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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총장은 모두 친일"이란 김원웅···18명 경력 분석해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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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 당시 만주 일대에서 활동한 일본 헌병대 장교. [중앙포토]

2차세계대전 당시 만주 일대에서 활동한 일본 헌병대 장교. [중앙포토]

정치권의 ‘친일’ 논란 불똥이 군으로 옮겨붙었다. 지난 15일 김원웅 광복회장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초대 육군총장부터 21대까지 한명도 예외 없이 일제에 빌붙어 독립군을 토벌했다”고 주장한 여파다. 25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선 이 발언을 놓고 여야 의원들이 공방을 벌이기도 했다. 이에 정경두 국방장관은 “일부가 일본군에 일부 몸담은 사실이 있다”면서도 “공과를 역사적으로 평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창군 초기 육군 참모총장은 실제 경력은 어떨까. 논란의 대상이 된 육군총장(1대~21대) 18명의 군 경력을 미래통합당 한기호 의원과 함께 분석해 봤다. 18명의 대상자 중 17명은 일본군 관련 경력이 있었다. 20대 총장 노재현은 유일하게 일본군 경력이 없다. 그는 광복 이후 1947년 조선경비사관학교(육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해 군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17명의 경력을 모두 ‘친일’로 규정지을 수 있을지는 논란이다. 전쟁 말기 일제에 징병 된 7명의 학병 출신이 대표적이다. 독립군 토벌 참여 등이 거론되는 인사들 역시 구체적인 행적을 놓고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1975년 2월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노재현 합참의장(가운데)과 이세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취임신고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1975년 2월 박정희 대통령(왼쪽)이 청와대에서 노재현 합참의장(가운데)과 이세호 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취임신고를 받고 있다. [중앙포토]

일본군 경력을 가진 17명 중 장교 경력자는 15명, 부사관 출신은 2명이다. 초대 총장 이응준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30년간 복무하며 대좌(대령)까지 올랐다. 일본군 경력이 있는 총장 중 가장 높은 계급이다.

장교로 임관한 15명 중 일본 육사 출신은 6명이다. 7ㆍ10대 총장 백선엽은 간도특설대 출신이며, 21대 총장 이세호는 일본 육군항공대 간부후보생으로 지원해 교육받던 중 광복을 맞았다.

학병 출신 장교 7명을 두고선 ‘자발적 친일이냐, 강제 동원이냐’는 논란이 있다. 이들 7명은 모두 1944년 이후 입대했다. 이는 당시 일본의 징병제도 변화에 따른 영향이다.

친일 논란 창군 초기 육군참모총장(1대~21대) 18명 군 경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친일 논란 창군 초기 육군참모총장(1대~21대) 18명 군 경력.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당초 일제는 대학생(전문학교 이상)에게 입대를 미룰 기회를 줬다. 이런 배려 대상에는 일본인뿐 아니라 식민지 출신 조선인도 포함했다. 그러나 전황이 불리하게 바뀌자 1944년 1월 입대 유예정책을 폐기했다.

이 때문에 1944년부터 일본과 조선에서 대학에 다니던 조선인도 학병으로 징용돼 전장에 투입됐다. 학병 입대자는 병사로 복무해야 하지만, 대학 출신자는 ‘간부후보생’에 지원하면 장교에 오를 수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출연 연구기관의 연구원은 “당시 장교에 지원한 학병의 경우 ‘사적 제재’(구타나 왕따)에 어쩔 수 없었던 경우, 어차피 힘든 군 생활을 좀 더 편하게 보내려 자발적으로 나선 경우 등 배경이 다양했다”고 설명했다.

1945년 8월 당시 광복군으로 활동한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왼쪽부터)는 모두 학병 출신으로 징집된 뒤 탈출했다. 고려대학교 9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은 일본 게이오(慶應) 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강제 징집됐지만 탈출한 뒤 광복군에 합류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노능서(왼쪽)는 광복 직전 한국에 잠입해 활동했다. [중앙포토]

1945년 8월 당시 광복군으로 활동한 노능서, 김준엽, 장준하(왼쪽부터)는 모두 학병 출신으로 징집된 뒤 탈출했다. 고려대학교 9대 총장을 지낸 김준엽은 일본 게이오(慶應) 대학 재학 중 학병으로 강제 징집됐지만 탈출한 뒤 광복군에 합류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노능서(왼쪽)는 광복 직전 한국에 잠입해 활동했다. [중앙포토]

총장에 오른 7명의 경우도 장교에 지원한 개개인의 당시 사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자료를 구하는 건 어렵다. 이들 모두가 친일인명사전에서 빠진 배경이다.

물론 징집된 학병 출신 중에는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하는 등 적극적으로 일제에 저항한 사례도 있다. 김준엽 전 고려대 총장과 장준하 전 의원이 대표적이다. 육군참모총장 출신에 이런 적극적 저항 사례는 없었다.

김 회장이 거론한 ‘독립군 토벌에 직ㆍ간접적으로 참여한 일본군 경력자’는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7명으로 추려진다. 이들은 초대부터 10대 육군 총장 사이에 몰려있다. 일본군 장교로 자원입대했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이들은 모두 생전에 ‘일본군 경력은 인정하지만, 독립군 토벌에 참여하지 않았다’며 반론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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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한 기자, park.yong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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