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의 기온이 33도(춘천 기준)까지 올라갔던 지난 20일. 고성군 간성읍의 한 숲으로 들어가는 길은 200~300m를 지날 때마다 기온이 1도씩 내려갔다. 그렇게 차 한 대가 겨우 지나가기도 힘든 길 앞에 이르자, 가느다란 줄기의 나무들이 양옆으로 숲을 이루고 있었다. SK㈜의 자회사인 SK임업이 2015년부터 조성한 자작나무ㆍ잣나무 등으로 이뤄진 숲이다.
26일 故 최 회장 22주기
숲길로 들어서자 5살짜리 어린나무들에 매달린 잎들이 옅은 초록빛으로 눈앞에 펼쳐졌다. 숲의 기운에 더위도 안 느껴진다 싶어 확인한 기온은 25도였다.
“여기가 옛날엔 축산용 땅이었어요. 그땐 화학약품 사용을 하던 때라 축산업이 떠났어도 자연 복원이 안 돼서 우리가 인공적으로 나무를 심은 겁니다.”
유희석 SK임업 산림팀장은 길옆에 쓰러진 나무 한 그루를 일으켜 세우며 이렇게 말했다. 아직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해 외부 충격에 쓰러지는 나무들이 종종 생긴다고 한다. 유 팀장은 “한 그루 한그루가 다 온실가스배출권을 얻게 해주는 소중한 존재”라고 설명했다.
SK임업에 따르면 이 숲은 국내 최초로 온실가스 저감을 목적으로 조성해 유엔기후변화협약에 등록한 곳이다. 75㏊(22만5000평) 넓이의 이 숲이 해마다 흡수하는 이산화탄소(CO2)는 621t. 국내에서 발생하는 CO2를 인구수로 나눴을 때 50명 정도가 1년 동안 뿜어내는 양인데, 이 같은 숲 조성 노하우를 제3국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숲을 통해 흡수한 CO2는 온실가스배출권으로 인정돼 거래시장에서 팔 수도 있다. 의무적으로 CO2 감축을 해야 하는 회사가 이 배출권을 사면 그만큼 온실가스를 덜 줄여도 된다.
26일 22주기를 맞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이 ‘장학퀴즈’ 지원 등 사회공헌사업 재원 마련을 위해 시작한 산림사업이 지구온난화 시대를 맞아 재조명되고 있다. 지난달 말엔 산림청이 그 노하우를 인정해 ‘해외 산림 사업 발굴 및 이행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SK임업과 맺었다. 2021년 신기후체제(파리협정) 적용에 따라 한국도 온실가스 감축 의무 대상이 되는데, 이에 대비해 해외 산림 경영을 통한 CO2 등의 감축량을 국제적으로 인정받겠다는 시도다.
SK의 숲 조성 경험은 최태원 회장이 강조하는 사회적 가치 창출과도 연결된다는 게 이 회사의 설명이다. SK임업 지분 100%를 가진 SK㈜는 지난해 조림 사업을 통한 환경ㆍ사회ㆍ동반성장 기여 가치를 금액으로 환산했을 때 444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측정했다.
심우용 SK임업 대표는 산림청 MOU 당시 “50여년간 국내ㆍ외 조림 및 산림복원을 통해 확보한 SK임업의 전문성과 산림청의 해외 온실가스 감축 사업 노하우 및 해외 네트워크 역량이 시너지를 발휘할 것으로 기대된다”며 “이 역량을 활용해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SK는 최종현 회장의 추모식은 따로 열지 않는다. 지난 4월 초 그룹 창립 67주년 기념식 때 함께 연 것으로 갈음하기로 했다. 당시 최태원 회장은 “선대 회장은 전쟁의 폐허 속에서 창업으로 돌파했고, 두 차례의 석유파동과 외환위기 등 전례 없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면서 위기를 극복하셨다”며 “단단한 저력으로 코로나19 위기 극복과 새로운 역사를 쓰자”고 말했다.
고성=최선욱 기자 isotope@joongang.co.kr