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의 성락원 명승 박탈…'성북동 별서'로 이름 바꿔 재지정

중앙일보

입력 2020.08.26 15:05

업데이트 2020.08.26 15:25

지난해 서울 성북동 북한산 자락,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정원인 성락원이 처음으로 시민에게 개방됐을 때 풍경. 의친왕의 별궁으로 알려진 성락원은 26일 '서울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으로 명승 118호에 재지정됐다. 변선구 기자

지난해 서울 성북동 북한산 자락, 현존하는 유일한 조선시대 정원인 성락원이 처음으로 시민에게 개방됐을 때 풍경. 의친왕의 별궁으로 알려진 성락원은 26일 '서울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으로 명승 118호에 재지정됐다. 변선구 기자

실존하지 않았던 조선 이조판서의 별장에서 고종 때 문필을 날렸던 환관(내관)의 별서로-. 첫 조성자의 실체는 바뀌었지만 한 세기 넘게 보존된 경관의 빼어남은 변함없다. 대신 새 이름을 얻었다. ‘서울 성북동 별서’. 오랫동안 성락원으로 불렸던 서울 유일의 한국 전통정원이 이렇게 다시 문화재가 됐다.

문화재청 "역사성 및 경관의 가치 충분"
'엉터리 지정' 논란 끝, 118호에 재지정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26일 문화재위원회(천연기념물분과)를 열고 명승 제35호 ‘성락원’을 지정 해제함과 동시에 명승 제118호 ‘서울 성북동 별서’로 재지정했다. 지난해 언론 보도로 지정 과정상의 문제점이 제기된 후 역사성 등 문화재적 가치에 대해 원점에서 재검토한 결과다.

관련기사

북한산 자락에 있는 ‘서울 성북동 별서’는 산업화 개발 바람에도 면적 1만4400㎡(약 4350평)의 대형정원이 원형에 가깝게 유지돼온 명소다. 한국 원양어업 개척자로 꼽히는 심상준(1917∼91) 제동산업 창업주가 1950년 사들였다. 당시 소유주는 고종의 다섯째 아들 의친왕 이강(1877~1955). 심 회장 타계 후엔 며느리 정미숙(73) 한국가구박물관장이 관리하면서 92년 사적(史蹟) 등록에 이어 2008년 명승 지정을 받았다.

당시 문화재청은 명승 지정 사유를 설명하면서 “조선 철종 때 이조판서 심상응의 별장이었던 것을 의친왕 이강이 별궁으로 사용한 곳으로 전통 별서 정원 중 원형이 비교적 잘 남아있다”고 했다. 하지만 지난해 6~7월 국립문화재연구소가 관련 문헌‧자료들을 전면 재조사한 결과 ‘이조판서 심상응’은 실존 인물이 아니었다.

지난해 4월 임시 개방 당시 시민들이 성락원을 살펴보는 모습.  성락원은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한국의 전통정원으로 26일 문화재청은 '서울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재지정했다. [뉴스1]

지난해 4월 임시 개방 당시 시민들이 성락원을 살펴보는 모습. 성락원은 서울에 남아있는 유일한 한국의 전통정원으로 26일 문화재청은 '서울 성북동 별서'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재지정했다. [뉴스1]

대신 고종 당시 내관이자 문인인 황윤명(1844~1916)이 조성자로 밝혀졌다. 황윤명의 후손 안호영이 그의 시문을 모아 발간한 유고문집 『춘파유고』 등에 근거해서다. 지난해 성북문화원이 조사‧발표한 바에 따르면 황윤명은 20세에 내관에 응시하는 경과(經科)에 합격, 30세 무렵 종1품 명례궁(덕수궁의 옛 이름) 대차지(大次知·조선 후기 각 궁방의 재정관리 총책임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1893년 퇴직 후 성북동에 별장을 만들고 은거 생활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 성북동 별서에 추성각(秋聲閣)이라는 장서각(일종의 도서관)을 따로 뒀을 정도로 고서‧고화를 많이 모은 수집가였다. 당대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필을 날렸고 1907년 근대식 교육기관 ‘삼산의숙’을 설립했다.

그의 또 다른 이름인 수연(壽延)은 고종이 직접 지었다고 한다. 갑신정변(1884) 당시 명성황후가 그의 별서를 피난처로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황후가 갑신정변 후 김규복ㆍ황윤명 등에게 직접 써서 나눠준 유묵 ‘일편단충(一片丹忠)’에 김규복이 붙인 발문이 그것이다. ‘혜화문으로 나가 성북동 황윤명 집으로 향했다’, ‘태후, 왕비, 세자께서 이미 어가에 머무르고 있었다’라고 돼 있다. 황윤명 사후에 의친왕이 이 별장을 이어 받았단 점에서 생전 황실과 가깝게 지낸 것으로 보인다.

문화재청 변지현 서기관은 “지난 5월 관계전문가 7명의 현지조사에서도 경관성‧학술성 등 명승으로서의 가치가 인정돼 지정 재추진을 결정했다”면서 “다만 명칭은  『춘파유고』에 기술된 기록 등을 고려해 변경해야 한다는 의견 속에 ‘서울 성북동 별서’로 결정됐다”고 알렸다.

문화재보호법 상 사적·명승 등 국가지정문화재가 되면 개발에 제한을 받는다. 이 때문에 ‘성락원’이 명승에서 지정 해제되면 국고로 복원 예산까지 받았던 이곳이 개발 바람에 휩싸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다. 하지만 이곳 지분을 가진 소유주들과의 협의 속에 명승 재지정이 이뤄지면서 이는 기우로 끝났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현재 70%까지 이뤄진 원형 복원 공사가 순조롭게 진행되면 일반에 대한 상시 개방도 추진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Innovation Lab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