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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의 골프 인사이드] 암울한 시즌, 더 빛나는 챔피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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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거 우즈(왼쪽)는 무관중 경기라 자신의 장점이 줄었다고 했고 로리 매킬로이는 의욕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AFP=연합뉴스]

타이거 우즈(왼쪽)는 무관중 경기라 자신의 장점이 줄었다고 했고 로리 매킬로이는 의욕이 예전만 못하다고 했다. [AFP=연합뉴스]

“골프 코스의 좀비가 된 느낌이다.”

베테랑 프로골퍼인 그레이엄 맥도웰은 무관중 경기를 치를 때 이런 기분이 든다고 했다. 로리 매킬로이는 “관중 반응이 없으니 버디와 트리플 보기가 다르게 느껴지지 않아 의욕이 덜 하다”고 말했다.

타이거 우즈는 “관중이 없어 내 장점이 확실히 줄었다”고 했다. 우즈를 열렬히 응원하던 수천 명의 관중은 우즈의 힘이었다. 그들이 사라지자 골프 황제도 약간 빛을 잃었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는 선수들이 최종라운드 우승 경쟁 압박감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하이라이트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인해 무관중 경기로 치러져 밋밋해졌다.

코로나 시대, 이동이 어려워 선수들 출전이 쉽지 않다. 코로나 19 이후 처음 열린 메이저 골프 대회 PGA 챔피언십에선 불참자가 10여명이나 됐다. 평소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자 골프에서 메이저 대회 참가는 그 자체로 커다란 명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에 거주하지 않는 선수 몇몇은 바이러스가 세운 장벽을 넘지 못했다.

바이러스 이후 첫 여자 메이저 대회인 AIG 여자오픈에서도 한국의 고진영·박성현·김세영·김효주·이정은·유소연 등이 불참했다. 박현경·박민지·임희정·이소영·최혜진 등 KLPGA 투어 상위 랭커들도 출전 자격이 있는데 못 갔다.

아시아, 일본 투어와 공동 주최하던 KPGA 신한동해오픈은 올해 순수 코리언 투어로 치러진다. 제주에서 열리던 더 CJ컵은 최고 선수를 출전시키기 위해 PGA 투어의 주무대인 미국으로 옮기게 됐다.

메이저리그에서는 ‘코로나 시대 4할 타자 기록’ 논쟁이 있었다. 8월 중순까지 5할을 친 찰리 블랙몬(콜로라도) 때문이다. 평소의 37%만 치르는 단축 시즌이라 1941년(테드 윌리엄스) 이후 멸종된 4할 타자가 다시 나올 수 있고, 이를 정식 기록으로 인정해야 하느냐 마느냐였다.

그래서 2020년 기록은 이런 상황을 참고하기 위해 *표를 붙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비정상적인 시즌이니 예년 기록과 똑같이 취급할 수 없다는 거다.

골프에서도 그렇다. 남자 메이저 PGA 챔피언십은 무관중이라 예년보다 맥이 빠졌다는 평가다. 그러나 불참자들이 경기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자 골프 최고 엘리트 선수는 미국 국적이 아니더라도 대부분 미국에서 거주하기 때문이다.

반면 AIG 여자 오픈은 랭킹 1위 고진영, 3위 박성현을 비롯해 역대 메이저대회 중 정상급 선수들이 가장 많이 빠진, 그러니까 출전선수 수준이 약한 대회가 됐다.

세계 랭킹 304위로 메이저 우승자가 된 조피아 포포프. [사진 R&A]

세계 랭킹 304위로 메이저 우승자가 된 조피아 포포프. [사진 R&A]

공교롭게도 AIG 여자 오픈 우승자인 조피아 포포프(독일)는 역대 가장 랭킹이 낮은(304위) 메이저 우승자가 됐다. 2부 투어 선수인 포포프는 한국을 비롯한 비 미국 선수들이 대거 마라톤 클래식에 불참해 메이저 참가 기회를 얻었다. 코로나 19가 창궐하지 않았다면 포포프의 AIG 여자 오픈 참가 자체가 원천봉쇄됐을 것이다.

그러나 불완전하고, 비정상적인 우승자로 *표를 붙일 필요는 없다. 오히려 포포프는 어려운 시기에 가장 힘겨운 투쟁을 벌여 승리한 특별한 우승자라고 봐야 한다.

그는 라임병을 이겨냈고, Q시리즈에서 한 타 차로 LPGA 투어에 가지 못한 아쉬움을 극복했다. 또한 전염병으로 인해 LPGA 투어가 올해 시드를 내년까지 보전해주기로 하면서 2부 투어에서 2년간 머물러야 하는 불운도 이겨냈다.

무엇보다 코로나 위기 속에서 의지를 잃지 않고 오히려 기회를 찾아낸 것이 놀랍다. 포포프뿐 아니다. 2020년은 모든 선수가 불완전한 시즌, 어려운 환경을 극복한 특별한 해로 기록해야 한다.

암울한 코로나 시대에 고군분투하는 여러분처럼 말이다.

골프전문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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