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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오병상의 코멘터리

‘조국 흑서’가 출간 즉시 완판된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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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 서민 단국대 교수, 강양구 기자 등이 참여한 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표지.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와 권경애 변호사, 김경율 회계사, 서민 단국대 교수, 강양구 기자 등이 참여한 책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 표지.

진보논객 출신 5명의 내부고발서..내용이 신랄하고 구체적 #진보 욕 듣고싶은 사람보다, 진보 고민하는 사람에 더 필요

1.

완판된‘조국 흑서’를 어렵사리 구해 읽었습니다. 출간되자말자 다 팔릴만하더군요.

책의 제목은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인데, 조국 지지파들이 펴낸 ‘조국 백서’에 대한 반론이란 성격에서 ‘흑서’라는 별칭으로 불립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인사청문회 당시 드러난 여러 문제에 대해 ‘심각한 책임론’을 주장하는 책입니다.

2.

책을 빨리 읽어보고 싶었던 첫번째 이유는 5명의 공동필자가 모두 ‘권력의 내부고발자’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노무현-문재인 정권탄생에 온몸을 바쳤던 현 집권세력의 핵심활동가들입니다.  대개 대학 시절 운동권 출신으로 졸업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묵묵히 진보진영의 한 축을 담당했던 진성좌파입니다.
이들은 오랫동안 현 집권세력과 가깝게 지냈고, 그만큼 그들의 속마음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이들은 조국 사태를 계기로 평생 몸담아왔던 진보진영을 비판하고 나선 내부고발자이기도 합니다.

필자 중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가장 많이 알려진 진보논객입니다. 정의당의 오랜 당원이었던 그는 작년 9월 조국을 비호하는 당을 떠난 지금까지 가장 활발하게 집권 586의 뼈를 때리고 있는 스타 논객입니다.

김경율은 현 정권의 인재풀이라고 하는 진보 NGO인 참여연대의 집행위원장으로 있던 중 조국 사태를 맞아 “진보의 몰락”을 선언하고 진보비판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권경애 변호사 역시 현 정권을 지탱하는 법조계의 진보조직 ‘민주사회를위한 변호사모임(민변)’출신. MBC가 보도한 검언유착설에 대해 조작의혹을 제기해 주목받았습니다. 조국 사태 이전까지만 해도 현정부의 각종 위원회에 참여해 검찰개혁을 추진했었죠.

이밖에 서민 단국대 교수(의사)와 강양구 기자(미디어재단 TBS)도 진보색깔이 뚜렷했던 각자 영역의 스타 논객들입니다.

4.

이들은 평생 같이해온 동지들로부터 온갖 비난을 받으면서도 고발의 휘슬을 울렸습니다. 작심한 탓인지 표현이 날카롭고 사례가 구체적입니다. 그렇다고 이들이 진보노선을 바꾼 것은 절대 아닙니다.

이들은 현 집권세력이 진정한 진보 철학과 비전을 상실했다고 비난합니다. 집권과 동시에 보수 기득권화됐다는 지적입니다.

그 증거로 조국 사태를 꼽습니다. 그냥 이념의 보수화가 아니라 부정과 부패에 이르렀기에 위선적이라는 지적입니다. 조국의 사모펀드 투자 관련해선 아주 자세히 유죄임을 주장합니다.

5.

이들은 문재인 청와대와 문빠, 민주당보다 훨씬 미래지향적인 진짜 진보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노무현이 꿈꾸었던 진보에 가깝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진보철학이 뚜렸했던 노무현과 달리 문재인은 586 운동권과 문빠에 그냥 업혀있습니다.

586은 ‘폐족’(사라진 족속. 이명박 시절 친노들의 자기비하 표현) 의 한을 풀려는듯 적대적이고 일방적인 정치 행태를 반복합니다.
문빠는 건전한 정치 세력이 아니라 감성적인 팬덤이 되어 편가르기에 몰두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6.

이들의 내부고발성 비판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습니다.
이런 비판을 통해 집권세력과 범진보 진영에 혁신의 바람이 불어오면 좋겠습니다. 나아가 현 집권세력에 비판적인 진보들은 더 미래지향적인 진보로 세력화될 수 있으면 더 좋겠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집권세력을 시원하게 욕하고 싶어하는 보수인사들에게도 좋겠지만, 진정한 진보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더 필요해 보입니다.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