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판소리에 반해 이역만리 타향살이 자처한 프랑스인 소리꾼 로르 마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랑스인 소리꾼 로르 마포. 27일 '제11회 문화소통포럼 2020'의 온라인 콘서트 촬영에 앞서 행사장인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에 걸린 부석사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프랑스인 소리꾼 로르 마포. 27일 '제11회 문화소통포럼 2020'의 온라인 콘서트 촬영에 앞서 행사장인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에 걸린 부석사 사진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무슨 뜻인지 이해는 못했지만 가슴이 뛰는 큰 감동을 받았다. 행복했고 나는 웃고 있었다.”

판소리에 첫눈에 반해 이역만리 타향살이를 자처한 프랑스인 소리꾼 로르 마포(36). 27일 서울 그랜드하얏트서울에서 열린  ‘제11회 문화소통포럼 2020’의 행사 중 하나로 온라인 콘서트를 한 그는 처음 판소리를 만난 순간의 기억을 이렇게 떠올렸다. 2015년 삼성전자 파리 지사에서 근무했을 때였다. 파리의 주프랑스한국문화원에서 본 민혜성 명창(국가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이수자)의 판소리 공연이 그의 인생 길을 바꿔놨다. 그는 “그날 춘향가의 ‘쑥대머리’를 듣는 4, 5분 동안 판소리를 공부해야겠다는 결심이 굳어졌다”고 했다. 이후 문화원 강좌를 통해 판소리를 배우기 시작했고, 2017년부터는 아예 한국에 머무르며 소리꾼의 길을 걷고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 대학원에서 회계 감사를 전공한 뒤 안정적인 직장 생활을 하고 있던 그의 갑작스런 한국행에 가족들의 반대는 컸다. 카메룬에서 태어나 열 살 때 프랑스의 이모에게 입양 보내진 그는 “카메룬 엄마, 프랑스 엄마 모두 반대했다. 그래서 ‘딱 1년만’이라고 얘기하고 왔지만, 처음부터 취미로 배울 생각은 아니었다. 프로 소리꾼이 될 각오였다”고 털어놨다.

한국에 온 그는 민혜성 명창이 지도하는 서울 혜화동 ‘소을소리판’에서 본격적인 판소리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일대일 레슨을 받으며 새벽부터 밤까지 연습한다. 1년에 두 차례씩 숲에서 연습하는 ‘산공부’도 간다”면서 “판소리엔 옛날 단어와 한자, 사투리가 많아 어렵다. 발림을 부드럽게 하는 것도 어렵고 박자 맞추기도 어렵다. 하지만 공연할 때 관객들과 추임새를 주고받는 게 너무 좋고 재미있다”고 했다. 한국 이름도 정했다. 학원 이름의 첫 글자이기도 하고 그가 좋아하는 연예인 소지섭의 성이기도 한 ‘소’와, 국악에서 사용하는 음의 이름 ‘율명’에서 따온 ‘율’을 더해 ‘소율’이다. 이제 그는 판소리 전공으로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목표로 입시 준비 중”이라며 “전세계 아이들에게 판소리의 아름다움과 즐거움을 전해주는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고 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판소리 곡은 흥보가의 ‘첫 박 타는 대목’이다. “마음씨 착한 흥부에게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속담이 이뤄지는 장면이어서”다. 그는 “첫번째 판소리 완창도 흥보가로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그동안 그는 판소리 공연 무대에 여러차례 섰다. 2018년엔 파리 엘리제궁에서 열린 국빈만찬 때 문재인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 앞에서 공연했고, 지난해엔 고향인 카메룬의 한국대사관에서도 공연했다. 국내 공연 기회도 한 달에 한 번 꼴로 있었다. 하지만 올들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공연이 줄줄이 취소됐다. “월세도, 생활비도 고민”이라는 게 요즘 그의 솔직한 형편이다.

미래학자 자크 아탈리, 스페인 출신 작가 하비에르 모로, 출판사 ‘알파 걸 코믹스’ 대표 에이미 추 등이 발표자로 참여한 이번 문화소통포럼은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온라인 화상회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의 콘서트 역시 비대면 온라인으로 펼쳐졌다. 그는 “전세계의 관객들이 즐길 수 있다는 측면에서 코로나 여파로 온라인 공연이 활성화되면 예술인들에게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양희은의 ‘아침이슬’ 등 한국 가요도 참 좋아한다”는 그에게 판소리 등 우리 전통 음악의 세계화 전략에 대해 물어봤다. 시종일관 유쾌하게 대답하던 그의 눈빛이 새삼 진지해졌다.
“한국인이 먼저 국악을 재미있게 즐기면 세계인들도 따라오게 돼있다. 뭔가 재미있는 게 있으면 SNS 등을 통해 금세 퍼지는 시대 아니냐. 한국에 와서보니 한국인들도 국악 공연에 대해 잘 모르더라. 홍보와 광고 전략을 ‘여기 먼저’ 펼치는 게 좋을 것 같다.”

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