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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박보균 단문세상

‘문재인 사람들’의 역사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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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박보균
박보균 기자 중앙일보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 칼럼니스트

역사는 권력이다. 역사는 정치 투쟁의 도구다. 역사는 재구성된다. 그것으로 세상을 뒤엎는다. 역사의 힘은 기묘하다. ‘문재인 정권 사람들’은 그것을 간파했다. 그들은 주기적으로 역사 전쟁을 일으킨다. 국경일 행사는 그 무대다. 올 8·15 광복절은 난장판이다.

역사는 세상 뒤엎는 투쟁 도구 #이승만·안익태·백선엽 상징을 깨라 #‘김원웅식 망나니춤’은 계속된다 #우파의 게으름, 기념관도 건립 못해

김원웅 광복회장의 도발은 기습적이다. 수법은 친일파로 엮기다. 대상은 애국가 작곡가 안익태, 초대 대통령 이승만, 국군의 백선엽이다. 그의 말투는 악의적이고 너절하다. 그 풍광은 다수 국민에게 망나니 칼춤으로 다가간다.

문 대통령은 거기 있었다. 그의 반응은 침묵이다. 그의 집념이 떠오른다. 그것은 역사 교체다. 그의 집권 전 다짐이다. “경제 교체, 시대 교체, 과거의 낡은 질서나 체제, 세력에 대한 역사 교체를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묻는다. 문재인이 답하다』)

역사 교체 작업은 끈질기다. 의도는 뚜렷하다. 그것은 ‘경험하지 못한 나라 만들기’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해석은 실감난다. “지금 정권은 권력의 정당성, 정체성을 확보하는 장치로서 역사에 접근하고 유난스럽게 집착한다.”

안익태의 삶은 풍운의 선율이다. 젊은 시절 그는 항일에 앞장섰다. 지금은 친일 논쟁에 시달린다. 애국가는 도전과 성취의 집단 기억이다. 그 노래는 산업화 전사들에게 투지를 주입했다. 민주화 현장에서 투혼을 생산했다.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의 간판이다. 그의 구호는 비장하다. “내가 물러서면 나를 쏴라.” 이승만은 일제의 현상금 수배자다. 그의 상하이 밀항은 항일 독립의 극적 순간이다. 그는 시신을 담은 관 사이로 숨었다. 그런 장면들은 대한민국의 상징 자산이다.

광복회장 김원웅은 그것을 깨려 한다. 그의 말은 극렬 좌파의 의식이다. 현대사는 굴곡과 파란이다. 그들은 인물의 어둠만을 찾는다. 그 속에서 대한민국은 잘못 태어난 나라다. 해방공간은 그들의 전선이다. 목표는 압축된다. 그것은 이승만에 대한 포위다. 이승만의 단독정부는 경멸의 소재다. 그들은 김구의 남북통일정부론을 칭송한다.

이승만과 김구는 해방공간 막판(1947년 12월)에 결별했다. 협력의 세월은 길었다. 둘의 공통점은 현대사의 매력이다. 그것은 자유·항일·반공·신탁통치 반대·기독교 믿음이다. 운동권 좌파는 무모하다. 전략 프레임은 교묘하다. 그 속에서 두 사람의 갈등은 극대화된다. 보수우파는 거기에 말려들었다. 김구를 좌파 세력에게 빼앗겼다.

그들의 찬양 목록에 여운형도 있다. 그의 노선은 좌우 합작이다. 그 시절 미군정은 좌우합작을 전폭 후원했다. 군정은 이승만을 배척했다. 그 유산은 ‘우리 민족끼리’로 연결된다. 여운형은 김구 주석의 임시정부를 비방했다. “임정은 밤낮 앉아서 파벌 싸움이나 하는 무능무위한 사람들.” 김구와 여운형은 그렇게 충돌한다. 극렬좌파는 두 사람을 함께 내세운다. 그런 동시 추앙은 뒤죽박죽이다. 그들은 그런 어설픈 모순에 상관하지 않는다. ‘이승만 상처내기’에 활용할 뿐이다.

‘약산(若山) 김원봉’은 항일 독립군을 이끌었다. 그의 부대는 광복군에 합류했다. 광복군에 학병 출신 장준하가 있었다. 장준하의 일본군 탈출은 격한 감동이다. 그는 약산의 행태에 분노했다. 그의 기록은 거센 폭로다(『돌베개』). “임정에 대한 불신을 부채질하면서 어부지리를 노리는 김원봉···(학병 출신을 포섭하려고) 김원봉 일파에서는 미인계까지 쓰고” 운동권 좌파는 그런 평판에 개의치 않는다. 국군의 깃발만 찢어지면 된다.

광복회장 김원웅은 민정당 청년국장을 지냈다. 그 조직 강령은 ‘대통령 전두환’ 수호다. 그 시절 586 집권세력의 외침은 ‘전두환 타도’다. 그 대립은 극단적이다. 집권 좌파는 그것을 따지지 않는다. 광복회장은 현대사 전투의 돌격대원으로 쓰일 뿐이다.

보수우파의 대응은 느슨하다. 방식은 공과(功過) 나누기와 실용주의다. 극렬 좌파는 1류 좌파와 다르다. 그들에게 ‘공칠과삼(功七過三)’은 없다. 그것은 덩샤오핑의 마오쩌둥 평가 방식이다. 보수우파는 수세적이다. 그들은 인물·정권을 역사에 맡기자고 한다. 그것은 게으름과 기회주의를 낳았다. 이명박·박근혜 우파정권은 9년이다. 그 긴 기간에 이승만 기념관도 세우지 않았다.

역사의 최후 판정관은 없다. 역사적 평가는 끝나지 않는다. 판별의 잣대는 기록이다. 기록을 많이 남기면 평점은 높아진다. 처칠(전 영국총리)은 그 미묘한 속성에 주목했다. 그 때문에 그는 회고록 집필에 집중했다. 그는 정교한 언어를 공급했다. 그 말들은 서사시적이다. 때로는 향기를 퍼뜨린다. 그것으로 대중의 역사 상상력을 선점했다.

이승만 연구 서적은 많다. 대체로 인생 전체가 다뤄진다. 그런 포괄적 접근은 지루해진다. 글의 긴장감이 떨어진다. 역사는 가르쳐선 안 된다. 유혹해야 한다.

역사 전쟁은 절묘하다. 그 전선은 정치 무대의 후방이다. 때로는 권력 쟁취의 전방으로 바뀐다. ‘문재인 사람들’의 역사 전쟁은 집요하다. 행태는 치고 빠지기다. 그들은 반복의 효과를 믿는다. 미래통합당은 그 전선을 재정비해야 한다. 

박보균 중앙일보 대기자·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