축이 불가피해졌다는 의미다. -1.3%는 이번 재확산이 지난 2~3월과 비슷한 추세(일평균 신규 확진자 100명 이상이 40~50일 동안 지속)일 거라는 전제로 추정한 성장률이다.

주요 기관 한국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주요 기관 한국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한은의 전망이 한층 어두워진 건 성장의 양축인 내수와 수출 모두 2차 충격을 받을 거란 판단에서다. 특히 민간소비 위축은 우려할 만한 대목이다. 김웅 한은 조사국장은 “가계 소득여건 및 소비심리 개선 지연으로 회복세가 예상보다 더딜 전망”이라며 “대면 서비스 회피, 해외여행 위축 등이 민간소비 회복을 상당 기간 제약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수출에 기대를 걸 상황도 아니다. 7~8월 두 달 연속 감소 폭을 줄여가며 최악의 시기는 넘겼다는 분석이지만 사그라지지 않는 전 세계 감염추세가 발목을 잡는다. 이주열 한은 총재는 “주력 품목의 동향이 중요한데 반도체와 자동차 등 주력 품목의 업황이 본격적으로 살아나지 않고 있어 하반기에도 회복 속도는 완만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상반기에 버텨줬던 설비투자와 건설투자도 하반기 큰 폭의 조정을 피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통화정책방향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국은행

한국 경제가 당초 전망(-0.2%)을 달성하려면 3~4분기 각각 3%씩(전기 대비) 성장해야 했다. 2분기(-3.3%) 충격을 딛고 극적인 반등을 기대했지만, 이 와중에 여름철 집중호우와 길어진 장마까지 덮쳤다. 3분기에만 성장률을 0.1~0.2%포인트가량 낮췄다. 이환석 한은 부총재보는 “긴 장마로 평균 기온이 예년보다 낮아지면서 에어컨 등의 판매가 줄고, 여행 등 야외활동이 감소해 재화·서비스 부문이 부진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역대 세 번째 마이너스 성장이 거의 확실해졌다. 한국 경제가 역성장한 건 관련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53년 이후 1980년(-1.6%), 1998년(-5.1%) 두 차례밖에 없다. 내심 V자 반등과 플러스 성장을 기대했던 정부는 곤혹스러워졌다. 최근까지도 정부는 미약한 경기 회복세를 정책 성과로 포장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11일 국무회의에서 “확장 재정에 의한 신속한 경기 대책과 한국판 뉴딜의 강력한 추진으로 OECD 37개국 중 성장률 1위로 예상될 만큼 가장 선방하는 나라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 재확산에 긴 장마까지 성장 발목  

하지만 섣부른 축포는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불과 2주 만에 최악의 시나리오를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기 때문이다. 당장 사회적 거리 두기 3단계가 시행되면 실물경제 위축은 더욱 가속할 수밖에 없다. 한은은 확진자 수 증가 흐름이 겨울까지 이어지면 올해 성장률이 -2.2%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이 경우 내년 성장률도 기존 전망(2.8%)보다 훨씬 낮은 1.2%까지 낮아질 거라고 본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감염병 앞에선 어떤 경제정책보다도 강력한 방역시스템이 중요하다”며 “4차 추가경정예산이나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에 앞서 3차·4차 확산이 발생하지 않도록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 기준금리 0.50% 동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한국은행, 기준금리 0.50% 동결.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이날 한은 금융통화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0.50%로 동결했다. 한은이 큰 폭으로 성장률 전망치를 수정하면서도 금리를 조정하지 않은 건 일단 코로나19 재확산 추이를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현 기준금리(0.5%)가 현실적으로 낮출 수 있는 최저치에 가깝다는 점도 고려했다.

이주열 “금리인하 신중히 할 필요 있다”  

김현욱 KDI 정책대학원 교수는 “경기 충격을 고려해 전폭적으로 금리를 내렸지만, 부동산 등 자산가격 상승을 부추길 우려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추가로 큰 폭의 확장적인 조치를 하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금리를 낮추면 경기를 부양하는 효과가 있지만 실효하한(국가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최저치)까지 내려가면 환율 상승으로 인한 자본 이탈, 가계 부채 상승 같은 역효과가 발생한다.

이 총재는 “금리인하로 대응할 여지가 남아있다”면서도 “기준금리가 현재 낮은 수준인데, 더 낮출지는 기대되는 효과와 수반되는 부작용을 따져보면서 신중히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당분간 금리인하보다는 비전통적 통화정책을 우선 활용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연합뉴스

27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본회의. 연합뉴스

한은은 아직 금융시장 변동성이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여러 대출제도를 폭넓게 활용하는 방안,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이 발행한 회사채나 기업어음(CP)을 사들이기 위해 설립한 특수목적기구(SPV)를 활용하는 방안, 7월 말 종료한 무제한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제도를 재시행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국채 매입 확대 입장도 재확인했다. 추경과 재난지원금 지급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적자 국채 물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아직은 국내 금융기관과 외국인이 수요가 상당히 견조하다”며 “장기 금리 변동성, 신용 스프레드 수준, 장단기 금리 차 등을 면밀히 검토하면서 불안 요소가 관측되면 적극적으로 매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장원석·정용환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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