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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차법,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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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이상언 논설위원

21대 국회에 발의된 차별금지법(포괄적 차별금지법이라는 뜻에서 ‘포차법’으로 불린다) 제정안 2조 1항에는 ‘성별이란 여성, 남성, 그 외에 분류할 수 없는 성을 말한다’고 쓰여 있다. 따라서 이 법안이 국회에서 의결되면 국민을 남자 아니면 여자로만 분류하는 것은 차별로 간주될 수 있다.

‘제3의 성’ 인정하는 법 생기면 #사회제도·시설 전면 개편해야 #헌법은 양성으로만 사람 구분

유엔은 제3의 성(intersex·間性)이 있음을 인정한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염색체, 생식기, 호르몬 중 하나 또는 여럿이 남성과 여성의 보편적 범주에 들지 않은 사람을 intersex라고 칭한다. 이 제3의 성을 가진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는다. 160명 중 한 명이라는 학자도 있고, 수만 명 중 한 명이라는 연구자도 있다. 경계선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해당자 범위가 달라진다. intersex는 대부분 선천적이지만, 후천적으로 호르몬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약물이나 수술로 인위적 변화를 만들 수도 있다.

우리(한국인과 대부분의 인류)는 남녀로 양분된 구조의 사회에서 살아왔고, 살고 있다. 주민등록번호 뒷자리의 첫 숫자가 남성이면 1 또는 3이고, 여성이면 2 또는 4다. 남자는 못 가는 학교가 있고, 여자면 갈 수 없는 학교도 있다. 공중화장실·탈의실·목욕탕이 남녀로 갈려 있다. 헌법 36조에는 ‘양성평등’ 원칙이 적혀 있다. 사람은 남자와 여자로 구별된다는 인식이 전제돼 있다. 그래서 성(性)전환 중간 단계에 있는 사람, 남녀 성징을 모두 갖고 있는 사람도 법적·제도적으로(한편으론 매우 비과학적으로) 남자 또는 여자로 분류하고 있다.

제3의 성을 인정하고, 이에 해당하는 이들이 차별받지 않고 살도록 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남녀 구분을 아예 없애는 것이다. 남고·여대를 포함한 모든 학교가 성별 모집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화장실·탈의실·목욕탕도 여성용과 남성용으로 나누지 않는 것이다. 단순명료한 방법인데, 남녀로 구분된 운동경기, 남자에게만 주어진 군복무 의무, 남녀 구분의 의료적 필요성 등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등장할 수 있다. 성별 구분 없는 화장실·탈의실은 여성에 대한 역차별이라는 주장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다. 다른 하나는 세상을 남과 여, 그리고 ‘분류할 수 없는 성’의 영역으로 3분하는 것이다. 이를 선택하면 당장 건물마다 제3의 화장실을 만들어야 하고, 대학 진학 등에 영향을 미치는 중·고교 스포츠 시합도 남성, 여성, ‘분류할 수 없는 성’으로 나눠 치르도록 해야 한다. 헌법을 개정해야 하고, 주민등록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

제3의 성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게 아니다. 그런 특성을 가진 사람을 무시하며 살자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분류할 수 없는 성’을 국가가 법으로 인정하고 해당자들이 신체적 조건에 의한 어떤 불이익도 받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말하려는 것이다. “성 구별에 따른 차별이 없는 나라를 원하십니까?” 설문조사에서 이렇게 묻는다면 응답자들이 압도적으로 “그렇다”를 택할 것이다. 하지만 제3의 성까지 포함한 성적 무차별 세계를 만드는 데 어떤 일이 필요한지를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다면 그 답은 달라질 수 있다. “과연 그런 세상을, 그리고 그 세상을 만드는 작업을 감당할 수 있겠는가?” 지금 우리의 질문은 이것이어야 한다.

법안의 차별 금지 항목에는 성별 정체성도 들어 있다. 그리고 성별 정체성은 ‘개인이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성별’로 정의돼 있다. 신체적 조건과는 반대로 자신의 성별을 인식하는 경우에 차별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여성이라고 생각하는 남성이 여대나 여군에 지원할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 이 법안은 정의당 주도로 발의됐다. 더불어민주당이 합세하면 국회를 넘는다. 현재 법안에 동의하는 의원은 소수지만 공수처법이나 선거법처럼 언제 범여권의 거래물이 될지 모른다. 깨어 보니 다른 세상이 문 앞에 와 있을 수도 있다.

이상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